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식 야채 피자 먹고 소화불량 당첨(feat, 고산병 초기 증상)
* 5일 차, Pangboche(3,943m) → Dingboche(4,410m) 2시간 30분 소요(도착 후 고도 적응을 위한 2시간 추가 산행, 총 4시간 30분)
밤새 별이 쏟아지는 꿈속을 날아다녔다. 조금 추웠지만 어제부터는 침낭 위에 이불을 올려놓고 잤더니 따뜻하게 잘 잔 거 같았다. 컨디션도 괜찮았다. 혼자 이곳에 온 멋진 외국인들을 만나 대화한 것도, 별이 쏟아지는 꿈같은 하늘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도 모두 좋은 에너지로 작용한 것 같았다. 앞으로의 트레킹은 물론 나의 세계 일주 여정이 정말 기대되는 아침이었다. 중간중간 만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과정 자체도 좋았지만 내가 그들의 나라에 갔을 때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를 더 행복하게 했다. 그 어느 곳 보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인연이라면 왠지 모르게 더 특별할 거 같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해발고도 4,410m에 있는 딩보체. 3~4시간 정도의 트레킹이 예상된다. 매일매일 고도가 높아지지만 스스로 동기 부여하며 힘을 냈다.
'거뜬히 적응할 것이며 무엇보다 내 무릎은 잘 버텨줄 것이다. 목표(방향), 지속(끈기) 그리고 조급함 대신 여유 있게 천천히 한발 한발 가보자. 나는 할 수 있다.'
'수버비하니'(네팔식 아침인사)와 굿모닝을 외치며 네팔인들 그리고 외국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거의 90% 이상은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몸은 지치고 힘들어도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면 그 순간 힘이 났고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네팔어로 인사를 하면 현지인들은 신기하게 나를 바라보며 더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물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전에 내가 만나온 관계도 그랬고 앞으로 만날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예 관심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변 관계를 일일이 다 신경 쓰며 모두에게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은 욕심일 뿐이다.'
2시간 30분 만에 해발고도 4,410m에 위치한 딩보체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했지만 이제 고도가 제법 높아져서인지 괜찮은 숙소는 이미 예약이 다 끝난 상태였다. 결국 나의 포터 라즈가 추천한 숙소로 갔다. 침대 2개가 있는 2인실이었지만 감사하게 다음날 아침까지 혼자 사용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예약 손님 5명이 해발고도 3,900m쯤에서 고산병 증세를 느끼며 급하게 하산을 한 거였다. 고산 병 소식은 들을 때마다 무섭게 다가왔다. 통상 이곳 딩보체도 남체와 마찬가지로 해발고도 3,000m대에서 4,000m대로 바뀌는 지점이기 때문에 높은 고도 적응을 위해 하루 동안 쉬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고산병이 그만큼 무섭고 조심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하루 휴식 없이 내일 바로 로부체(Lobuche)로 가고 싶었다.
배낭을 숙소에 놓고 생각보다 컸던 딩보체 마을을 둘러보러 나갔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파블로(Pablo) 아저씨를 만났다. 3년 전 서울 여행 경험이 있으신 아저씨께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메시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니나 다를까 활짝 웃으며 좋아하셨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메시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는 신 같은 존재이다. 아저씨의 가이드는 영어도 잘했고 다수의 트레킹 경험으로 인해 노련미까지 느껴졌다. 그 가이드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나의 남은 트레킹 일정 계획을 적어놓은 노트를 보여주었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가면 충분히 가능한 루트야. 고산병 조심해야 해. 무엇보다 너의 컨디션이 가장 중요해"
나의 포터(짐꾼)인 라즈와 달리 요 며칠 만났던 전문 가이드들은 단순히 길을 안내하는 것도 맞지만, 트레커들의 컨디션 확인부터 숙소를 예약하는 부분까지 뭔가 달라도 달라 보였다. 특히 이 가이드 아저씨를 보며 느꼈다.
'돈을 더 주고 이런 전문 가이드를 고용하는 이유가 있구나'
점심 식사를 위해 메뉴판을 보았다. 계속해서 밥을 고집해 왔지만 더 이상은 딱딱한 볶음밥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의 빈대떡인 네팔식 야채 피자를 주문했다. 평소처럼 한국인 입맛에 제격인 밥을 먹었어야 했는데 괜히 먹을 줄도 모르는 퍽퍽하고 두꺼운 피자를 밀어 넣었더니 속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는 거 같았다.
'아우, 갑자기 왜 이러지.'
배낭에 상비약으로 가지고 다니던 소화제 한알을 꺼내 먹었다. 그러나 쉽게 괜찮아질 거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