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딸도 저처럼 책임 과다 우울증 환자인가요?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한 자가 진단을 해 보려고 한다. 몇 개나 자신이 해당되는지 잘 헤아려 보기를. 이 10개 자가 진단 중 7개 이상이 해당된다면, 당신은 나와 비슷한 증상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름하여 ‘자신조차 속이는 프로 기특러.’. 기특하다는 말에 갇혀버린 책임 과다 우울증 환자 말이다.
1. 며느리(사위) 삼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콧방귀가 켜진다.
2. 오늘 점심은 뭐 먹지? 라고 물으면 주로 ‘아무거나’라고 말하곤 한다.
3. 부모님께 3-4일 간격으로 전화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이상하게 불안해진다.
4. 주말 스케줄은 꽉 차 있는데도 즐겁기는커녕 삶이 허한 것만 같다.
5. 남들도 다 이렇게 쓸쓸하게 살다가 죽는건데 나만 유난인가, 싶어 오늘도 참는다.
6. 슬픈 감정조차 언제 느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7. 삶이란 원래 고통스러운 것, 그러니 당연히 이 정도는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8. 남들의 분위기에 맞춰 피곤해도 술을 많이 먹거나 약속을 취소하지 못한 적이 많다.
9. 막상 혼자 있는 시간이 오면 뭘 하고 싶지 않아 멍하니 있는다. 그러다 후회한다.
10. 내 몸과 마음이 어떻게 하면 편안한지 방법을 잘 모르겠다.(혹은 방법은 알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그럼 이제 질문을 바꾸자. 당신 딸은 얼마나 해당될 것 같은가? 우리 엄마는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기껏해야 한 두개라고. 하지만 내 대답은 다르다. 내 정답은 열 개 모두이다. 그러니 당신의 딸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 말기를. 당신 딸은 건강하리라 무턱대고 믿지 말기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른들에게 많이 들은 말. 자랑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전혀 자랑이 될 수 없는 감탄. 그건 바로 “역시 딸이 최고야!”이다. 주로 아들 가진 직장 상사나 엄마 친구분들, 하다못해 작은 엄마까지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 그럼 나는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아이, 아니에요.”라고 손사래를 쳐야만 한다. 자매품으로는 “아우, 우리 집 며느리 삼고 싶네.”가 있다. 그런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살던 어느 스물 아홉의 봄, 나는 세탁기를 부여잡고 밤 11시에 미친 듯이 울었다.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라고 중얼거리면서. 누구에게 사과하는 지도 모르고, 그렇게 세상이 두려워 벌벌 떨었다. 넋이 나간 거지. 흔한 말로는 돌아버리거나 미친년이 된 거고.
아. 나 뭐가 잘났냐고? 생각보다 별 스펙은 없다. 평범하게 살아온 막내딸. 공무원 8년차이자 자취생이다.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경기도에서 돈을 벌고 있으며,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작은 원룸 하나를 계약해 잠을 잔다. 이만하면 경제적으로는 삐빅- 정상이라고 자부한다. 서른 살이고, 특징으로는 모르는 어른들께도 서스럼없이 웃을 수 있는 넉살을 지녔다. 학창시절 한 번 전교 1등을 한 적이 있으며, 그 이후로는 전교 5등 밖으로 내몰린 적 없다. 비평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도 반 3등 이내로 떨어진 적은 없다. 아, 한 번도 왕따 당하거나 주동한 적도 없다. 어떨 때에는 주요 대세 무리에 낄 때도 있었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잘 나가는 무리와 척을 져서 소수의 친구들과 논 적도 있다. 하지만 친구가 없다고 외로웠던 적은 없다. 그러니 내 청소년 혹은 아이 시절도 불미스러운 사건 없이 삐빅- 평범하게 통과다. 부모님은 가끔 엄격하시지만 날 사랑하시고, 형제자매들도 사춘기 시절 호르몬에 휘청였지만 다행히 지금은 제 밥 벌어 먹고 산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의심했을 가정의 불화도 NO! 해당 없음이다.
이렇게 정신질환과 가까워 질 수 없는 내 배경을 깔고,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맛이 간 것일까? 성격이 파탄났거나 흔히 말하는 또라이는 아니냐고? 주변 어디에나 있으면서 자신은 차마 되지 못하는 것, 그건 ‘착하고 평범한 엄마 친구 딸’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 별명이었다. 부모님 살뜰히 잘 챙기고, 가족의 대소사에 깊이 관여하며, 그렇다고 마마걸은 아니게 바깥에서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한다. 그 취미 생활이 이상하지 않고 또 책 읽기 모임 나가기처럼 참으로 건전하고. 직장에서 사회 생활을 잘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제 몫을 잘 챙기며 싹싹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해 들어오는 귀여운 막내딸. 그게 그동안의 나였단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결코 자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난 그 결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이 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으니까.
[며느리 삼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잘하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이나 어려운 일도 누군가 해 주었으면 하는 낌새가 보이면 체념하고 얼른 일어나서 외쳐야 한다. 제가 하겠다고. 그러면서도 주말에 [딸이 최고]라는 말도 들으려면 가끔씩 심심치 않게 부모님께 작은 이벤트도 선물해드려야 한다. 좋은 가게에 함께 찾아간다던가, 해외여행을 함께 한다던가 같은. “어우, 다른 애들은 엄마랑 노는 거 부담스러워하고 시간 없다고 하는데, 저 집 딸은 어쩜 엄마 아빠 살뜰히 잘 챙기고 저렇게 애교가 많을까?”라는 말을 들으려면 주기적으로 지방 본가에도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계발에 한창인 SNS속 또래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도 주기적으로 나가야 하며 또 그 무리에서 센스 있는 누나가 되기 위해 지금 유행하는 옷 스타일도 이따금씩 확인해줘야 한다.
저 모든 게 나였다. 해야 하는 것에 휩싸인 나. 하고 싶은 걸 모르는 나. 어떻게 살아갈지 한 치의 희망도 없는 나.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지만, 더 이상 삶이 재미 없어 살고 싶지 않았던 나.
그러니 모든 평범한 대한민국의 딸들이여, 청춘들이여.
앞으로 “며느리 삼고 싶을 정도로 싹싹하네.” 혹은 “이 집 딸은 효녀야-”
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마어마한 삶의 위험신호로 삼을 것.
당신도 나처럼, 색이 바래진 채 언젠가 죽기만을 바랄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