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죄책감 그리고 새로운 사랑

4-2 <대체가 아니라 또 다른>

by 별의기록

<나는 너를 품었고, 너는 나를 살렸다>

잊을 수 없는 날들을 기록합니다.

사랑이 남긴 상처와 다시 살아가게 한 온기에 대하여.


※ 이 브런치북에는 반려동물의 죽음, 이별, 강한 감정 묘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이 아이들에게 쏟는 것들이 단지 과거의 후회와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한 대리 만족이거나, 토토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대체 행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고. 그 질문은 내 삶의 새로운 행복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익숙해질수록, 나는 하나의 명확한 진실과 마주하게 됐다.

 그 진실은 바로 젤리는 젤리고, 카노는 카노이며, 설탕이는 설탕이라는 것이다.


 3장에서 내가 토토의 조각을 세 아이에게서 발견했다고 말했지만, 그 조각들은 토토의 복사본이 아닌 아이들 각자의 고유한 삶의 방식이었다.



 토토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물어뜯고 씹어버릴 때, 젤리가 물어뜯는 건 정해져 있었다. 찢어버릴 수 있는 포장용 상자, 인형의 팔과 다리처럼 특정한 물건이었다.


 토토였다면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끝까지 파괴했을 텐데, 게으른 젤리는 어느 정도 뜯었다 싶으면 바로 버리고는 새로운 포장용 상자나 휴지심을 찾았다. 이미 가지고 논 것에는 금방 흥미를 잃고 새로운 것을 찾는 건 젤리만의 독특한 습관이었다.


 체력은 또 얼마나 약한지. 에너자이저였던 토토와 달리 금방 지치는 젤리는 배를 발라당 깐 채 누워 그대로 잠들고는 한다.



 토토는 멀리서 지켜보다가도 아주 짧은 꼬리를 흔들며 먼저 다가오고는 했다. 묵묵한 위로를 해줄 때도 “토토야.” 하고 부르면 폴짝폴짝, 타닥타닥 발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하지만 카노는 그렇지 않다. “카노야.” 하고 불러도 눈만 껌뻑일 뿐 다가오지는 않는다. 멀뚱멀뚱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경우가 더 많다.


 대신, 아주 가끔 먼저 다가와 슬쩍 기대는 날이 있다. 어쩔 줄 몰라 탭댄스를 추듯 뒷다리를 움직이고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그 순간, 카노의 묵묵한 위로는 토토와 똑같은 게 아니라 조심스러운 위로임을 깨닫게 된다.



 토토의 식탐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차례상이나 제사상까지 노릴 정도로 고기라면 사족을 못 썼다. 삼겹살을 먹는 날이면 무조건 누나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빨리 달라고 기다리고 있었고, 주지 않으면 짖으며 내놓으라고 했다.


 애교도 얻을 게 있을 때 가장 많이 부렸다. 대부분 누군가의 손에 간식이 들려 있을 때 말이다. 토토의 식탐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하지만 설탕이는 토토와는 조금 다르다. 상에 있는 음식을 탐내면서도 와앙 한 입 크게 물어 먹기보다는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날름거리는 게 다다. 얼마나 조심스럽냐면, 새로운 간식을 주면 꼭 오빠들이 먹는 걸 본 후에야 먹는다. 먹는 걸 좋아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다.


 토토는 가족들 손에 들린 건 ‘무조건 내 거!’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설탕이는 그저 그게 뭔지 궁금할 뿐 먹으라고 내밀어도 먹지 않는다. 궁금은 하지만 조심스러운, 소심쟁이니까.



 토토의 대체인 줄 알았던 세 아이는 각자의 특성과 성격이 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난 조금씩 토토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토토의 기억을 닮은 행동을 할 때 토토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토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온 아이들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토토가 줬던 사랑의 크기만큼 나에게 와준 새로운 생명체니까.



 순수하게 날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존재.



 아이들을 향한 나의 마음은 과거에 대한 빚, 토토에게 갚아야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나는 비로소 토토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젤리, 카노, 설탕이를 ‘나의 아이들’로서 온전히 사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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