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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Dec 16. 2017

<카오스 멍키>를 읽고

페이스북의 대단함, 트위터의 나이브함, 트레바리의 부족함

<카오스 멍키> 다 읽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제일 재미있었다. 흥미진진한 책이다.


페이스북 진짜 대단한 회사다. 그 덩치에도 불구하고 비전 공유가 굉장히 잘 되어 있고, 아직까지도 위기의식과 개척정신을 잃지 않고 있는 듯하다. 책에도 나오지만, 페북에 다니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하루에 최소 12시간 이상을 페이스북 캠퍼스에서 보내면서 세상을 연결하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화장실 안에서도 코딩을 한다는 말은 전설이 아니다. 아래는 책에 나온, 페이스북의 대단함을 인증하는 여러 문구들이다.


“페이스북은 진짜, 진짜, 진짜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닌 진정한 신도들로 가득하다.”
“그게 바로 페이스북의 문화였다. 대담무쌍하고, 기존의 틀을 깨는 실험이 이뤄지고, 대부분 실패하지만 일부는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실패한 부분을 삭제하기 위해 즉각 진로를 변경하고, 회사문화를 통해 그 경험을 내면에 새기는 것.”
“그들은 버스에 타자마자 (...) 그날치의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엔지니어의 경우 그날치의 코딩 작업을 시작했다. (...) 이후 12시간 동안 떠나지 않을 페이스북 나라에 일단 발을 들인 뒤에는 카페와 캠퍼스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세끼 중 첫 식사를 먹기 위해 줄을 선다. 제품관리자라면 그날 첫 미팅이 열리기 전 15분간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우걱우걱 밥을 밀어 넣는다. 하루에도 6~12건의 미팅이 계획되어 있고, 당일에도 갑작스레 2~3건의 미팅이 잡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페이스북을 무찌를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분명 우리를 그렇게 만들 것이다.”
“우리의 여정은 단 1퍼센트만 끝났을 뿐이다.”


그에 비해 트위터는 꽤나 나이브하다. 저자는 트위터가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아침점심저녁을 주지만, 우리는 야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침과 점심만 준다’고 했을 때 트위터에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큰 장점이 야근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라고? 정체불명의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 나는 매일 저녁 6시가 넘어서까지 일하는 것을 꺼리는 회사를 위해 내 커리어 최고의 기회를 날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저자처럼 유능한 인재들의 야심을 건드릴 수 없는 회사가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질 거다. 실제로 페이스북과는 달리 트위터에 다니던 내 지인들(전부 나왔다)은 모두 트위터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한다.


사실 페이스북보다는 트위터가 조금 더 선의를 가지고 시작한, 그리고 성장해온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하듯 ‘누군가가 되는 것과 무언가를 하는 것’은 다르다. 좋은 회사가 되는 건 쉽지만, 좋은 일을 하는 건 어렵다. 에반 윌리엄스는 멋진 창업자지만, 꿈을 이루는 곳은 꿈 속이 아니라 현실이어야 한다. 그리고 창업한 다음에 해야 할 것은 경영이다. 물론 트위터의 백 분의 일도 안 되는 트레바리 대표가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건 참 우스운 일이다. 점점 남 얘기 하는 게 어려워진다. (사업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강제로 주제파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빡센 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빡세도 좋을 만큼 설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제일 중요하다. 그러면 트레바리는 어떤가. 돈도 뭣도 없는 작은 회사 주제에 빠르기라도 하려면 페이스북 따위는 엄두도 못낼 만큼 후끈해야 할텐데, 아직 여러 면에서 한참 모자라다고 느낀다. 나도 언젠간 저커버그처럼 회사의 비전을 명쾌하고 설득력있게 공유할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원희님이 요즘 린인 열심히 읽고 있으니까 트레바리의 셰릴 샌드버그가 돼주려나 ㅋㅋ


저자는 시종일관 냉소적이다. 못된(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농담과 표현들을 많이 쓴다. 일상적인 공감 능력이 꽤 떨어지는 사람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성장 과정에서의 아픔과 실리콘밸리라는 정글에서 겪은 상처가 그를 방어적으로 만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저자와 같은 환경을 살았더라면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냉소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가슴 아파하는 이상주의자가 있다"고 했다. 내가 트레바리에 거는 기대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람들이 냉소에 빠지지 않게끔 하는 최소한의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바보같더라도 계속해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게끔. 그러고보니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전의 내 카톡 상태 메시지는 '바보들의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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