무릎도 아프다. 나 잘할 수 있을까?
* 2일 차, Phakding(2,610m) → Namche(3,440m) 약 5시간 소요
밤새 자고 깨고를 반복했다. 밖은 추웠지만 침낭 속은 참 따뜻했다. 06시 30분쯤 눈을 떴지만 침낭 밖으로 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마치 혹한기 훈련을 연상케 했다. 빠르게 배낭 정리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침대에 앉아 차분하게 눈을 감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문 앞에는 로지 주인과 현지인 한 명이 서 있었다.
"이만은 아파서 아침에 급하게 내려갔어, 이 친구가 너의 새로운 포터(짐꾼)야!"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제처럼 출발이 늦어지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몸도 힘들어지기에 우선은 지도를 보며 일정을 체크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직감이라는 게 있듯이 내가 느끼기에 새로운 포터는 의사소통도 어렵고 오로지 자신감만 가득해 보였다. 어설프게 같이 갔다가는 오히려 답답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우선은 여행사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근데 이건 또 뭐지?'
사장님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계셨다. 흔히 하는 말로 아주 개판이었다. 간단히 상황 설명을 하니 다른 포터를 보내주시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벌써 09시가 넘었다. 어제 식당에서 마주친 외국인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포터를 기다리는 동안 밖으로 나갔다. 로지 앞에 홀로 앉아 있는 서양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왜 아직까지 출발하지 않았는지 궁금한 마음에 먼저 인사를 건넸다. 우리 어머니 연배의 당시 62세였던 그녀는 지인들과 함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를 목표로 프랑스에서 왔는데, 해발고도 4,300m 지점에서 갑작스레 고산병 증세를 느꼈다고 했다.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골반 통증까지 더해지며 더 이상 트레킹이 불가능해졌고, 포터 한 명과 함께 먼저 내려가는 중이라고 하셨다. 62세에 도전하셨다는 것 자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어렵게 도전하신 거 이왕이면 EBC까지 가셨으면 더 좋으셨을 텐데...'
* 고산병
보통은 해발고도 3,000m 이상부터 뇌에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을 경우 나타나는 고산병은 머리가 아프고 숨이 차는데 심해지면 하산을 해야 한다. 또한 나이, 성별 그리고 체력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에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트레킹 하는 것이 고산병 예방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술, 담배 및 차가운 음료는 피해야 하고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어설픈 영어로 떠듬떠듬 대화를 나눴다.
"저는 지금 세계 일주 중이에요, 그래서 내년에 프랑스에 갈 거 같아요."
"오! 그래? 그럼 우리 집에 놀러 와. 우리 두 아들도 소개해 줄게."
"와! 정말요?"
서로의 페이스북 아이디를 공유했다. 어머니 같았던 외국인 아주머니와 짧게나마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잠시 후 이번에도 역시 자신감 200% 가득한 포터 한 명이 나타났다.
'응? 얘는 또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출발 전 일정 체크를 해보니 이 친구는 아침에 만났던 포터보다는 느낌이 괜찮았다. 이름은 빔 라즈(Bhim Raj), 나이는 만 16세. 이들은 보통 만 14세 나이에 포터 일을 시작한다. 나이도 어리고 체구도 매우 작았다. 솔직히 걱정도 됐지만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느덧 시간은 11시를 넘어섰고 점심식사 후 12시쯤 남체(Namche, 3,443m) 지역으로 향했다. 어제는 비행기가 3시간 딜레이 되었고, 오늘은 아침부터 포터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예상보다 4시간이나 늦은 출발이었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지니 걸음도 빨라졌다. 보통 남체까지는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낭떠러지처럼 아래가 훤히 보이는 스릴 넘치는 흔들 다리를 몇 번이나 건넜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짐으로 인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도 숨쉬기가 힘들었다. 중간중간 다른 트레커들을 만났다. 이들은 나보다 3~4시간 전에 출발한 사람들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10명 이상의 그룹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한국인들이었다. 우크라이나에는 미녀들이 많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 거 같았다. 40~50대쯤 되어 보이는 한국인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몇 명의 네팔 요리사까지 고용하여 조리 도구와 김치 등 여러 음식 재료를 가지고 트레킹 중이셨다. 이게 말로만 듣던 황제 트레킹 같았다.
결론적으로 팍딩에서 해발고도 3,440m의 남체까지 5시간이 소요되었다. 급격히 상승한 고도(하루에 850m나 높아진 고도)와 계속되었던 오르막 그리고 조급한 마음으로 인해 몸은 지치고 힘들었다. 무리해서 고산을 올랐기에 어제보다 오른쪽 무릎이 더 아팠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인데... 하지만 일단 무리를 해서라도 올라갈 수는 있을 거 같았다. 그러나 내려올 때는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헬리콥터를 타기 위해서는 3~4백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우선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식당으로 갔다. 이제 겨우 2일 차인데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고산병에 마늘 수프가 좋다고 하여 거의 매일 저녁 메뉴에 마늘 수프를 추가로 주문하였다. 내일은 이곳에서 고도 적응을 위해 하루 쉬어가는 날이다. 오늘 밤 푹 쉬기 위해 4,000 원의 거금을 들여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부스 안에서 졸졸 흐르는 물로 간단히 빨래도 했다. 빨래 서비스도 가능했지만 양말 한 켤레에 1,000 원이고 속옷이나 다른 옷들은 더 비쌌다. 몸은 피곤했고 약간 수고스럽기도 했지만 직접 빨래를 해서 약 8,000 원을 아낄 수 있었다. 또한 Wifi를 사용하려면 5,000 원, 스마트폰 충전은 2,000 원이 필요했다.
잠자기 전 눈을 감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내일은 무릎이 완전히 회복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침낭에 들어가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바로 잠이 들었다. 두꺼운 겨울 패딩과 침낭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