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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un 28. 2024

섹시한 패배남과 열렬한 연하남 중 고르자면, 당연히

(6) 하일에게 빠져드는 무화,  그리고 섭과의 만남 

-아, 이렇게 제 속을 다 비친 여자는 화님이 처음이에요. 이러면 안 되는데.     

전화 통화로 접한 하일은 한마디로 왕위를 뺏긴 사자같았다. 형형한 눈빛에 왠지 모를 긴 파마 머리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상상 속에 무화가 참 힘들었겠다, 그런데 어쩌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냐고 묻자 황급히 그는 말했다.     


-어, 제가 이만 저를 다 보여주고 말았어요. 이러면 안 됐어. 저를 더 알게 되면, 속속들이 알게 되면 분명 화님은 실망할 거예요. 그러니 이 얘기는 없던 일로 하죠. 미안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허 참, 어이가 없으리라고. 무화가 자기 얘기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왜 갑자기 자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남자다. 엄마가 세상에서 불안해보이는 남자를 조심하라고 했지만, 떨리는 숨소리라던가 사람에게 상처받아 마음을 닫아버린 하일이 신경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전화통화 후 다음날 새벽 5시, 무화가 일어나기도 전 하일은 문자를 보내왔다.    

 

[미안합니다. 제 멋대로 끊어서. 제 맘대로 제 이야기 다 해 놓고서. 사실은 무화씨가 저를 싫어할까봐 무서워서 그랬어요. 무화씨라면 저를 다 이해해줄 수 있을까요? 그런 여자를 찾고 싶습니다. 세상에 한 사람만, 단 한 사람만이라도… 제 편이 되어 줄 여자가 있다면…]     


무화의 답장은 이랬다.

[전화 통화 한 번 더 해 보면서 생각해볼게요. 오늘 저녁 7시 어때요?]     


그렇게 섭을 만나기 하루 전, 두 번째 전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통화에서 무화와 하일은 옥신각신 싸웠다.     


[아, 실제로 한 번 만나서 얘기해 보자니까요? 뭘 그렇게 망설여요!]


[안 됩니다. 실제로 저를 만나면 제게 실망할 것 같아요. 우리 인간 대 인간으로 이렇게 모르는 사이인 채로 연락만 하면 안 됩니까.]


[무슨 소리예요. 그러면 저 상대 변경 요청 누를 거예요?]

무화의 협박에


[그건 화님의 선택이니 따라야죠. 하지만 이렇게 제 마음을 다 드러나게 해 준 화님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어떤 여자도 제게 이런 적은 없었으니까요. 역시 제게 사랑이란 건 가당치도 않은 거였어요.] 


라고 하일이 한숨을 쉬고     


그런 하일을 그저 포기하고 무시해야 하는 게 제 정신건강에 좋다는 걸 아는 무화는 이상하게도 쉽사리 상대 변경 요청을 누르지 못했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게 했다잖아, 이 사람의 인생이 특별하고 마음이 깊으니 내가 이 사람의 유일한 연인이 되면 혹시나, 나는 이 사람과 평생 행복할 지도 몰라. 서로가 서로의 외로움을 잘 알아줄 지도 몰라.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결국 


[생각할 시간을 줘요. 마음의 문제이니, 화님의 문제는 절대 아닙니다. 그저, 제 마음을 이렇게 흔드는 사람이 있으니 한 없이 약해지네요.] 


라고 답을 해왔다. 무화는 섭을 기다리는 카페에서 24시간 내로 연락이 오지 않으면 오늘은 기필코 상대 변경 요청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이번만 세 번째 했다.      


이윽고, 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제 생각보다 무척 어려보이는 남자 하나가 앞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무화를 보며 웃는다.     

[화님, 안녕하세요? 제가 섭이에요! 늦어서 죄송해요 진짜!]     

…회색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이 남자가 정말 스물 일곱살의 이공계 대학원생이 맞는가, 기껏 나이 많이 쳐 봤자 스물 네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얼굴인데. 원래 공대생들은 다 공부만 해서 어려보이는건가. 헷갈리는 눈으로 무화가 [아, 예 화입니다.]하고 말을 받는다.      


[와,그나저나 진짜 실물도 개예쁘시네요, 미쳤다 진심. 스물 다섯?]     


가볍고 큰 목소리- 무화가 싫어하는 감탄사만 섞인 말투. 괜히 만나자고 했다. 남몰래 한숨을 쉬는 무화가 핸드폰 진동에 잠시 시선을 둔다.     


-일주일 뒤, 성수동 00카페에서 보는 거 어떻습니까. 제 카페는 아닙니다.     


무화는 지금 섭과의 시간을 홀라당 까먹고 빨리 일주일 뒤에 하일을 만나고 싶어졌다. 일단 눈 앞의 어린 남자를 치워버려야겠다. 무화가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 


[서른인데요. 섭님, 스물 일곱이라기에 되게 어려보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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