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차마 내게 못 물었던 질문들, 그리고 당신 딸이 답하지 못할
내게 사람들은 두 가지를 혼동해서 묻는다. 바로 이 두 질문들.
"병원에 어떻게 처음 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셨어요?" 와,
"병원에 어떻게 혼자갈 생각을 했어요?"이다.
이 두 질문이 합쳐져 무슨 말을 만들어내냐, 바로 이것. "어떻게 병원에 처음 혼자 가게 되셨어요?" 나는 그럼 질문한 사람에게 묻는다. 첫 번째 의미인지, 두 번째 의미인지. 그러면 대개 사람들은 둘 다 말해달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여기에도 두 가지 모두 답하겠다.
우선, "병원에 어떻게 처음 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셨어요?"에 대한 답.
내가 내 몸 밖에 있는 것 처럼 온 세상이 멍했다. 그리고 주변 소음이 무서워서 움츠러들었다. 스스로 심각하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일상생활은 어찌저찌 굴러가므로 나는 대부분의 환자들처럼 생각했다. '내가 정신건강의학과에 갈 정도로 심각하진 않을 거야. 대부분 이정도 스트레스는 달고 사니까. 현대인이라면 필수템이지, 이 정도 힘듦은.' 그렇게 절친한 친구 두 명과 만나기로 한 약속 당일, 나는 이상하게도 심장이 쿵쾅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지하철에서 내려 음식점을 찾고 있을 때였다. 시끄러운 심장 소리가 나를 지배하고, 나는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았다. 음식점에 가려면 어떤 한 건물 1층 로비를 통과해야 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거기에 앉아 계신 경비분과 눈을 마주쳤다. 그 사람은 나와 내 친구를 보고 소리쳤다.
"재수가 없으리려니, 왜 여길 돌아다녀?"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말입니까. 폐쇄된 건물도 아니고, 보안이 철저한 곳도 아니고, 음식점이 즐비한 그 건물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출입 금지라도 써 붙여 놨어야지 그럼!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짜증을 우리에게 낸 그 사람이 참 이상하구나 생각하며 한껏 째려봤을 테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분의 눈치를 보며 얼른 도망쳤다. 그런 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친구는 뭐 저런 싸가지 없는 사람이 다 있냐고, 여기가 무슨 사람이 들어가고 나가면 안 되는 곳이냐며 화를 벌컥 냈다. 나는 하지만 그 당시 이렇게 생각했다.
[다 내가 잘못해서 그래. 여기로 오는 게 아니었어.]
샤브샤브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무슨 정신으로 떠들었는지 모르겠으며, 나는 어쨌거나 집에 돌아왔다. 나는 밖에서 후들거렸던 다리의 힘이 풀려 드라마처럼 철푸덕 주저앉았다. 아직까지도 진정되지 않는 가슴에 손을 얹고 '괜찮아, 다 괜찮아. 여긴 집이야.'하고 되뇌었다. 그 때 알았다.
아, 나 맛이 갔구나.
그리고 혼자서는 절대 다시 일어설 수 없겠구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겠구나. 하고.
다음으로는 "병원에 어떻게 혼자갈 생각을 했어요?"에 대한 답이다.
우선, 누군가랑 같이 갈 생각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왜 하는거지? 라고 생각했다. (당신들은 내가 우울증이 깊게 박힌 마음의 병 환자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왜 그렇게 가족에게까지 숨기냐. 묻는다면 어차피 금방 나을 거, 굳이 부모님께 걱정 끼쳐드려가며 서로 슬픔을 두 배로 만들 필요 없다고 여겼다. 전형적인 '슬픔을 반으로 나누면 두 사람 몫이 된다.'파다. 그런데- 이렇게 치료가 오래 걸릴 줄 몰랐다. 내가 뭐 다른 병원을 다녀봤어야 알지. 입원한 적도 없고, 가장 오래 치료받은 거라곤 미용 때문에 받은 교정이 전부란 말이다. 어딘가가 아파서 간 나는 으레 다른 병들처럼 우울증이나 마음의 병도 오래 잡아봤자 3-4달이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부모님과 연락이 잦은 편이었다. '오늘 뭐 먹지?', '나 이번에 이런 책 읽었다?', '이번 주말에 이런 일 있었어.'하는 이야기들을 곧잘 한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진심으로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에게 기대는 것은 다르다. 그러니 당신의 자녀가 작은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잘 떠드는 착한 아이라고 마음도 건강할 것이라 방심하지 말 것. 부모님을 속이는 건 쉽다. 당신 앞에서는 웃으며 페이스톡을 30분, 1시간 하던 딸이 전화를 끊고나서는 우울증 약을 한움쿰 집어삼킬 수 있으니.
주변의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은 어떻냐, 혼자 가는 게 안 무서웠냐더라고. 일단 정신이 홀까닥 나가 버린 상태였으므로 혼자 가는 게 훨씬 나았다. 아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내 상태를 솔직히 병원에 가서 고하지 못할 것 같았다. 멀쩡한 척 하고 웃어넘길까봐. 나는 프로 연기자니까. 다른 사람 걱정 안 시키는.
음, 마지막으로 더 깊이 생각해보면 옛날부터 엄마에게 받은 교육 때문이기도 하다.
'남들에게 약점 보이지 마라. 웬만하면 너에게 나중에 다 돌아온다. 좋은 일 말고는, 아니 좋은 일도 숨겨라.'
누군가에게 기대고, 내 슬픔을 널리 퍼트리라는 교육을 나는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니 부모님이 나중에 알고 난 뒤 이제서야 말하냐 묻냐면 난 억울한 것이다. 그럼 힘들 때에는 누군가에게 기대라고 알려줬어야지. 그렇게 날 가르쳤어야지. 혼자서 감당하라고 해 놓고 이제와서 그러면 어쩌잔 말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명확하다. 슬픔을 주변에 기댈 줄 아는 딸을 바란다면, 어렸을 때부터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튼튼하게 뒤를 받쳐주는 부모가 먼저 되어 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