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에게 우울증을 밝힌 날, 엄마는 내게 물었다.
"그, 엄마가 그동안 몰랐던 건 미안한데... 2년동안 계속 다녔는데도 아직 안 나은거면, 다른 병원에 가 보는 건 어때? 책에서 봤는데 글쎄!"
나는 답했다. 내가 가고 있는 데가 최선이라고.
2년동안 의사선생님도 나를 환자로서 지켜봤겠지만, 나도 의사선생님을 지켜봤단 말이다! 이 사람은 찐이라고! 엄청난 명의는 아닐지언정, 내게 필요한 전문의가 확실하다고!
...라는 확신을 갖기까지 여러분은 다양한 의사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좋다. 특히 정신건강의 경우에는 말이다.
1) 여러 번 다른 곳에서 진료받는 사람들을 말리지 않는 이유
앞서 말했듯, 나는 공무원이다. 까먹었겠지만. 아무튼, 갑자기 직업 얘기를 왜 꺼냈냐. 내 직장에서조차도 느낀다. 같은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도, 사람 성격에 따라 업무 성격이 180도 변한다는 걸. 누군가는 이 정도는 봐주자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이런 작은 일로는 별 일 안 난다고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이른바 짬바 찬 경우), 누군가는 언제 개정됐는지도 모르는 작은 법까지 하나하나 다 들고와서는 별 서류를 민원인에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옆에서 볼 때 가끔 민원인이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이름하여, 쟤 잘못 걸렸네 쯧쯧- 하는 경우가 생긴다.
정신적 질환은 감기 같은 다른 질환과 달리 장기 레이스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페이스 메이커와 꽤 오랜 시간 마라톤을 뛰어야 한단 뜻이다. 그런데 옆에 있는 페이스메이커가 내가 힘들 때 물을 안 주고 초코파이를 건네거나, 내게 관심이 없다면 마라톤을 끝까지 달릴 힘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병원까지 어떻게든 가는 데에는 성공했을 지언정 나와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할 의사선생님도 신중히 선택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2) 나의 다른 의사 선생님 경험기
내가 다니는 병원에는 의사 선생님이 세 분 계신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성향상 예약을 먼저 잡고 와서 다른 선생님을 볼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런데 이런 환경을 뚫고 담당 선생님께서 안 계실 때 병원에 갈 때가 있다. 이름하여 응급 상황일 때이다. 갑자기 울음이 멈추지 않거나, 죽고 싶거나, 내가 싫어서 미치겠거나, 일상 생활이 모종의 이유로 힘들어진다. 참을 수가 없다. 그러면 병원에 나 살려줍쇼 하고 기어가게 된다. 그렇게 만난 새로운 선생님은 내가 힘들다고 울고 있으니까 이렇게 했다.
"으응, 무슨 일이 있어요? 이야기해 봐요. 으응, 아아, 어어 그랬구나! 속상했구나!"
...눈물이 쏙 들어가긴 하더라고. 그 때 나는 내 슬픔을 공감해달라고 찾아간 게 아니었다. 어떻게 좀 해결방법을 빨리 냉철하게 내놓으라고, 너도 곧 괜찮아질 거라고 차분하게 달래줄 사람을 찾고 있었지. 마음의 위로가 필요했으면 내가 알아서 상담센터로 갔겠지요- 아무튼 내 비뚤어진 심리상태에서 알 수 있듯, 우울증 및 정신질환 환자들은 눈물에도 다양한 의미를 담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슨, 내게 맞는 위로법- 내가 기대하는 방법을 가진 자를 찾고 싶어한단 뜻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끄덕이고 아아, 그렇구나 라는 추임새를 넣는 인자한 스타일의 의사 선생님이랑은 하나도 안 맞는구나 하고. 참고로 이분은 눈물을 다 떨구고 나서 내가 잠을 못잔다고 하자 유튜브에 '숙면하는 체조'를 틀어주시고는 이걸 매일 반복하라고 하셨다. (나는 이런 방법을 내놓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 정도로 조절이 됐으면 병원에 갔겠냐고요!)
내 지금 의사선생님은 내가 진심으로 울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으면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진정이 된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전기 치료를 권하고 내일도 올 수 있겠냐고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핀다. 내가 비소를 섞어 전기치료 따위 해 봤자 뭐가 달라지냐고 툴툴거리면 그 선생님은 "그래도 우리가 어떤 가능성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어요?"라며 이성적으로 나를 달래주신다. 슬픈 와중에도 나는 납득이 되면 행하는 성격이므로, 순순히 선생님의 말에 따른다. 누군가는 이 선생님이 쌀쌀맞고 제 말을 안 들어준다고 싫어할 터.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며 길게 내 넋두리가 필요한 사람은 오히려 처음에 언급했던 그 분이 잘 맞을 것이다. 인자한 할아버지가 걱정되는 눈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며 공감의 추임새를 끊임없이 넣어주니까.
대신 의사 선생님을 고르기에 앞서, 자신에게 어떤 위로가 효과가 있는지는 꼭 알고 있어야 한다. 영문도 모른채 빈정 상해서 돌아오고는 "정신건강의학과는 다 순 뻥이야! 거짓말이야!" 하지 말고 당신, 혹은 당신 딸에게 맞는 대화를 하는 사람을 찾으시길. 다만 초진 진료비가 무척 비싸다는 건 알고 계셔라. 정신건강의학과는 예약이 필수이므로 다른 병원에 무턱대고 찾아가선 안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하며 새로운 환자를 가려서 받을 수도 있다는 점도 유의하기를 바란다. 또 다시 우울증 척도 검사 등 500문제의 늪에 빠질 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게 귀찮다면, 나처럼 한 병원에 의사가 적어도 세 명 이상인 곳으로 가기를 권한다. 데이터는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의사 선생님만 바꿀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하냔 말이다.
3) 병원 선택시 추천 고려사항
가. 집이나 직장과 가까운 곳
(정신건강의학과까지 가는 길이 천근만근이다. 가까우기라도 해야지!)
나. 내가 필요할 때 신규 예약을 받아주는 곳
(새로운 환자는 한 달 전에 예약을 하라는 병원도 있었다. 난 당장 급한데!)
다. 나의 위로 스타일과 맞는 의사 선생님이 계신 곳
(예를 들어 자신이 여자 선생님을 선호하면 여자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가야한다.)
라. 내가 믿을 수 있는 의사선생님이 계신 곳
(못 믿으면 말짱 도루묵. 제 취향에 맞는 약력을 살펴보시길.)
마. 내과가 주변에 있으면 좋음.
(신체적인 증상인지 헷갈릴 때 먼저 피검사를 하고 오라던가 하는 경우가 생김)
바. 약을 원내에서 주는지, 약국에서 주는지 확인
(내 병원은 원내에서 제조해 주어 좋다. 약국에서 정신건강적 질환이 있다고 여기저기 떠벌려지는 것은 질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