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나를 그만 포기했으면 좋겠다
요새 타자를 치려 하면 왈칵 눈물이 차오른다. 그래서 곧잘 포기한다. 글 쓰는 것을, 곰곰이 생각에 빠지는 것을. 또 있다. 빌려 놓은 책도 내팽개친 지 오래다. 글을 쓰려 하면 생각만큼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 고통스럽기만 하고, 책 좀 읽을라치면 내 글이 절대로 출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별로인 이유를 거기서 찾아내고야 말고, 생각을 하다보면 능력이 안 돼 그려놓았던 어떤 미래를 하나씩 놓아버려야 하는 게 슬프기만 하다.
남자 친구 말로는 내가 “마음에 심술이 났다.”고.
맞는 말인 것 같았지만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포악하게 속상할 말을 골라 그에게 쏘아붙였지. 그리고는 반성 중. 마음에 심술이 났다는 표현이 그나저나 참 몽글하니 예쁘다. 글 쓰겠다고 말로만 나불거리는 나보다 사실은 진심을 가진 모든 이가 글쓴이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나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다시 눈물만 똑. 환영한다, 여기는 내 마음속 심술보 창고다.
왜 심술쟁이가 됐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이유같은 걸 파헤치는 건 지겹게 해왔다. 나는 까끌까끌한 이 마음에게 하루 운전을 맡겼다. 심술심술심술심술심술. 다음 왼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심술이 마음 안에 폭, 탑승할 것이다. 남자 친구가 “왜 오늘 표정이 안 좋아 보여? 무슨 일 있는 게 분명하다. 혹시 어제 나랑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라고 물으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도리도리. 엄마가 안부 전화를 하다가 “그래도 너는 이런 일 말고 다른 일을 했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면 “다시는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 기분 나빠. 알면서 왜 그럴까?”라며 전 날 생일이었던 사람 무안하게 만들기. 팍팍해진 마음은 누군가 손을 대기만 하면 피가 날 정도로 점차 거칠어졌다. 평상시에는 별일 아니라며 넘길 말들이 내 심술 창고 레이더망에 잡히자 무척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금세 사라진 말들은 과거의 어떠한 경험들을 자석으로 끌고와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는 괴상한 형태로 변해 나를 짓누르고 괴롭혔다. 가령, 이렇게.
[엄마가 전부터 내 일을 한 번도 인정해 준 적이 없었어. 옛날부터 다른 일 하라고만 했지. 그만좀 하라고 몇 번씩 말해서 엄마가 편지도 써 줘 놓고서는 결국 본인을 위한 사과였던 거야. 것 봐. 진심으로 미안했으면 나한테 다시는 그런 말 안 했겠지.]
“요새 결혼 얘기만 하면 나한테 화만 내잖아.”
남자친구가 입이 튀어나온 채 내게 한 말. 지난 6월에는 서로의 가족에게 인사를 하러 다녀왔다. 그리고 왕창 속상해서 1박 2일동안 울며 불며 날카로운 말을 뱉었다. 그 이후로 ‘웨딩’이라는 말이 붙으면 나는 예민해졌다. 그런데 이를 어째, 준비는 이제 시작인걸. 우리는 8월에 호기롭게 베트남으로 웨딩 촬영을 가기로 했고, 내년 5월에는 식을 올린다.
뭐 때문에 그리 ‘성질’을 부렸냐 묻는다면 말이지. 나와 그만의 시야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가족의 취향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외국인과 결혼을 한다면 오히려 이만큼까지 속상하지는 않았겠지, 싶다. 미묘하게 다른 가치관을 얼만큼 조율하고 어디까지는 포기해야 하는 건지 모두 정해야만 한다. 내가 과도하게 날이 선 예민한 인간이라 알아서 상처를 받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스스로를 미치게 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무언가 마음 좋게 배려를 해도, 거꾸로 받아도 찝찝하다. ‘그러니까 어쩌라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상대방도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힘든 마음 고생을 했겠지- 하고 지레짐작할 뿐. 나도 만족시키고, 내 곁의 사람도 행복하게 웃음 지으며 한 발짝 나아가는 일은 언제 일어나는 걸까. 커피 수혈을 하러 갔다가 딱 마주쳐버린 상사에게 인사말로 살짝 말을 흘렸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내 커피잔에 얼음을 타 주며 말씀하기를,
“그래. 지금 합쳐지기 전에 다 싸워. 마음껏, 충분히 다 싸우고 나면 더 싸울 게 없어져. 그러면 결혼하고서는 지우개로 싹싹 지운 것처럼 살면 돼.” 라더라. 잘하고 있다며 엄지도 척 올리면서. 직접 타 주신 커피잔을 황송하게 받아들고 90도로 인사를 세 번쯤 하고서야 탕비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치, 다 지나갈 한때지. 근데 나는 왜 그 한때가 이리도 복잡하고 고통스럽냐 이 말이다. 내가 뭘 더 얼마나 마음의 성숙에 돌을 쌓아야 되냐고. 돌 같은거 하나도 안 쌓고 자연스럽게 모든 게 다 원하는 대로 사는 세상같은 건 내겐 불가능한가. 원래 다 생긴대로 제 멋대로 살려고 이 삶의 태어남을 견디는 것 아닌가. 심술보에 심술 1 적립 완료.
이번 주에는 두 가지 일로 언쟁이 있었다. 미리 심술 2 적립 완료. 첫째는 먼 거리를 연애한 두 사람이 어디에 거처를 잡아야 하는지, 둘째는 웨딩 관련 계획이나 예약을 내가 하는지 네가 하는지, 얼만큼 관심을 두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중 첫째는 밸런스 게임같았다. 좋은 선택지는 없는 것. ‘똥맛 카레냐, 카레맛 똥이냐’ 같은 부류. 누군가의 직장을 옮기면 그 사람의 일의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것, 대신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될 수 있다는 것. 당장 함께하려면 돈과 시간을 꽤 많이 쏟아부어야 하지만 지금처럼 주말에만 만나면 얼마간 이사에 드는 힘이나 출퇴근 시간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인지. 결론은 없고, 패자 둘만 남았다. 그는 내게 말했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어. 이걸 택하면 다른 것 하나는 포기하는 거야. 모든 게 다 그래.”
나는 악다구니를 부렸다. 지방이 죽도록 싫어 겨우 경기도에서 자리를 잡고자 노력하던 내 시간들이 다 물거품이 되어야 하는 게 너무나도 싫어서. 그렇다고 내 욕심에 직업 난이도를 하드코어로 올리라고 그에게 명령할 수 없는 노릇이라서. 중간점은 없다. 선택만 있을 뿐이다.
[너도 나를 안 만나고 원래 살던 지역에서 부모님 말처럼 선 봤으면 이런 고민은 안 했을텐데.]
내가 내뱉은 자조 섞인 말에 그는 답했다.
[너와 함께하며 들었던 말 중 가장 상처받는 말이었다.]고.
‘네가 아니었다면.’ 혹은 ‘내가 아니었다면.’이라는 만약은 내가 힘들때면 제일 먼저 하는 회피성 상상이다. 하지만 습관처럼 찾는 이 만약이 그 사람에게는 다르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는 후회를 뒤늦게 했다. 회피성 연애 중독자들이여, 밑줄 치고 외워라. ‘내가 아니었다면-’으로 시작하는 자학은 상대방에게 ‘네가 싫다.’로 번역되어 들릴 수 있다. ‘너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 고생을 하지 않았을텐데.’ 정도의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나중에 여자 친구들끼리 이 이야기로 1시간 동안 엄청난 토론을 벌였다. 내 편과 내 남자친구 편이 1대 1씩. 스코어는 동점이었다.)
내 욕심이 버거울 만큼 크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은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 삶에서 모든 낭만이 걷어진 서른 한 살의 여자는 이윽고 포기를 해야만 하는 날이 온다. ‘서울에 가까운 경기도에서 신축 아파트에 자가로 살며 가족과 화목한 하루를 보내는’ 건 일곱 살 적 백마탄 왕자님이 나를 구하러 쫄쫄이 레깅스를 입고 나타날 거란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해보니 나는 기대했던 것들에게서 내가 충족할 만큼 뭘 얻은 적이 없다. 열몇 살 때에는 수능 대박이 나기를 기도했고, 스물 언저리에는 돈도 많고 직업도 좋고 잘생긴 냉혈한 ceo 남자가 나에게만 친절히 여기다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를 꿈꿨고, 그 이후에는 좋은 집에 얼떨결에 쉽사리 계약을 해서 넓고 환한 데에 언젠가 두 다리 쭉 뻗고 살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인생은 포기하는 것들로부터 성숙함을 배우는 과정일까. 모든 걸 다 움켜쥔 채로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여우의 신포도처럼 “어차피 못 먹을 거, 실 거야! 맛 없을 거야!” 생각해 버리는 모습이 나는 바보같았는데, 그걸 스스로 해야하다니. 긍정적인 태도, 생각의 전환 같은 외국 숏츠 내 핸드폰에 뜨기만 해봐라. 다리를 죽 찢어버릴라. 성숙은 개뿔. 긍정도 엿 바꿔먹어라.
슬픔, 분노, 역겨움, 또 다시 슬픔, 결국 체념. 하나씩 포기할 때마다 겪는 내 감정 리듬 체조다. 일단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결국 이룰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세상이 슬퍼진다. 내가 보는 모든 일상이 무기력해진다. 그러다가 불쑥 화가 난다. ‘이까짓거 하나 못 하게 되다니, 세상이 나를 억지로 까는 게 분명하다.’는 투다. 그렇게 마음껏 나랑 눈이 마주쳤던 일만이천명의 사람들에게 모두 저주를 내리고 나면, 역겨워진다. 모든 건 다 나 때문이다, 남들이나 바깥 상황 탓할 게 못 된다고 저주의 대상을 나로 바꿔버린다. 나의 능력 없음을 마음껏 한탄하며 나를 채찍질하면 결국 아픈 사람은 나다. 그러니 슬플 수 밖에. 하늘이 점차 옅어진다. 진짜 날씨가 바뀐 게 아니다. 사진에서 채도를 한 단계 낮추는 것처럼 나는 눈 앞의 모든 풍경을 라단조로 담는다. 명도도 한 단계 아래, 채도는 두 단계 아래. 체념이 완료된 내 안경은 곧 선글라스가 되려나 보다. 모든 걸 검어보이게 만들려고.
다 가지면서 살고 싶다. 하나씩 내려놓는 것 말고. 내려놓는 건 웬만치 다 가졌던 사람이 인심 좋게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길바닥에 툭툭 하나씩 던져주는 거다. 헨젤과 그레텔은 빵조각을 뒤에서 야금야금 먹은 새들 때문에 집을 못 찾아 곤란했지. 집을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만이 제 빵을 길에 던질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아직 집도, 어디에 살아야 할지 결정도 못 내린 나 같은 젊은 사람은 가진 게 없으니 뭘 내려놓을 필요 없는 거라고. 성숙 같은 건 그 다음에 도모해도 된다고. 그러니 내가 이렇게 심술궂은 마음으로 악다구니를 부려도 괜찮은 거라고. 내 이 욕심은 언젠가 꼭 채워 소화시키고 말리라, 다짐한다. 어떻게든 싸워 이길 것이다. 나는 내 욕심에게 지지 않으리라. 하고 싶은 것, 쥐고 싶은 건 어떻게든 꼭 쥐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내 다짐에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포함하여.
‘이걸 가지려면 다른 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지.’라는 말 같은 건 안 들을거다. 인생은 취사선택이라는 말이라니,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된거라며 내 바람들에게서 나를 떼어놓지 말지어다. 이상, 웨딩 스냅 촬영이니 신혼집이니 결혼식 최소 보증 인원이니 모든 것들에 자꾸 적당히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보다 다른 것들에 혼란스러운 나에게 고하는 선전포고. 다만 플랜 A만 고집하지는 말 것. 네 욕심을 다르게 표현할 만한 새로운 선택지를 찾을 것. 무조건 내가 옳다, 내 욕심을 있는 힘껏 다 부릴거라는 무지성 땡깡 대신- 합리적인 땡깡질을 부릴 것. 그 속에서 체념이나 포기 대신 ‘계획 변경’이나 ‘그래도 저기로 가는 길’이라고 표현할 것.
말조차 웃기다. 합리적인 땡깡질, 패악질. 하지만 이게 내 인생 철학인 걸? ‘말이 될 정도로 부려보는 욕심 땡깡이’ 그걸 주변 사람들은 ‘독하게 결국 제 원하는 걸 어떻게든 실현해내는 창의적으로 대단한 애’라고 부르더라고. 이번에도 또 해내보지, 뭐 까짓거 결혼이건 뭐건. 다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