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화곡동과 등촌동을 구분 짓는 언덕길에 자리 잡은 다가구 주택의 반지하가 나의 첫 서울살이였다. (지금은 필로티 주택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그곳의 주변은 빌라와 다세대/다가구 주택들이 불규칙한 패턴으로 조밀하게 붙어있어 숨 막힌 곳이었다. 그 사이로 틀어진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향할 때면 가끔씩 우울해지기도 했었다. 그만큼 반지하 살이는 여러모로 당혹스럽고 불편하고 불쾌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한낮에 온전한 햇살을 기대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치였다. 해가 늦게 들어오고 빨리 지는 곳이었다. 가끔씩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내리쬐는 빛 한줄기를 누리기 위해 창문을 열 때면 지하감옥을 연상시키는 방범창살을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근거리에서 불어오는 땅 먼지와 자동차의 매연 찌꺼기가 방바닥에 내려앉으면 바닥은 채석장처럼 변했다.
매년 장마철이 오면 걱정부터 앞섰다. 벽과 벽지 사이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와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제습제를 한 묶음을 사서 곳곳에 비치하고 보일러를 켜고 헤어 드라이어기로 건조해야 했다. 당시 반지하에 에어컨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수관이 터지거나 막힐 때면 윗층에서 내려오는 오수가 역류하는 대참사의 현장을 처음 목격하는 것은 언제나 반지하에 사는 나였다.
층간소음은 당연히 취약했고 벽간 소음에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원치 않아도 벽과 층 사이로 들리는 고단한 삶의 투쟁은 소음으로 증폭되어 서로에게 고스란히 전이됐었다. 가끔씩 아이들이 호기심에 창문을 열고 집안을 구경하거나 자고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옷을 입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창문 앞을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에도 긴장을 하곤 했었다. 그나마 겨울은 살기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은 냄새도 덜 나고 건조해서 습기도 없었으므로.
그럼에도 반지하에서 7년을 버틴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였다.
돈이 없었다.
반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갈 전세금이 부족했다. 곰팡이와 습기 없는 1층으로 이사를 꿈꿨지만 2년마다 오르는 전셋값을 쫓아가기도 버거운 나의 벌이는 나를 반지하에 족쇄처럼 묶어뒀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 2개에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반지하로 이사를 간 것이었다. 내가 청년이었던 그 당시에도 여전히 부모의 도움 없이는 가난을 벗어나는 데 엄청난 노력과 인내를 요구했다.(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휴학과 복학을 번갈아 가면서 코스모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어도 나는 반지하에서 벗어날 수 없을 없었다. 결국 엄마가 선뜻 내어준 2천만 원을 비빌 언덕으로 삼아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대단지 신축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반지하의 기억은 잊지 못한다. 마치 내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마치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단 타인의 불운한 삶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최근 정체성 집중 호우로 한강 이남의 서울 지역이 침수가 되었고 안타깝게도 반지하에서 살던 가족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집안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삽시간에 기사를 통해 퍼진 소식에 정치권이 달려들었다. 대통령은 고인이 죽은 장소를 배경으로 홍보물을 제작했다가 삭제했고, 여당의 동두천 소재의 국회의원은 수재 도움에 나서면서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는 망발을 했고 비상위원회 대표는 이를 장난이라면서 현장에서 두둔했다. 죽은이는 가난해서 죽은 것도 억울한데 죽어서도 모욕 받았다. 정치인에게는 영혼은 없고 껍데기 속에 권력욕만 가득한 것 같다.
반지하(BANJIHA)는 한국의 소득불평등과 경제 불평등에 따른 양극화의 격차의 비극을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니었다면 세계는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시대와 이념을 초월해 보면 인간의 역사에 차별과 계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너무나 멀리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공정과 평등이 완벽한 세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식과 기회가 박탈받는 세상에서 사는 것은 사다리 없는 구덩이에서 사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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