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분명히 티를 냈다, 눈치채지 못한 건 여러분 탓 아닐까요
왜 몰래 다녔냐. 한 두 달 간은 숨길 수도 있지만, 내가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것만 해도 2년이다. 도중에 괜찮아졌다고 생각해 6개월 평범히 일상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죽고 싶어서 침대 위에 누워 칼을 쳐다보면서 왜 가족에게 말할 생각을 않았냐, 내가 네 엄마가 맞냐. 그렇게 물으신다면 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아, 당신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이 왜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애써 웃었느냐면요.
입이 차마 안 떨어지던데요. 이를 우째쓰까.
내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눈치채주면 안 됐을까, 원망만 쌓이던데요.
오히려 서로 상처만 주는, 당신 딸이 '엄마, 나 우울증이야!'하고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이유.
1. 상황을 만들고 수습하는 것도 결국 나
어렸을 때부터 '역시 딸이 있어야 해.', '이 집 막내딸 너무 부럽다. 우리 딸은 안 그런데!' 라는 말을 듣고 엄마 아빠가 부끄럽다는 듯 하하 웃는 표정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도 있겠다. 내가 집의 분란의 당사자가 되는 걸 견딜 수 없다. 한 번도 부모님과 갈등상황에 있어본 적이 없다. 다 내가 눈치 맞춰가며 피했으니까. 나를 속이면서. 평소에도 가족에 힘든 일이 생기면 내가 부모님을 위로하거나, 광대마냥 웃게 해 주었다. 그러니 내게 생긴 건, '사고 처리반' 습관. 일명 '기쁨조'
-이것 봐요, 나 이만큼 잘 하고 있죠? 그러니 힘든 오빠 일 같은 건 나의 이 예쁜 행동으로 잊어보아요.
이런 행동 양식이 습관이 된 나는 내가 일을 터트려놓고 결국 수습까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런 고로 부모님들에게 드리는 꿀팁 하나. 주변 사람들이 네 딸 엄친딸이라며 좋겠다고 딸이 보는 앞에서 칭찬이랍시고 말을 한다면 꼭 대답할 것. "딸이 뭐 유세라고. 쟤도 남들이랑 똑같아. 보이는 데만 멀쩡하지." 이 집의 예쁜 효녀라는 사실을 절대로 주입시키지 말 것.
2. 부모님을 믿을 수가 없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당신들은 얼마만큼 뒤치다꺼리를 해 주는가. 내가 바라는 뒤치다꺼리, 그러니까 부모를 믿을 수 있는 환경이란 '물질적인 지원', '헬리콥터 맘 행동'이 아니다. 내가 뭘 하던 관심 있게 지켜본 적 없는 아빠, 내가 싫다고 거부하면 '그게 엄마가 주는 사랑인데 이 버릇 없는 딸, 너 때문에 상처받았어.'라고 표현하는 엄마 아래에서 난 뭘 얼마나 믿고 삐댈 수 있을까.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다룰 줄 모르고 억누르는 부모와 살았다. 한 명은 어떠한 감정적 교류도 없이 밥 잘 먹이고 재워주면 그게 부모의 역할 끝인 줄 아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감정 표현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힘들 때 '엄마가 그럴 때면 나 힘들어, 부담스러워'라 말하면 어떤 게 힘들었어? 라고 물어보는 대신 '알겠으니까 그만 얘기해.'라고 한 뒤 [네 말로 엄마 상처받았다]는 표현을 참으로 다양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나로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뭘 어떻게 말을 하냐고. 어떻게 기대냐고.
[부모님에게 그렇게 대들면 못 써. 어딜!]이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는 당신, 그런 말 하려면 적어도 [옆 집 애는 친구처럼 살갑게 부모랑 여행도 가던데]라는 말을 피해야 할 것. 본인 원할 때에는 친구같이 다정한 위치를 원하면서, 마음이 편해진 딸이 투정이라도 부릴라 치면 '어딜 엄마, 아빠한테 버릇없이 그런 말을 해!'라고 대꾸하는 당신 아래에서 어떻게 내가 진심으로 부모를 믿을 수 있겠냐고요.
그러니 당신 자식이 힘들 때 당신에게 정서적으로 잘 기대고 있는지, 꼭 확인해 볼 것. 아이가 먼저 '엄마, 나 너무 힘들었어.'하고 말한 적이 있었는지, 아이의 현재 힘든 일을 내가 알고 있는지.
3. 지금까지도 몰랐는데, 안다고 달라질 것 같지가 않다. 달라져도 부담스러워.
뭐 알면 얼마나 달라지려고. 부모님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보니 생기는 삐딱선이다. 알면, 뭐 얼마나 달라지겠냐고요.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 처럼 악당이 회개해 주인공 편에 서서 싸우는 그런 거 기대하지도 않는다. 내게 더 관심을 가지려나? 그것도 부담스럽다. 누구보다 문제 없던 딸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에는 어느 정도 부모인 자신 탓도 있으리라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보다. '우울증을 진단한 의사가 돌팔이 아니냐, 상담센터에서 말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거 보면.
4. 힘이 없다.
부모님께 '정신건강의학과에 오래 다니고 있고, 언제부터 다녔으며, 이런 병명이 있더라.'라고 말하는 것도 큰 힘이 필요하다. 이후에 들이닥칠 온갖 질문이라고 읽고 무지에서 비롯된 또다른 상처라고 쓰는 그들의 대답 혹은 말들에 또 다시 휘청이지 않으려면 내가 꽤 강한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우울증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은 현재 상태에서 더 나은 상태로 바뀔 거라는 미래에 대한 확신 혹은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런고로 내가 지금 숨 쉬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부모님께 가서 고할 힘이 없다.
5. 봐도 모르던데?
주말에도 12시까지 퍼질러 자던 애가 잠이 안 온다며 새벽 7시에 깨 있고, 죽음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가기 싫다고 했는데도 끌려갔던 뮤지컬 연극을 보다가 결국 공황이 와서 어쩔 줄 몰라 뛰쳐나가고 싶어 2시간 동안 혼자 고문같은 시간 속에 갇히고, 눈빛이 텅 비어있다고 모르는 사람들도 알려줄 정도인 나를 보고도 계속 몰랐다는 게 더 충격이다. 봐도 모르는 게 더 상처란 말이다. 보고도 어찌 모를 수 있냐고. 사랑하는 딸이라면서, 사랑한다면서, 그게 무슨 사랑이야. 저들 마음대로 막내딸 역할에 앉아 있는 그 순간이 좋았던 건 아니냐고. 의심스럽다. 얼마나 뭘 잘 숨기든, 관심 있다면 알았어야지. '가족'이라는 단어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지 그랬어. 내가 말 하기도 전에. '너 요새 좀 이상해. 괜찮아?' 물었어야지. 직장 사람들도 요새 힘 없어 보인다며 어슴프레 눈치 채더만, 왜 부모님은 몰랐을까. 그런 가족에게 나는 아프다고 진정으로 기대고 안겨 울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