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장 22절
잠언 1장 22절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미련함 - 거만함
오늘 본문 구절에는 세 부류의 미련한 자가 언급되어 있다. 사람이 지혜로워질지 아니면 미련해질지를 결정짓는 요소는 지력이 아니라 태도인데, 거만한자(히브리어로 '레침')가 그 증거다. 거만함은 아무에게도 복종하기 싫어하는 넘치는 교만에서 비롯된다(21:24). 무엇이든 깎아내리며 그 과정에서 아주 독선적으로 아는 척하는게 그들의 전략이다. 거만한 자는 실상 미련한데도 웬만한 사람 눈에는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아주 세련되어 보인다.
물론 세상에는 마땅히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도 있다. 하나님도 때로 비웃으신다. 그러나 "오만한 자리의 자리에" 앉으면(시 1:1) 냉소와 조롱이 습관적 반응이 된다. 습관화된 거만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관계에 독소가 된다. "무엇이든 '꿰뚫어 봄'은 아예 보지 않음과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는 해체를 조장한다. 또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조롱과 멸시는 시워졌고 논리적 대화는 어려워졌다. 우리는 똑같이 거만해지라는 엄청난 문화적 압박을 물리쳐야 한다. 예수님이 여기에 뚜렷한 대조가 되신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19-20).
Q. 남을 인격적으로 대하기보다 눈을 부라리며 무시하고 싶었던 때는 언제인가?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냉소적인 태도를 지양하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다. 내 내면이 거만하여 쉽게 냉소적으로 된다는 것을 알기에, 반대급부로 더욱 노력 해 왔는데, 요즘에는 냉소적인 태도가 자주 발현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은 냉소적인 태도를 경계하라고 말하신다. 각자 자신만의 기준, 자신만의 사정이 있다. 내 기준과 다르다고 판단하고 내면을 꿰뚫어보듯 말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거만한 태도다.
최근 이런 문장을 접했다. [대충 알고 좋아하고, 제대로 알고 싫어하기]. 좋은 태도라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싫어한다]는 꼬리표를 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다. 그리고 일부를 보고도 좋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고. 아무튼 싫어하는게 많은 사람보다,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할 수 밖에 없다.
냉소적인 태도로 일부만 보고 조롱과 멸시를 하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늘 겸손한 태도로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