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차마 내게 못 물었던 질문들, 그리고 당신 딸이 답하지 못할
정신건강의학과와 상담센터는 무척 다른 곳이다. 한 쪽은 물리적이고, 한 쪽은 심리적이다. 게임 세상으로 비유하자면- 한 쪽은 무기창고 혹은 마법상점에 가깝고, 다른 한 쪽은 일정 마법진 안에 들어가면 hp가 회복되는 성녀의 신전 같은 곳에 가깝달까. 죽고싶어하는 사람을 죽지는 않도록 생사 확인하며 강제로 힐을 넣어주는 곳이 정신건강의학과라면, 살고 싶어지도록 마음 속의 빛을 찾아주는 곳은 상담센터다. 눈물을 그치게 수도꼭지를 뇌 화학반응을 통해 잠가주는 게 정신건강의학과이고, 눈물이 왜 났는지 손수건을 대 주며 슬픔을 함께 탐구하는 곳은 상담센터다.
당신이 만약 드라마를 보며 정신건강의학과 가운을 입은 연기자가 다정하게 주인공을 바라보고 걱정하며 상담하는 장면을 보았다면, 그건 순 뻥이라고 일러두고 싶다. 아, 물론 내 담당 의사선생님이 매정하고 차갑다는 말이 아니라(제 의사선생님도 이 글 보신다고 했단 말예요!)- 미디어에서 보여지던 정신건강의학과의 장면은 대체로 내가 상담센터에 앉아있던 장면과 흡사하단 뜻이다.
우울하다는 사람들도 원인과 상황에 따라 종류가 다르지만 내게 병원에 갈지 상담센터에 갈지 추천해달라고 하면 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무조건 병원과 상담센터를 병행하는 것이 베스트이고, 둘 중 하나를 골라서 먼저 간다면 상담센터를 먼저 가보라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정신건강의학과
죽고 싶은 사람에게 살고 싶어하는 희망보다 오늘 살 체력적인 힘을 약과 전기 치료 등으로 제공하는 곳. 예약제가 대부분이므로 무턱대고 들이닥치면 [예약을 잡고 다시 와 주세요.]라는 말을 듣기 쉽상. 따듯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곳을 절대 먼저 들러선 안 된다. 두근거리며 처음 방문하면 이비인후과와 다름 없는 일반 작은 병원 분위기에 실망하게 될 수도 있으니. 2년동안 다녀본 결과, 내가 다닌 병원은 나이가 많으셔서 수면제를 타려고 들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50% 정도였다. [매 번 먹던 약으로 약만 주세요.]하고 보호요양사와 함께 오시는 어르신분들도 있다. 이런 곳에 왜 왔지, 싶을 정도로 멀쩡해 보이는 직장인들도 30% (아마 나도 여기 껴있을 수도 있다.)다. 유모차를 끌고 오는 젊은 엄마도, 교복을 입고 "부모님 허락 받고 왔는데 혼자 와도 돼죠?"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병원 분위기는 대부분 차분하나, 아시는 어르신들끼리 함께 오면 갑자기 동네 내과에 온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아, 그러다 하염없이 소파에서 울고 있는 사람 한 사람 정도는 보게 된다. 그럼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애써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군가 훌쩍이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병원, 그런 소파에 앉아있노라면 태블릿을 줄 것이다. 간단한 검사라고 하면서. 약 50문제 정도 되는 것들에 체크를 하고 나면 무한 대기 끝에 내 차례가 온다. 무슨 말을 물어볼까, 긴장하면서 들어선다. 그럼 무슨 일로 오셨냐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게 된다. 난 알아서 태블릿 결과를 보고 맞출 줄 알았는데, 내가 기대했던 건 무당의 그 무엇이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곳은 약을 주고 체력적으로 당신을 죽지 않게끔 만들어주는 곳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도 진료 스타일이 무척 다르므로 (이건 다음 이야기에서 하겠다.) 병원을 몇 군데씩 돌아가며 검사만 몇 번씩 하는 환자들도 많다. 당신이 울면서 일상이 망가짐을 호소할수록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은 당신과의 진료를 하루텀으로 짧게 잡을 것이고, "어, 저 괜찮은데요?"하면 할수록 당신과의 진료를 2주에서 한 달로 늦게 잡을 것이다. 즉 이 곳은, 당신의 어려움과 아픔을 '먼저' 알아봐주는 곳이 아니라 '당신이 직접 아파서 얼마나 어떻게 일상이 망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챈 뒤에 증상을 낱낱이 말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 곳은
1) 자신의 증상이 무엇인지 (예: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못 자요) 정확히 알고 있으며
2)그것이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 말로 표현하기 용이하고
(예: 길을 걸어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수근수근 거리는 소리가 신경쓰여서 점점 집 안에 있게 돼요.)
3) 약물 치료의 효과가 모든 정신적 병을 감기처럼 낫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예: 우울증 약을 먹어도 내 우울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으며 해리포터의 폴리주스처럼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죽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이 울어대던 내가 더 이상 울지 않고 생각을 할 수 있게끔 정신을 또렷하게는 해 준다.)
효과가 좋다.
아, 직장인이라면 병가나 휴가를 얻을 때 진단서를 뽑아야 할 터. 정신건강의학과는 한 두번 진료만으로 내과처럼 진단서를 내주지 않으므로 유의할 것. 병원마다 물론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최소 3개월 정도 정기적으로 진료를 보고 나서 진단서를 써 주셨다. 그리고 보건소, 행정복지센터 등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진료비에 대한 지원도 많이 하고 있으니 늘어나는 약 값에 너무 걱정하지 말 것. (난 후청구 시스템이었다.)
2) 상담센터
내가 왜 슬픈지, 마음이 왜 아프고 자꾸 눈물이 나는지에 대해 내 어릴적부터 찬찬히 뜯어보는 곳. 이곳의 최대 단점은 상담비가 비싸다는 것인데(난 한 시간에 칠만원이다. 다른 곳은 한 시간에 팔 만원이더라고!), 그건 최근 지자체(예: 정신건강복지센터, 시청)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사업이 '마음건강'이라는 키워드로 꽤나 많이 실시되고 있으므로 의외로 쉽게 돈을 지원받거나 아주 일부분의 자분담비로 상담센터를 연결해주는 곳도 많으니 참고할 것.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전국민 마음건강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다. 전국 시청 및 구청에서 검색!)
당신이 드라마에서 보던 일이 여기서는 벌어진다. 처음 훌쩍거리며 이 문을 통과하면, 당신은 따뜻한 차를 드시겠느냐 혹은 차가운 물 한 잔을 드시겠느냐는 친절한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첫 방문자들은 여기에 오게 된 연유를 처음 상담에서 토해내게 될 것이다. 그럼 이곳에서는 문장 검사, 우울증 척도 검사, 스트레스 검사 등 500가지가 넘는 질문이 꽉꽉 들어찬 종이들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그걸 다 해내는데 꼬박 4시간이 걸렸다. (나는 글을 빨리 읽고,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잘 보는 축에 속한다.) 물론 여기도 사전 예약은 필수다. 상담 센터 역시 같은 센터라도 선생님의 능력과 나의 성격에 따라 무척 다른 케미스트리를 발현하므로 초반에 나랑 안 맞는다 싶으면 주저 없이 선생님 변경 요청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내가 죽고 싶어했던 이유를 찾아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지도 못한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뾰족하게 심어지는 질문들이 나를 돌이켜보게 할 때가 있다. 나의 우울함의 최종 보스가 어디에 도사리고 있는지, 다양한 질문과 심리적 기법들을 통해 나는 내 안으로 파고들어간다. 상담 선생님 앞에서 엄마라고 펑펑 울어제낀 적도 많고, 부들부들 떨면서 아빠 밉다고 소리친 적도 있다.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쓴 적도 있다. 모두 텅 빈 소파를 보고 행한 일들이다. 남들이 보면 미친 것 같다는 특이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벌어진다.
상담센터는 다만, 스스로 변화에의 의지가 없으면 없을수록- 상담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없을수록 다니기 힘들다. 내 과거와 현재를 모두 들여다보는 건 생각보다 에너지가 빨리는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남에게 내 속을 내보이려면 일단 나부터 힘을 내야 한다. 그리고 상담선생님과 가끔은 하릴 없이 농담 따먹기만 하고 집에 갈 때도 있다. 그럴 때 의심부터 하고 보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상담센터에 가선 안 된다. 다음 상담 시간에 '지난 상담 시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사실 이런 뜻이 있었답니다.'하고 사주처럼 풀이를 해 주실 때도 있으니까. 그리고 예상치 못한 나의 모습을 다음 상담에서 꿰뚫어 보고 그것에 맞추어 상담 기법을 준비해 오시곤 한다.
3) 내가 두 곳을 병행하는 걸 추천하는 이유
상담센터만 다니다보면 이상한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하여 '나 불쌍해' 병. 상담센터는 당신의 시점에서 당신을 철저히 '주관적으로' 봐 주는 곳이다. 당신의 시선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따듯하게 보듬어주는 곳이란 말이다. 당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따끔하게 혼을 내는 학교같은 공간이 아니다. 병원에 다니면 그 '나 불쌍해' 병이 치료가 잘 된다. 객관적인 의학적 지식으로 '당신은 지금 이러이러한 상태이고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약을 먹고 있으며 이건 중증도 우울증 환자 대비 상위 몇 점의 정도이다.'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도 같이 다니다보면 나 뿐만 아니고 이 여러 사람들이 모두- 평범해 보이는 남녀노소의 인간들이 어떠한 문제가 있어 정신건강의학과에 오는구나, 하는 안도감도 맛볼 수 있다. 소파의 유대감, 그건 상담센터에서 1대 1로 상담 선생님을 만나다보면 가끔씩 겪는 '나만 이렇게 유별난 건가' 현타를 예방할 수 있다.
병원과 상담센터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파트너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는지 매일 병원에서 생사 확인을 해 주고, 밥도 안 먹는 내가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도록 약으로 어떻게든 신체 심폐소생술을 불어넣고 있으면 상담센터에서 토스를 받아 영혼 심폐소생술을 연달아 실시한다.
어떨 때에는 상담 선생님이 한 시간 이야기한 것 보다 냉철한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의 통찰 한 마디가 나를 살아 있게 할 때가 있다. 또 어떨 때에는 일주일동안 밥도 잘 안 먹어서 겨우 약으로 버티고 있던 내가 상담 선생님과의 어떠한 이야기 보따리의 풀어냄으로 입맛이 싹 돌아 다음날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니 웬만하면, 두 곳 다 가기를 추천하는 바다.
아, 어떤 상담센터나 정신과가 좋냐고? 그건 다음 이야기에 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