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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소시민 Nov 15. 2020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았다

해외 취업 7개월의 감상

  한때 한국과 외국을 비교하던 때가 있었다. “선진국에서는반면 한국에서는… “ 식의 사고가 머리를 지배했었다. 항상 바깥의 것이 지금 현재보다 나아 보였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에게 항상 들었던 말이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은  똑같아’. 외국에 가보지도 않고 저런 말을 하는 어른들을 ‘꼰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직접 해외생활을 하며  말에 깊은 사회학적 통찰이 담겨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예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공익근무에서 경험하고 관찰한  한국 조직의 전근대성, 부조리함을 벗어나고 싶어 언제나 해외에서의 생활을 꿈꿨다.  책임을 지지 않는 상사(매니저), 수직적인 상하관계, 공과 사의 구별이 없는 조직 분위기, 자신의 권력을 통해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하는 상사, 시스템보다는 사람이 중요한 인사제도, 자연스럽게 야근 분위기를 만드는 조직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을 피하고 싶었다. 뭔가 합리적이고 정돈된 시스템을 갖춘 조직, 그런 조직들로 이루어진 곳에서 살고 싶었다. 예측가능성, 합리성이 보장된 사회를 꿈꿔왔다. 흔히 이야기하는 핼조선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2020, 대학을 졸업하자 바로 해외로 나가는 기회를 잡아 일본에 왔다. 외부 환경은 일본 사회이긴 하지만 관리직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며, 외국인 사원도 많은 외자계 회사에  좋게 채용이 되었다. 일본이라는 사회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전형적인 일본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이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난 지금 느낀 것은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똑같아”를 느끼는 7개월이었다.  글로벌 기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회사도 결국은 거기서 거기였다.   조직도 결국 시스템보다는 사람에 의해 굴러가는,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글로벌 기업이 아닌 하나의 마을이었다.
다음은 몇 가지 사례들이다.


-분명 수평적인 조직을 강조하지만,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일본 특유의 상하관계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의 부재: On the Job Training이지만, 트레이닝은 없고 바로 실무 투입
-자료 보관의 부재: 각자 마음대로 자료를 보관/기록하기에 정작 찾고 싶은 자료, 필요한 자료를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림.
-체계적인 인수인계의 부재: 전임자에게 받는 인수인계는 엑셀 시트 1장이 . 나머지는 본인 역량에 따라
-일주일마다 하는 “자아비판 시간”:  명목상 주간업무 보고이지만 사실상  주간 느낀 점, 반성할 점을 착즙 하는 시간
-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지만, 실수는 모두 대리, 과장이 아닌 사원(담당자) 책임 
-관리직의 업무를 사원에게 부여하지만, 권한은 사원의 권한 그대로, 책임만큼은 관리직급의 책임감을 바라는 조직 업무 플로우 


시스템이 있음에서 나오는 예측가능성 따위는 없었다. 모든 것이 결국 사람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르게 대처해야 했다. 정해진 , 사문화된 매뉴얼 밖에 모르는 신입직원에게는  도전적인 환경이었다. 마을의 관습을 모르는 나로서는 매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질문도 자유롭지 못했다. 질문을 하면  생각해 보지 않았냐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자신의 사고로 생각을 해보고, 판단을 하고 그다음에 질문을 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판단은 근거를 요한다. 근거가 될만한 경험이 없고, 체계적인 정보 관리 시스템과 룰이 없는 곳에서  이러한 상사의 피드백은 빈말에 가까웠다.  결국 여기도 공익근무를 하던 곳과, 인턴십을 하던 연구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지만, 다른 절들도 똑같았다.

사람 사는 곳은  똑같아 

 꼰대들의 말이라고 치부했던 이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주 간단해 보이는  말에는 상당히 깊은 사회학적 통찰이 숨어있다고 느꼈다. 꼰대스러운  말은 사실 사회적 상호작용 이론에 기초한 통찰력 있는 이론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상호작용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사회적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안정된 사회적 상호작용은 제도로서 학교, 회사, 등의 형태로 나타나서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를 구성한다. 이때  조직, 제도들의 기본이 되는 사회적 상호작용은 사회적 행위자들의 가치관, 규범, 인식, 감정, 선호  사회적 행위자가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서 규범과 가치관은 사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있으나, 대부분의 사회는 어느 정도 공통의 가치관과 규범을 공유한다. 그리고 감정과 선호는 보다 본능적인 것으로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서는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우리는 우리에게 편한 것을 선호하며, 추구한다. 웬만하면 보다 많이 쉬고 싶고, 같은 돈을 받는 다면 일을 적게 하는 편을 추구한다. 이는 많은 사회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따라서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가치관과 비슷한 감정, 선호를 갖고 현실을 바라보며, 그에 맞추어 행동을 한다. 이러한 행동들이 모여 조직과 제도를 만들기에, 결과로 나타나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제도들은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회들은 근대 자본주의 국가로서 어느 정도  가치관과 공식적인 조직 형태를 공유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은 정말 거기서 거기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과연 정말 거기서 거기인 것인가? 과연 대부분의 조직은 비슷한 현상을 보이는가? 만약 다르다면  변수는 무엇이며, 같다면  변수는 무엇인지 탐구하고 싶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단순히 고찰이 아닌 관찰을 하여 실증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 사는 곳은  같은지 알아보고 싶다. 어쩌면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간직한 채, 조직을 바라보고 싶다.


커버 사진 출처


https://apimagesblog.com/blog/2019/6/11/n-the-loop-tokyo-seen-from-commuter-train-line?format=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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