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을 땐 즐기고, 고를 수 있을 땐 까다롭게
늘 잘 되는 건 아니지만, ‘피할 수 없을 땐 즐기고, 고를 수 있을 땐 까다롭게’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돈이 없을 때. 시간이 없을 때. 식당이나 메뉴 선택권이 없을 때. 이럴 땐 식탁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사랑해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괴롭고, 이런 나와 함께 있어야 하는 주위 사람들도 괴롭다.
그렇지만 까다로울 수 있을 땐 마음껏 까탈을 부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까다롭다는 건 나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음껏 까다로울 수 있을 때야말로 마음껏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의 삶을 특별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건 우리의 무던함이 아니라 까탈스러움이다.
의외로 우리에겐 까다로움을 있는 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꽤 잦다. 다만 우리가 생각보다 까다롭지 못할 뿐이다. 알아야 까다로울 수 있고, 고민해봐야 까다로울 수 있고, 먹고 마셔봐야 까다로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다양하게 먹고 마셔본 적도 없다.
주변에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 중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올 여름 내 인스타그램 피드는 평냉 사진으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우리 중 몇이나 이용재의 <냉면의 품격>을 읽어 보았을까.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왜 내가 스타벅스를 좋아하고 스타벅스의 무엇이 우리에게 신뢰를 주는지 깊게 고민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가 쓴 <온워드>를 읽어보면 어떨까.
우리 사회가 조금 더 행복할 줄 아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피할 수 없을 때 잘 즐겨야 하고, 고를 수 있을 때 더 까다로워져야 할 것 같다. 트레바리는 둘 다 도와줄 수 있다. 읽을 생각 없었던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할 때, 어떻게든 재미를 찾아내는 법을 터득하게 도와줄 수 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뭘 어떻게 먹고 마셔야 행복할지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게 해줄 수 있다. 무엇보다 그 고민을 함께할 동반자들을 만나게 해줄 수 있다. 그래, 이건 광고글이다ㅏㅏ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