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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un 30. 2024

열렬한 구애의 연하공대남의 정체, 아 이놈이?

어쩐지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좋아한다 했다, 초심자의 행운은 개뿔

[아아아, 맞아 맞아요. 그쵸, 스물 일곱. 와 대박, 누나. 관리 엄청 잘 했는데요? 내 동기들보다 훨씬 나아 진심.]

말끝마다 진심을 붙이는 바가지 머리의 섭은 속된 말로 싸가지 없는 어린 아이 같았다. 물어야 할 것, 묻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못 하고 물어대는 게, 사회 생활 안 해본 티가 났다. 

가령 “근데 누나, 대학병원 간호사라고 했죠? 그럼 얼마정도 벌어요?” 라던가, “근데 누나는 연하들 많이 만나봤어요? 연애 몇 번이나 해 봤어요?” 같은 것들. 


머리는 또 푸들처럼 밝은 갈색 파마가 여기저기 하늘을 향해 솓구쳐있다. 와, 대박, 요새 여자들은 어떤 거 좋아해요? 아, 아니지. 화님은 어떤 남자 스타일 좋아해요? 어떻게 하면 누나들한테 먹히지. 하는 말을 서스럼없이 하는 섭은 말을 하나 할 때마다 점수를 1점, 아니 10점씩 까먹는 사람이었다. 이젠 더 깎을 점수도 없겠다, 내 시력도 이것보단 좋겠다 이 마이너스 남자야. 화가 한숨을 푹 쉬자 섭이 화에게 묻는다.  

   

[우리 이제 뭐 할까요? 누나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데이트라는 걸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헤헤. 누나가 잘 이끌어 줄거죠?]     


...아나. 이 미치고 팔짝 뛸 영혼이 정녕 심도 있게 연구실에서 화학, 미생물과 미래 산업과의 어쩌구에 파묻힌 우리나라의 인재가 맞는가. 화는 심히 우리나라 이공계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자신의 오늘도. 그러다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스물 일곱이 이렇게 해맑고 사리분간 못할 리가 없다. 연구실에서 교수님 눈치를 보는 게 일상인 석사생이라면 더더욱. 얘 혹시,      


“너. 진짜 스물 일곱 아니지. 몇 살이야? 대학은 졸업했니?”
[어, 아니, 그게, 아니....아니.... 어, 그게 아니에...요! 그, 아 나 어려보이나 와하하하.]     

살짝 찔렀는데 성공이다. 환자들을 여럿 대하며 이른바 짬바라는 것이 생긴 무화는 눈 앞의 남자가 진짜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물 일곱은 아닐 것 같다는 물음표가 생겼다. 무화는 오히려 궁금해졌다.   

  

“너, 왜 나이 속이면서까지 이걸 신청한거야? 네 나이 비슷한 여자들이 좋지 않아? 혹시, 엄마 콤플렉스 있거나 그런 거니?”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천장을 몇 번 바라보며 쩔쩔매던 섭이 모든 걸 다 털어놓겠다는 듯 자세를 고쳐앉는다. 한결 편한 표정으로 섭이 말한다.


[아. 저 사실 모솔이거든요. 스물 세 살이고. 공대생이에요. 여자들을 대체 어떻게 만나야 할지 감도 안 오고, 근데 저희 과에 진짜 예쁜 애가 한 명 있거든요? 걔가 지금 남자친구가 없는데 제가 걔랑 사귀고 싶은거예요. 그래서 나이를 속이면 연애 경험 많은 누나들이 많을거고, 그럼 제가 더 스킬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화님.]   

  

그리고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덧붙인다. [아, 근데 예쁘다는 말이나 목소리도 곱다는 말은 진심이에요. 진심!]     

무화가 웃는다. 어이가 없어서다. 아무리 이름이 ’짝사랑 연습 프로젝트‘라곤 했지만, 진심으로 제 짝사랑을 말 그대로 ’연습‘하려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먹는 이런 순수한 악마가 있을 줄이야. 그것 때문에 잃어버린 제 시간이 아까워 확 화를 내려다가 무화가 생각을 고쳐먹는다. 7살이나 어린 애다. 자신이 수학의 정석을 풀 때, 곱셈 나눗셈을 초등학교에서 배우던 꼬맹이. 순수하지 못한 목적으로 참여하던 말던, 그것또한 참여자들의 자유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화가 커피를 호로록 마시고, 섭은 그런 그녀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묻는다.    

 

“저어... 저 신고 안하면 안돼요? 그 연습을 해야 알고리즘처럼...”
“조용.”

무화의 카리스마 넘치는 두 글자에 섭의 입이 꾹 다물어진다. 주민등록도 확인했다면서, 정부 정책이 그렇지 뭐. 아휴. 여자의 짜증을 있는 그대로 받은 카페 의자가 힘차게 바닥을 긁으며 뒤로 후진한다. 무화는 그런 섭을 두고 “간다.” 두 마디로 첫 실제 만남을 종결시켰다. 당연히 상대 교환 요청 및 사기 신고도 함께. 요새 누가 카페 문고리에 경첩을 달아놓냐. 자동문도 아니고, 귀찮네. 온갖 것이 모두 신경질로 가득찬 무화가 마음이 사르르 녹은 것은 약 3분 뒤. 집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섰을 때 울리는 핸드폰 진동. 그리고 그 사람, 하일의 연락.     


[어떤 커피 좋아합니까. 커피로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 믿습니까?]     


무화는 빠르게 두 엄지를 움직여 타자를 친다. 연락이 될 때, 빨리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하일은 제 멋대로 사라지곤 하니까. 그리고 곧이어 도착한 또 다른 어플 알림.


 [새로운 짝사랑 남이 배정되었습니다. 채팅을 시작하세요.]     


띠링, 곧바로 새로운 남자가 인사를 보내온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 정갈한 문체 봐라. 이 사람은 일단 점수를 까먹지는 않겠군. 10점 추가. 


0점에서 벌써 10점이나 더해진 남자와 새로운 연락을, 시작해볼까. 


무화가 버스에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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