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아투라는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엿보러 온 세상 같았다.
찌아투라(ჭიათურა, Chiatura)는 망간과 철광석 산지로 유명한 조지아의 오랜 광산 도시이다. 이곳은 구소련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역사 깊은 곳이다. 나는 그 시절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조지아 직원들과 함께 찌아투라를 방문했다. 사바길로(საბაგირო, Sabagiro)라고 불리는 이 케이블카는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지어져 가파른 산악과 계곡이 위치한 이곳에서 노동자들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다.
찌아투라에 도착해보니 한때 구소련 경제의 한 주축을 담당했던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낡은 풍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시절 활발하게 운행됐던 사바길로의 대부분은 운행을 멈추었고, 몇 개의 사바길로만이 녹이 슨 채로 지역 주민들, 그리고 간간이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을 태워 나르고 있었다.
나는 2개의 사바길로를 타는 행운을 얻었다. 첫 번째 사바길로는 원래부터 흑갈색이었던 건지, 녹이 슬어 이 빛깔을 띠게 된 건지 모르겠는, 보기에도 아주 낡은 사바길로였다. 어린 남학생 두 명도 이 사바길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처음 보는 한국인이 신기한지 쑥스러워하더니 이내 신난 모습으로 찌아투라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날은 평일이었는데, 왜 학교에 가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그냥 가기 싫어서 안 갔다고 했다. 영락없는 사춘기 소년들이었다. 10분쯤 기다렸을까, 운행을 도와주시는 기사님 한 분이 오셔서 얼른 사바길로에 올라타라고 손짓하셨다. 요금은 무료였다. 내부는 생각보다 컸고 빛바랜 분홍색 철판이 벽을 감싸고 있었다. 총 9명이 사바길로에 몸을 실었다. 내부에는 큰 창문이 있었는데 직접 여닫을 수 있어서 자칫하면 물건이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기사님이 수동 장치를 만지니 바로 사바길로가 출발했다. 트빌리시의 현대식 케이블카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 오래된 사바길로가 운행된다는 게 신기해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는데, 혹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사바길로가 멈춰 서기라도 할까 봐 경직된 몸으로 서 있기 바빴다. 그런 우리와는 다르게 남학생들과 주민들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평온한 얼굴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때 찌아투라의 노동자들은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사바길로가 마치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올라가니 사바길로가 멈춰 섰다. 도착해서 내린 곳의 모습은 참으로 낯설었는데, 모두가 이곳을 놔두고 떠나버린 곳 같았다. 이곳에 사람들이 정말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건물들은 텅텅 비어있었다.
또 다른 사바길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파란색의 사바길로였다. 첫 번째 탔던 사바길로보다 훨씬 더 오래돼 보였다. 작게 나 있는 동그란 창문은 철장으로 덮여있어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찌아투라의 산악지역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꼭대기였다. 저 멀리 산 중턱에 설치된 조지아 국기와 찌아투라 팻말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우리와 여정을 함께 한 남학생들과 함께 식당을 찾아 이른 저녁을 함께했다. 직원들과 남학생들 사이에서 힌깔리를 몇 개까지 먹을 수 있는지 내기가 벌어졌다. 먹성 좋은 남학생들이 보란 듯이 힌깔리를 해치웠다. 문득 너무 다른 과거를 살아온 서로가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공감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힌깔리가 맛있다는 것뿐이 아니었을까. 그들과 함께 한 식사가 나에게 너무나 특별했듯이 그들에게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바랐다.
찌아투라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엿보러 온 세상 같았다. 찌아투라는 현재 새로운 케이블카를 건설하고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이 오래된 사바길로는 어떤 역사로 기억될까? 10년 뒤 찌아투라의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다시 트빌리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