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궁금해할, 그리고 당신 딸이 답하지 못할
가족 몰래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면 단점만 100% 가득할 것 같지만, 난 의외로 장점도 있었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나의 장단점을 한 번 꼽아보겠다. 우선, 장점부터.
장점 1) 평상시와 같은 태도 : 날 환자 취급하지 않는 가족
'주변에서는 우울증 환자로 비춰지는 내가, 이 가족 세계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웹소설 제목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직장이건 친구 사이건 내가 우울증이고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계에서는 나를 어쨌거나 '아픈 환자'로 취급해 준다. 그래서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부둥부둥한 신경쓰임에 지친 나는 가끔 KTX를 타고 본가로 향하곤 했다. 거기에서는 부모님이 설날이 됐다고 전도 부치라 하고, 심부름도 다녀오라고 한다. 밤 늦게 잠 못자고 깨어 있으면 빨리 잠이나 자라고 불을 팍 꺼버린다. 언니는 입맛이 없어 살이 빠진 나를 보고 "올, 다이어트 했냐?" 하고는 만다. 나도 이 사이에서 부대끼고 주말을 보내면 나도 평범한 생활로 다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잠깐 맛보고 돌아온다.
장점 2) 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도피처
장점 1에서 파생된 것이기는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보면 머리를 짚고 슬퍼할 일이긴 하지만, 내 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병원에 다니는 내가 지긋지긋하다. 매일 약을 먹고 잠드는 내가 너무도 위중한 환자같아서, 그게 짜증이 난다. 그럴 때에 가족 품으로 가면 나는 멀쩡한 사람인 척 연기를 해야 하므로- 내게 '너는 환자가 아니야. 여기서 너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막내 딸이야.'라는 암시를 걸 수 있다. 약도 싫고 병원도 싫고, 계속 나아지지 않는 병에 지쳐 잠시 도망치고만 싶을 때 집은 최후의 보루 중 하나였다.
장점 3) 자존감 지킴이 : 네가 뭐가 어때서?!
아무도 내가 어떤 병을 앓는지 모른다. 그런 가족들에게 나는 여전히 멋지고 자랑스러운 딸이다. 그들 눈에 나는 부지런한 청년이고, 젊고, 무한한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는 존재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다 우울증에 뒤덮인 자기비하가 툭 튀어나오면, 그들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는 말한다. 너만한 애가 어디있냐고. 너처럼 잘 사는 애가 어디있냐고. 거짓이긴 하지만- 난 가족들의 그런 반응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남들이 보기에 내 삶은- 대단하고 멋진 삶이긴 한가보네? 하고.
단점 1) 내 행동을 이해 못하는 가족들 : 쟤 갑자기 왜저래?
아무도 내가 어떤 병을 앓는지 몰라서 생기는 단점 중 가장 큰 것은, 나를 아무도 이해 못 해준다는 점이다. 갑자기 잠을 퍼질러 잘 때도,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던 애가 죽어도 엄마랑 같이 장 보러 가기 싫다고 해도 가족들은 나를 의아해한다. 그리고 내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끌고다닌다. '얘가, 지금 귀찮아서 그렇지! 밖에 나가면 누구보다 좋아할 거면서 그래~' 갑자기 생기거나 없어지는 행동들에 대해 댈 핑계가 없다. 나는 나대로 답답하지만 미쳐버린다.
단점 2) 약을 몰래 먹어야 함, 서러워 죽겠음
약 먹는 것도 짜증나고 싫은데, 이걸 부모님이나 같이 방 쓰는 언니 몰래 먹어야 한다는 건 엄청난 미션이다. 눈을 피해 물잔을 들고와야 하고- 언니가 화장실 간 새 재빠르게 입 안에 털어 넣어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꼬박 챙겨먹어야 하는 약을 한 두번씩 거르기 일쑤다. 그럼 또 눈물이 나를 맞이한다. 몰래 아픈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이걸 힘들게 해내야 하다니!
단점 3) 죄책감 견디기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알아야 할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내 마음 속에는 또 다른 하나의 자아가 찾아온다. 바로 '죄책감' 자아. 이걸 대체 말을 해야 하나, 언제 해야 하지, 꼭 해야 하나, 근데 안하면 안될 것 같은데. 뭐 대략 이런 생각의 흐름이다. 꼭 시험에서 0점을 맞아 부모님께 싸인을 해야하는 학생의 마음가짐이다. 이 개떡같은 내 채점지를 어떻게 부모님께 보여드려야 하냐고. 나 때문에 머리 싸매고 슬퍼할 가족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 죄송한데. 죄책감은 끝도 없이 나를 파고들어간다.
장단점을 마치며
상담 선생님도 주변 사람들도 의사 선생님도 모두 한 입 모아 말한다. 언제 가족에게 말할 거냐고. 꼭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은 개인의 병이니 말하지 않고도 나 혼자 이겨낼 수 있다고. 그들의 도움 필요 없다고.
지금은 안다. 그들의 도움은 없어도, 그들의 이해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