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일러두겠는데, 저 말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하면 큰일난다. 그 사람을 절벽 아래로 다시금 밀어넣는 못된 악당같은 말이다. 타인의 말 한마디가 영향력이 큰 정신건강질환 환자들은 저 말 한 마디에 온갖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깊은 우울의 구렁텅이로 ktx 보다 빠르게 진입한단 말이다. [이 우울은 다 내 잘못이야. 왜 나만 이럴까.] 같은!
하지만 우리의 주변 사람들은 정신건강환자들을 도대체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내가 들은 최악의 말 두가지 중 하나가
"대체 언제 낫니? 약은 꼬박꼬박 다 먹고 있는데, 약 바꿔야 하는 것 아니야?"
이고, 두 번째가
"다 의지로 극복할 수 있어. 그러니까 약도 좀 줄여서 자기가 알아서 점점 안 먹을 생각을 해야 해!"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지는 각종 의학 유튜브나 서적을 통해 독학하시도록 하고, 환자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열이 팍 받는 말들이다. 저 말을 한 두 사람은 각각 엄마와 나를 무척 아낀다는 직장 선배님이시다. 나를 사랑하고 애정하지만 정신건강학에 무지하다는 공통점이 있지. 오지랖도 넓고.
아무튼, 대체 언제 낫냐는 질문에 답을 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님께 한 달에 한 번 꼴로 사실 나도 묻는다.
"선생님, 저는 대체 이 약을 언제 그만 먹을까요? 약을 계속 챙겨먹고 있는 제가 너무 환자같아서 꼴보기 싫어요. 더 우울해진다니까요?"
그럼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시지, 늘 차분하게.
[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라는 게 감기나 다른 질병처럼 보편적으로 앓는 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상황이 너무나도 달라서 사실 말씀드리기 어려운 거 아시잖아요.
다 죽어가던 사람이 다음날 갑자기 괜찮아지는 경우도 있고, 가볍다고 생각했던 환자가 다음날 입원까지 해야 할 정도로 확 상태가 나빠지기도 하는 게 우울증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꼬박꼬박 정기적으로 뵈면서 계속 상태를 체크하고 있잖아요?"
아놔 이 극강의 T선생님. 이래서 마음에 들면서 짜증도 난다. 하긴, 내 우울증 역사도 되돌아보면 작년에 4개월 정도 약을 먹다가 점차 괜찮아져서 6개월정도 평범한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깊은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다시 빠지게 되고, 지금까지 6개월 넘게 약을 먹고 있다.
아, 다만 이런 말씀은 하셨다. 우울증 약을 끊는 시기란
[환자 본인이 괜찮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한 달 동안 약을 천천히 줄이며 그래도 괜찮은지 살펴보다가 약을 끊고 한 달 동안 또 살아보는 것]이라고.
그러니 이 빌어먹을 특이한 정신질병은 '내가' 처음에 아픈지 인지도 해야할 뿐더러,
'내가' 스스로 괜찮다고 진단까지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뭐 이런 병이 다 있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이 병을 이길 수 없다. 고장난 뇌를 평온, 행복 같은 긍정적인 기운을 내뿜게 하려면 약으로 손을 좀 봐야한다. 불행에 절여진 뇌를 정상작동하도록 돕는 것은 정신과 진료이므로, 무조건 환자의 의지만으로 완치가 된다는 잘못된 생각에 휩싸이지 말 것!
2) 내가 스스로 괜찮아졌다는 신호 (지극히 주관적인! 참고만 하시길.)
가. 샤워를 매일 함.
(반대로 우울증 걸렸을 때 신호이기도 하다. 씻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씻을 힘이 없다.)
나. 밥을 챙겨 먹음.
다. 하루종일 울지 않음.
라. 나에게 불편한 사람들에게 '뭐야'하고 눈살 찌푸릴 수 있음.
마.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언제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남.
바. '심심한데 00이나 해 볼까?' 같은 의욕이 약간 생김.
(산책, 운동 등. 작심삼일이라도 상관 없음. 뭔가 할 힘이 생겨난다는 것이 중요함.)
사. 유튜브나 티비를 보고 30분 이상 집중할 수 있음.
(이상하게 우울증이 심할 때에는 영상조차 못 보겠더라고.)
아. 설거지 할 때 '음~~ 음음~~'하고 말도 안 되는 콧노래를 부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