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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겸 Sep 17. 2017

지금쯤 그녀는 어디에 서 있을까?

 모든 생명에 탄생 있으면 죽음이 있고 모든 행위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리고 모든 생명과 모든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은 대개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시작과 끝의 물리적 간격과 심리적 깊이는 사람의 의지와 행위에 따라 결정되며,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처음을 아무리 긍정적이었다 평가한들 마무리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거나 부족하면 그를 온당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아마도 사람은 과거보다 최근을 더 잘 기억하는 법이고 처음은 마무리보다 물리적으로 한참 과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이란 고사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수개월 전의 일이다. 나의 회사생활은 곪을 대로 곪아있는 상처와 다를 바가 없었다. 곪아 벌어진 상처와 황달 같은 고름이 보기에 그리 썩 좋지 않듯이 나의 얼굴도 그러하기 짝이 없었다. 회사에서 찍었던 나의 사진을 보면 이렇게 못나디 못난 얼굴 표정을 하고 있는 사내가 도대체 누구인가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나는 참으로 미련했다. 곪아 빠져도 마음은 조방에 있다고 나는 계속해서 힘겨운 업무를 혼자서 매달리고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옆에 다가와 살가운 말 한마디를 해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닿을 수 없는 메아리를 수 없이 외쳐본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미 반복된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결국 살이 곪으면 터진다고 나는 회사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회사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하면 약간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줄 알았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술 먹고 오른 취기에 기대어하는 말로 '회사 때려치우면 내가 할 말 다하고 그만둘 테다!'라고 했지만, 실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나는 회사에서 지극히 평범한 영향력을 가진 직원에 불과했고, 영향력이 높은 임원들조차도 회사와 작별할 때 호기롭에 회사에 대한 조언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내가 임원처럼 분연하여 목소리를 분연히 내어 봤자 회사는 나를 그저 허튼 불평을 하는 퇴사자로 간주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회사를 떠나고 싶었다. 그보다 나의 마음속에는 평온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감싸 안을 듯 밀어내고 있어 그게 더 힘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퇴사는 흐르는 시냇가의 물처럼 막힘없이 진행되어 갔다. 몇 차례 팀장과의 면담에서 회유와 협박(?)이 물살을 거칠게 몰고 갔었지만 정해진 물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의 퇴사에 대한 팀장의 승인이 어렵게 나자 그제야 인사팀장의 면담 일정이 잡혔다는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나는 인사팀장과의 면담을 위해 사무실 밖에 사람이 드문 지하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니 인사팀장이 내게 말을 건넸다.


"오늘 처음으로 과장님과 대화를 하네요. 항상 사무실에서 조용히 일만 하는 사람이어서 말 걸기 쉽지 않았어요."
 

 가지런한 치아가 살짝 드러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건네는 인사팀장의 모습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그녀의 말속에서는 회사에서의 압축된 나의 모습과 이미지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타인의 관점일 뿐 나에 대해 함부로 단정 짓지 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실제 틀린 말도 아니었으므로. 과정을 설명해봤자 구차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씁쓸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오늘 진짜 나의 모습을 이 사람에게 보여줘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내 곧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변덕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원래 면담을 하러 사무실을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불필요한 말들로 조용한 퇴사를 망치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이런 퇴사 면담 따위 잠시 들렸다 출발하는 버스 정류소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인사말에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이 바뀌어 버리니 말이다. 그래도 나란 사람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겉보기와 다르게 사람과 사귐을 좋아하고 그들과의 수다를 즐긴다고. 다만 그 범위와 대상이 회사의 안과 밖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냥 그만두지는 않겠죠?

 그녀가 판에 박힌 질문들 그러니까 "왜 회사를 떠나는 건가요"라고 질문을 하자 나는 당돌하게 그녀의 말을 자르고 되물었다.


팀장님의 이야기가 먼저 듣고 싶은데요. 어차피 저는 나가는 사람이니 그동안 못했던 말을 저한테 다 말하세요.



 그녀는 나의 엉뚱한 제안에 눈을 흠칫거리며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하긴 내가 왜 그런 얼토당토 하지 않는 말을 불쑥 꺼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나에 대한 상대방의 몰이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땅에 떨어진 말을 담을 수도 없어도 수습은 해야겠다 싶어 계속 말을 덧붙여 갔다. '방금 한 말 때문에라도 오늘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나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당신의 이야기를 해달라. 만약 형식적인 질문과 답변만 오간다면 이 면담은 짧게 끝내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약속한다면 회사를 떠나는 이유야 몇 시간이고 말해줄 수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녀의 침묵이 나의 제안에 대한 동의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역사적 근거 또는 유전적 근거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되고 오래된 과거에서부터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며, 여성은 열등하다고 여겨왔다. 부족에서 국가로 넘어오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남성의 물리적 역할(전사)이 여성의 그것보다 더 효과적이었기에 남성이 여성보다 권력을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권력을 획득한 남성은 법률, 제도, 사회, 문화, 관습 등에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특권과 권력을 유지시켜 왔다. 이에 대해 여성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거나 체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성에 참정권을 주어진 때가 19세기 후반이었고, 그 이후에도 여성을 부정적이고 열등하다는 속설을 품고 있는 일상적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현재를 보면 여성의 인내심에 탄복하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현대의 여성들은 과거의 그들의 선배보다 더 열심히 편견과 폄하에 싸우며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용기 있게 저항하는 중이다.


 (링크 바로 가기)

여성은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                                                                  반기를 든 생물학자, 네티

   인사팀장도 그런 여성이었다. 조선 유교 문화와 관습('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 등 포함)의 그늘이 여전히 걷어낼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팀장 정도의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아 아닐 것이다. 여성이 그만한 직위에 오른다는 것은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는 남성성을 여성이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여성의 본질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장점을 쫒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는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자 남성보다 배로 일했다. (아이를 데리고 주말에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던 그녀는 술을 늘렸다고 했다. 자신의 실수가 아니어도 팀장으로서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불만과 불평을 표출하기보다는 속으로 인내하며 다른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그리고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직장맘으로서의 상시적인 고충 위로 우리가 살면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힘겨운 개인사가 연달아 왔음에도 그녀는 끝까지 버텨왔다. 누군가는 지독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가 지독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그렇게 몰고 가는 사회와 회사가 더 독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가 이룬 모든 성과에 감복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점점 부서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몸이 부서지도 마음이 바스러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은 그녀의 강한 책임감 때문인 듯했다.


사실 이제는 많이 지쳤어요. 익명게시판에 올라오는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도 그렇지만 인사팀이 무능력하다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이익을 편취했다는 식의 루머를 보면 많이 답답해요. 임원분들하고의 이야기도 어려워요. 현재 직원의 입장과 분위기를 전달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면 거부당하기 일쑤죠. 중간에서 양쪽으로 공격당하는 느낌이에요. 샌드백처럼. 게다가 정해진 예산보다 쪼개진 예산에서 사업할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책임감 있게 뭔가 더 해야 해요. 그게 참 힘들어요.
 
팀장님은 팀장님 능력 밖의 일에 대해서 너무 생각이 많으신 것 같아요. 팀장님이 책임질 수 없는 일에 책임지려 하시거나 고민할 실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물론 업무와 직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모든 걸 안고 가신다고 해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팀장님이 저처럼 회사를 떠난다고 해도 그때뿐 잊힐 거예요. 그보다 팀장님 자신을 더 잘했다고 인정하고 보상을 주시는 건 어때요? 저처럼 여행을 가세요. 제주도 한 달 어때요?
 

그런데 뜻밖에 대답이 그녀의 입 밖으로 나왔다.


회사 그만두고 세계여행 갈 거예요. 가족과 함께. 아마 8~9월 달에.
 


 놀랍게도 이미 그녀는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엉뚱한 제안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는지 모른다. 회사로 인해 조각나고 있는 삶을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해 그녀는 그녀 자신과 가족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 했다. 나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우연히 여행에서 마주친 듯한 감정이었다. 그녀도 들떠 있었다. 그녀는 여행을 가면 수많은 장소에서 수많은 사진을 찍고 그 순간을 기념할 글을 쓸 거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티 거장이 운영하는 퇴사 학교에 남편분과 함께 가서 강의를 들어보시라 권유했다. 그리고 쑥스럽지만 나의 브런치 글도 보여주었다. 머리가 숙인 채 일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니 책상에 스타벅스 홍차와 녹차 선물세트와 함께 작은 메모가 있었다. 누가 보낸 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메모에는 내가 그녀를 응원하듯이 그녀도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진작에 나를 더 잘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내용도 같이.


지금이 9월이고 조금 있으면 10월로 접어든다. 지금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어디에서 여행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제 다시 볼 기회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는 안다. 그녀가 잘못된 방향으로 조타를 돌리지 않을 것을.


지금쯤 그녀는 어디에 서 있을까?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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