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자금은 코인 선물 투자를 했다는 애한테 사기당했다
* 이 글은 올해 1월에 썼습니다.
650만원을 빌려줬다.
네 통의 전화, 몇 번의 거절. 한두 번의 망설임은 내게 많은 걸 가져다줬다.
그래도 경조사에 제일 비싼 돈 내가며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이를 순식간에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로 바꾸어놓았으며, 내 상담선생님이 찰지게 쌍욕을 잘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통장에 얌전히 모셔놨던 650이 내 마음속에서는 결혼 자금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뭐 그 외에도 많다. 기타 등등으로 처리될- 몇 년만에 연락한 대학 동기들과의 ‘나도 당했다’식 위로, ‘넌 근데 친한 사이였잖아?’하는 의심, ‘넌 너무 많이 빌려줬다.’는 안타까움과 비교적 안심을 위한 저울질 상대라는 새로운 타이틀 같은- 것들.
돈을 못 갚겠다고 울면서 전화가 왔거든. 갚겠다고 했던 날짜에서 이틀 동안 전화기를 꺼 놓고 잠수 탄 뒤에. 그것도 한 차례 핑계를 대며 미뤘던 시간이었고.
남의 일이었다면 ‘야 니가 왜 울어. 걔가 잘못한 건데 왜 네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돈을 빌려준 네가 왜 슬퍼해. 당장 일어나.’ 같은 멋진 말을 랩처럼 쏟아냈을 나는 전형적인 돈 빌려준 사람의 루트를 따랐다. [다 내 잘못이다. 친구를 믿고 바보같이 큰 돈을 내어준 내 잘못이다.] 일명 다 내 탓이오 전법. 세상이 무너졌고, 나의 오늘이 망가졌다. 전형적인 80년대 주말연속극에 나오는 흔한 사기를 당한 내가 너무나도 경멸스럽고 창피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가는데, 갑자기 돈이 좀 비어서. 2주 뒤에 24일이면 상속세로 갚을 수 있는데- 2주동안 천만원만 빌려주면 안 될까? 내가 너무 급해서 그래.]
대학교 동기였다. 10년동안 함께하며 일 년에 한두 번씩 집에 초대해 서로 몇 박 며칠씩 자고 가는 그런 사이 정도. 그렇다고 애틋하거나 그렇진 않고, 취준생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을 함께 고민하던 사이. 먼저 결혼으로 치고 나가던 친구를 응원하던 사이. 갑자기 죽어버린 친구의 남편을 같이 장례식장에서 욕해주던 사이. 각자의 직장과 서로의 부모님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알고 있는 정도. 하지만 이상하게 1대 1로 만나기는 껄끄럽던 사이.
남자친구와 장을 보고 있다가 전화가 오는 바람에, 돈을 빌려준 사실을 들켰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제발 혼자 마음의 짐을 끙끙 앓고 있지 말고 남자친구에게 말을 하라고 했다. 하려고 했다. 얼굴을 보자마자 ‘이걸 어떻게 말한담.’ 싶어 눈물이 왈칵 차올라 그냥 울어버렸지만. 남자친구는 오랜만에 만나 보고싶어서 그런 줄 알더라고. 보고싶었다. 맞다. 혼자 이걸 끙끙 들쳐매고 있으려니 새벽마다 잠이 안 오고 배도 안 고파서 또 나는 과도하게 뛰는 심장을 혼자 붙들고 어쩔 줄을 몰라했으니. 정신과에 다시 가서 응급약을 받아와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억울했지.
왜 나만 이런 일이. 왜 또 나에게 이런 일이. 다 나 때문인가 봐.
내 말을 들은 그이는 화를 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 애에게. 그리고는 나를 보고 말했다. “어쩐지 얼굴에 그늘이 졌더라니. 이런 건 말해줬어야지. 이건 네가 잘못한 게 정말 아니야. 내가 널 힘들게 하는 걔 어떻게해서든지 잡아다가 복수할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응?” 그리고는 왜 말을 안했냐 묻더라고. 그냥, 그냥. 날 떠날까봐. 이렇게 멍청한 여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했다는 게 싫어질 수도 있으니까.
정신을 똑바로 안 뜨고 마음으로 닿으려 하면 탈이 나는 세상. 나는 또다시 살기가 싫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결국 피해입은 건 너야. 네가 다 감당해야지. 누굴 탓해. 전후관계 안 따지고 그렇게 큰 돈을 빌려준 네 탓이지.] 마음속의 나는 또다시 내 편이 되어주질 않고 신나게 따져댔다. 변명할 여지가 없는 나는 무작위로 빨라지는 심장을 바쳤다. “저녁 뭐 먹고 싶어?”라고 물어도 나는 어떠한 입맛이 없다고만 했고, 그는 알겠다며 나를 토닥여줬다. 상태가 좋지 않은 나를 눈치챈 남자친구의 위로- 하지만 내게 와닿지 않는 그의 따스함은 나를 똑바로 세워낼 수 없었다. 내가 불러일으킨 슬픔의 온 바람에 매섭게 흔들리던 그 때, 마트에서 화장지를 봤고 나는 아빠를 생각했다.
“따라 올거면 오던지, 아님 말던지.”
설날 연휴라 본가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내게 닿은 읊조림. 무슨 말이냐고 따라붙은 내게 아빠는 본가 화장실 타일에 하얀 액체를 죽 짰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마른 걸레를 들더니 슥슥 액체 위를 닦아냈다. 더러웠던 타일 틈새가 새하얗게 변했다. 아빠는 이어 말하기를, 이게 코팅도 해 줘서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곰팡이도 잘 안 슨다고. 이사한 딸 자취방 화장실 상태를 보고 걱정된 60대 아빠는 서른이 넘은 딸에게 타일선 시공제를 건넸다. “이거 많아. 하나 할거야? 그럼 주고.” 라며.
나는 타일 줄눈 코팅제가 제대로 말랐는지 물어볼 아빠가 있다. 설명서는 다 순 천지 개뻥이고, 바른 순간부터 물 튀어도 된다고 그냥 샤워하라는 아빠가 있다. 이삿날 갈구친다고 뭐하러 가냐고 말하고는 이사 다음날까지 첫 날을 함께 새 자취방에서 자주는 아빠가 있다. 냉장고를 어디 놓냐고 물어보는 업체 직원들에게 갑자기 휙 튀어나오면 부딪히니 좀 더 들어가서 넣어달라는 아빠가 있다.
갑자기 좀 괜찮아지는 기분. 어떻게든 언젠가 다 잘 해결될 것만 같은- 정말 말도 안 되게도 아빠가 어떻게 해서든지 내 떼인 돈을 받아다 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마음. 그 날 저녁은 결국 뭘 먹었더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입맛이 똑 떨어져 굶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 돈 빌린 그 애를 남자친구와 신랄하게 씹어댔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이틀 뒤,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빌려준 친구를 만났다. 해외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제 돈이 사실은 이사에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 때문에 알았다고. 그래서 부리나케 그 애의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고. 친구에게도 나와 똑같이 [10년에 걸쳐 5만원씩 갚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늘어놓았다고. 함께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있냐며, 대학 다닐 때는 우리보다 더 똑똑한 면도 있지 않았냐며 이해가 안 간다고 함께 욕을 했다. 자리가 마무리될 무렵, 디카페인을 시켰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임신이라고. 안 지 이틀 됐다고. 내일 병원에 남편과 함께 갈 거라고.
이 상황에도 삶은 생으로 가득차 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구나. 갑자기 환한 햇빛이 내 머릿속을 따듯하게 데워 노릇노릇해진 기분이었다. 절망에 절여진 내 꼬불꼬불한 생각 덩어리들이 환상의 소스를 만나 멋진 요리가 된 것만 같은, 혹은 불행 연기가 꾸리꾸리한 채로 내 머리를 꽉 채웠는데 누군가가 맞통풍이 이는 창문을 확 열어버린 기분. 다 탄 줄 알고 잽싸게 뒤집었더니 사실은 딱 알맞은 색으로 구워진 식빵을 발견한 요리사 같달까.
망한 줄 알았는데 나는 망하지 않았더라고. 망한 건 내가 아니더라고. 내 오늘은 여전히 무사하더라고. 생은 무해하게 반짝일뿐더러. 나는 그런 것에 기쁘게 놀랄 줄 아는 사람이더라고.
다음주에 임신 8개월인 친구와 함께 한 번 더 우리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유일하게 결혼을 안 해 혼자 사는 내 집에 두 임산부들의 방문이라니, 뭘 준비해야 할지 긴장이 된다. 그들을 위한 임신 축하 선물과 차, 과자를 준비했다.
나는 세상을 여전히 마음으로 담는다. 탈난 마음은 털어낼 줄 안다.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요리할 줄 아는, 만렙 불행러이다.
언젠가 돈은 내 꼭 받아낼 것이리라! 복수의 그 날을 기다려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