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우연의 폭격, 우연을 받아들이자.
며칠 동안 불안에 잠식당해 용을 쓰고 기어다닌 탓에 불안을 제압하는 요령을 궁리해 봤다.
불안이 어떻게 생겨났고 불안이 급습해 올 때의 대처 방법을 김주환의 내면소통,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인용해서 들여다보고 불안에 맞짱 뜰 수 있는 마음 근력을 키워보자.
-불안의 탄생
중등 국사 시간에 배웠던 농업혁명은 인류사에 축복이었다. 굶주림에서 안정적인 식량을 공급했으므로.
그러나 유발하라리는 농업혁명이 최대의 사기극에 대재앙이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수렵.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기에는 여가시간을 즐기며 배고프면 사냥을 하고, 사유재산이 없어 별다른 수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행복지수가 높았다고 한다. 우연에 기반했던 그들은 1년 뒤에 뭘 먹고살지 알 수 없고 계획할 수도 없기에 걱정도 없었다. 미래를 우연에 맡기고 다만 오늘, 현재에 집중하는 명상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농업혁명으로 정착생활을 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시작됐다. 사유재산과 잉여물이 생기면서 지배층이 출현했고 그들의 착취가 시작됐다. 온종일 고된 농사일에 시달렸으며, 오늘 씨를 뿌리면 언제 얼마만큼 수확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게 됐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지자 미래를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그 결과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주연배우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 정신과 외래환자 중에 가장 많은 질환이 불안장애라는 통계가 있으니 주연배우라는 비유가 과장은 아닐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수렵인들이 불안을 경험하지 않고, 단지 오늘을 살며 행복지수가 높았다는 것!
그에 반해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며 불안의 공포에 오늘의 행복을 망각하는 우를 범했다.
그렇다면, 지긋지긋하게 들러붙는 불안을 떨쳐내는 방법은 뭘까?
우연을 받아들여라!!
실재하는 것은 항상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우연으로서의 삶이다.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이 내 삶을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헛된 망상의 소유자라고 한다.
의무교육에 세뇌당해 "너의 미래는 너한테 달려 있어. 네가 만들어야 해.." 거짓말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연"에 달려있다.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드는 건 신의 능력일 뿐.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궁극점은 모두 계획되지 않은 우연으로 점철됐다.
태어나 보니 21세기, 한국 국적, 성별은 여자, 부모와 형제는 이런 사람..
"우리의 일상은 우연의 폭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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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랑에 발동을 걸고, 끝나는 날까지 그녀에게 힘을 준 에너지의 원천은 아마도 이런 몇몇 우연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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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처럼 신비스런 것은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다.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자면 처음 순간부터 우연들이 사랑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언젠가 명상전문가의 책을 읽다가 한참을 응시했던 문장이 있었다.
"모든 마음의 시작과 끝은 <사랑이거나/사랑이 아닐까 봐 두렵거나> 이 두 가지에서 파생된 마음이에요"
사랑에 발동을 걸고, 마음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는 자가 우연이라면.. 우연의 폭격으로 도망갈 수가 없는 일이다.
"지난 세기에 있어서 우연은 곧 무지에 대한 자인과 동의어였다. 그러나 오늘날 새로운 과학은 더 이상 우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확정성 원리의 양자역학은 우연성에 대한 인식을 최고의 과학적 지식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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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야기가 부여되지 않은 우연은 그렇기 때문에 가장 때묻기 쉬우며, 깨지기 쉽고, 안타깝도록 아름답다.
이데올로기에 충만한 사람에게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것은 '역사적' 필연에 의해 결정된다. 신앙심이 가득 찬 사람에게도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것은 '신의 섭리'에 따른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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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야기는(의미) 참으로 무거운 것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괴롭다). 그러나 우연은 참으로 가벼운 것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짜릿하다)"
<김주환 강의 인용>
의미 찾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겁게 짊어진 주제가 "삶의 의미"일 것이다. 이미 주어진 삶인데.. 왜 사는지 "의미"를 모르겠다고 집요하게 파고들면 종착지는 죽음밖에 없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우연에 내던져진 존재이므로..
김주환, 유발하라리, 밀란쿤데라를 읽기 전에도 나의 모토는 불안이 얼씬할 수 없는
"가벼이 지금을 사는 긍정의 화신"이었다.
불안에 끌려다닌 아둔함에 스스로를 책망하고 싶지만, 자각하고 벌떡 일어났으니 됐다.
불안과 절연하고 오늘, 지금, 여기에 몰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