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수영 Jan 01. 2019

진짜 개 쩌는 경험

사티아 나델라의 <히트 레프레시>를 읽고

1.

사티아 나델라는 <히트 리프레시>에서 줄곧 마이크로소프트의 초창기를 언급한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사람들을 더 강력하고 유능하게 만드는 기술의 대중화'라는 비전을 부르짖고, 그 비전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야심차게 하루하루를 불태우던 '그 때 그 시절'.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중요한지가 머리가 아니라 영혼에 새겨지던, 30년 가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다니면서 한 순간도 입사를 후회한 적이 없도록 해준 '그 때 그 시절'. CEO 취임 후 10만 직원들이 함께 지향할 미래를 제시해야 했을 때 가장 큰 힌트가 되어준 '그 때 그 시절'.


(물론 빌 게이츠는 지금과는 달리 꽤나 악독하게 경쟁자들을 압살해온 사람이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 기업으로서 전세계 IT 생태계의 발전에 공만큼이나 과도 많았으니, 사티아 나델라의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거나 아니면 약간의 왜곡이 곁들여진 마케팅일 수도 있겠다 ㅋㅋ)    


2.

역시 진짜 좋은 걸 경험해봐야 뭐가 좋고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어설프게 좋고 어정쩡하게 다양한 경험은 좀 과격하게 얘기하면 거의 쓸모가 없다. 진짜 개 쩌는 강렬한 경험이 주는 잠재력이 훨씬 더 크다. 내가 크래프트 비어를 좋아하게 된 것도 운 좋게 바틀샵 가격으로도 한 병에 5만원은 하는 올드스탁에일 배럴에이지드를 마신 다음부터였다. 그 다음부터는 한 병에 수천 원 하는 맥주의 맛에서도 올드스탁에일 배럴에이지드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잘 즐겨오고 있다. 초기 네이버, 다음, 티몬, 카카오 출신들이 IT 업계 전반에서 활약하는 비율이 높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상상해야 할 때 그들은 기억하면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웃스탠딩의 윤성원 기자를 높게 평가하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초창기 피키캐스트에서의 경험이 그의 생산적인 사고에 큰 영향을 줬다고 느낀다.


물론 같은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사티아 나델라처럼 많은 걸 배우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충분히 치열하게 그 시절을 불태우지 않았을 거고, 그래서 남는 것도 별로 없었을 거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전설의 현장에 있었지만 딱히 그 전설에 기여한 건 없어서 '그 때 그 사람이 말이야~' 같은 얘기만 할 줄 아는 사람. 뭐든 뽑아먹으려면 그만큼 본인이 충분히 들이박힌 상태여야 한다. (그러니까 트레바리에서 독후감 쓰실 때 혼신의 힘을 다해 써주세요... 대충 쓰면 안 하던 생각 하기 힘들어요...)


아무튼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많이 좋고 대단한 것들 옆에 악착같이 찰싹 붙어있어야 하고(좋은 콘텐츠 소비하기, 좋은 사람 쫓아다니기 등등), 조직적으로는 주기적으로 강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적절히 업무를 설계하고(루틴 업무에 느슨한 구간을 설정하고 그 때 프로젝트성으로 뭔가에 몰입해볼 수 있도록 하기 등등), 서비스적으로는 우리 제품을 그저 구매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그들을 늘려 나가기(구체적인 건 비밀인데, 왜냐하면 ����)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역시 말은 참 쉽다.    


3.

그나저나 올 여름에 이어 두 번째로 <히트 리프레시>를 읽었는데, 아마 또 읽게될 것 같다. 쇠락해가는 거대하고 공고한 조직의 방향을 튼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하게 어렵고 대단한 일인데, 불과 몇 년만에 사티아 나델라는 폐쇄적인 구매와 서버 중심의 마이크로소프트 비즈니스를 공개적인 구독과 클라우드 중심으로 틀고, 관료적인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꿔버렸다. 올해 마이크로소프트 매출은 천억 달러(백 조!)가 넘고, 세계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회사(거의 천 조!)의 자리도 탈환했다.


자사의 역량과 시장 상황에 적합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할 수 있었던 인사이트와 결단력도 놀랍지만, 그 방향으로 회사를 나아가도록 구성원을 설득하고 독려할 수 있었던 그의 리더십이 더 놀랍다. 심지어 독단적이거나 폭력적인 리더십도 아니었다. 가치를 지향하고, 가능한 한 많은 구성원들을 품어가면서 사업적으로도 성과를 내는 건 아마 거의 모든 경영자들의 로망일 것이다. 사티아 나델라는 현 시점에서 가장 나를 설레게 하는 기업의 리더다. 배우고 싶다. 타고난 유전자, 상대적으로 유연한 노동 환경, 수십 년간 쌓인 기술력 및 영업망, 그리고 풍부한 자금은 빼고. 어차피 따라할 수 없으니까.    


4.

"일관성이 완벽함보다 낫다."


"우리는 우리 제품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사랑할 소비자를 원했다."


"우리는 하나의 회사, 하나의 마이크로소프트다. 여러 세력으로 구성된 연합체가 아니다."


"기술의 발전 방향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성장하는 사고를 갖춘다면 불확실한 미래를 좀 더 정확히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다. 미지를 두려워한다면 갈팡질팡하다가 때로는 무기력하게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도 있다. 리더는 두려움과 무기력함에 맞서 혁신해야 한다. 숙달 단계에 이르기까지 실패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기꺼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위험을 감수하며 실수에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리더는 무대에 들어서면, 특히 최근에 등장한 소셜미디어(이곳에서는 모든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라는 공간에 들어서면 당장 사람들을 만족시킬 결정을 내리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금세 사라질 결과 너머를 바라보면서 누군가 지금 올릴 트윗이나 내일 내보낼 기사를 무시해야 한다. (...) 결정을 내려라. 그렇지만 그 결정에 모두가 동의할 거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 추천] 수학이 필요한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