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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Feb 17. 2018

점점 빨라지는 시간을 붙잡는 방법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으면서

어릴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삶은 끝없는 발견의 연속이었다. 어린아이의 하루를 만화로 만들면 수백 컷은 될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하늘이 파란 것도, 지우개가 지울수록 뭉툭해지는 것도, 김치가 어제보다 신 것도, 선생님이 해준 말도 모두가 기록될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하루는 더없이 길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게 없어지면서, 하루가 많이 단조로워졌다. 어른의 하루는 수십 컷은커녕 수 컷으로 정리된다. 지극히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면,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저녁까지가 한 컷으로 정리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른의 시간은 더없이 빠르게 흐른다.


뇌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뇌가 업데이트되는 속도와 반비례한다. 뇌는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비슷한 정보를 굳이 인지하거나 저장하지 않는다. 습관처럼 지나쳐버린 하루에게 뇌는 단 한 컷의 스크린샷도 허용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순간, 살아지는 순간, 시간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관성과 타성은 우리를 편하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를 살아있지 못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모든 종류의 신호에 날카롭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를 살아있게 만든다. 고통스럽지만 살아있을 것인가, 편안한 대신 시간에 삶을 내줄 것인가. 여섯 개의 미팅을 한 장면으로 담을 것인가, 아니면 여섯 개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만들 것인가. 다행히 삶은 우리에게 선택권을 줬다.


정신 바짝 차리고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든 채 투쟁하는 하루는 더없이 길다. 굳이 여행까지 떠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매일 출근길에 지나치는 아파트 화단의 꽃 색깔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살고 있을 테니까. 아이들의 긴 하루는 여행지가 아니라 호기심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이 생이 너무 소중해서, 어떻게든 시간을 붙잡고 모든 순간에 살아있고 싶다.


벌써 올해도 1/24이 지나갔다. 어떻게 맞았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러다간 영문도 모르고 떠나보내게 생겼다. 연휴에도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중소기업 사장의 일상이라지만, 다행히 다시금 많은 것들에 낯선 인사를 건네봐야겠다는 새삼스러운 다짐을 할 만한 짬이 났다. 올 한해도 잘 살아보자.


이탈리아의 지방 시장으로 살았더라면 마르코 폴로의 삶은 성공한 삶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으로서 그가 선과 악에 무디어지고, 하루하루 반쯤 잠든 채로 살아간다면 그걸 제대로 된 삶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다시 말해서 희로애락의 고통을 피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이 지복의 삶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건 복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감각이 잠든 삶이리라. 감각이 잠들면 우린 자신이 지금 숨을 쉬고 있는지 어떤지조차 알지 못한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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