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다 내 탓이오-
나는 나를 싫어하게 되는 게 싫다. 자꾸 나를 싫어하게 만드는 세상에게 "그만 가스라이팅해!"하면서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고 싶은데, 힘이 없는 것도 같다.
내가 스스로 과대 평가를 하고 자아 비대에 빠졌던 걸까- 되돌아보게 된단 말이다. 자기 혐오를 멈추고 오늘을 살아남는 것. 내 요새 과제다. 그러면서 둘 중 하나를 택하고야 만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탓을 돌리기 2) 남 탓으로 치부하고 죄책감에 괴로워하기. 나는 제 3의 답안지를 찾는다. 명랑뽀짝하게 나도 사랑하고 세상도 밝은 마음으로 바라보자는 전형적인 여자주인공같은 사람은 될 수 없기에, 적당히 음침하지만서도 스스로 갉아먹지 않을 반응은 언제, 어떻게 나올랑가.
이건 웨딩 드레스부터, 엄마의 부름까지 모든 것에 자기 혐오와 싸우는 여자-아마도 진 것 같지만-의 투쟁 일지.
웨딩 촬영을 해외에서 셀프로 하기로 했다. 이 한문장이 얼마나 사치스러워보이는 지 안다. 하지만 몇 가지를 포기하면 의외로 한국에서 하루 날 잡고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 보다 훨씬 저렴하게 끝낼 수 있다. 그 중 제일은 신랑과 신부의 꾸밈비 지출이다. 나는 웨딩 촬영 드레스를 몇십 만원에서부터 몇 백만원까지 호가하는 샵 대여 대신 직접 구매하기로 했다. 알리 익스프레스나 쉬인, 그리고 지그재그를 활용하면 한 드레스당 비싸봤자 5만원 이내로 살 수 있다. 오늘은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건 아니니까 이 쯤 하겠다. 나의 자기혐오는 돈이 아니라 사이즈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웨딩 관련한 옷을 고르다 보면 기분이 확 나빠진다. 결혼은 서로 사랑해서 행복을 위해 하는 건데, 나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눈물만 매일 쏙 빼고 있다. 신부를 빛나보이게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대면서 사이즈를 왜 이렇게 다들 작게 만들어 놨냐고! 내가 살이 찌긴 쪘다만, 남들이 보기에도 "너 굉장히 체형이 튼튼하구나!"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자부하는데 말이지.
모든 옷들이 다 너무나도 작다. 심지어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데 구매를 못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당근에서 두 달 동안 '드레스', '웨딩드레스'를 알림 설정 해놓았는데도 중고로 사지 못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국에서 마치 결혼을 위해서 사이즈 상한제를 정해놓은 기분이다. [최대 허리 사이즈 70cm가 넘지 않는 여성들만이 결혼을 할 수 있음.]같은 문구가 법률에 추가된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두 달 동안 뒤진 수십 개의 중고 드레스들이 모두 그놈의 사이즈 S나 마른 66까지만 가능한 M 일 순 없단 말이지. 다들 170cm에 50kg가 분명하다. 나 같이 168cm에 58kg인 여성은 라아지 사이즈를 특.별.히 파는 곳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
중요한 건, 드레스 몇 개를 입어보고 배가 튀어나온 걸 확인하면서- 엉덩이가 꽉 끼는 걸 보고야 말면서- 점차 내가 못생겨 보인다는 사실이다. 열받기 그지없다. 신부를 화나게 만들어서 다이어트 업계와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는 게 아닐까, 드레스 업계의 사이즈 단합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저녁을 며칠 굶었다. 그리고는 매일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튀어나온 뱃살을 손으로 집어본다. 못났다, 정말. 그러다 보면 나는 점차 자신감이 없어진다. 내가 쓰고 있는 글도 별로인 것 같고, 눈가의 주름도 자글자글해진 것 같고, 내 청춘은 이제 다 끝난 것만 같다. 그러다가 임신한 내 친구를 만났더니 나한테 말하더라고.
[뭔 소리야. 너 키 커서 그래. 세상이 너를 가스라이팅 하게 두지 말거라.]
나는 애매해졌다. 사실 세상의 기준이라는 게 확고히 정해져 있는 건 사실인 걸. 옷을 사려면 나는 영락없이 L에서 바지를 뒤져야 하는데. 잘난 글이라는 건, 남들한테 인정 받는 글이라는 것도 몇 개로 추려지긴 한단 말이지. 생각해보면 이런 뜻이었겠지. '네 기준이 남들과 다를지언정 굴하지 말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만의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칭찬해 줄 것.' 그게 참, 내가 나를 가스라이팅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만 같아 어리석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자타공인 예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완벽히 남들의 기준과 나를 맞출 수는 없는 걸.
그것 하나만은 확실하니까.
나를 혐오하게 될 것 같은 사건, 또 있다. 나를 사랑하는 이의 부름. 그리고 나는 그 부름에 응하기 싫거나 곤란한 것. 여기서 나를 사랑하는 이는 우리 엄마다. 엄마는 내게 몇 번이고 묻는다.
"웨딩 촬영 전에, 잠시 집에 들러서 쉬었다 가면 안 돼?"
나는 답했다. 이러저러한 일과 다른 것들이 겹쳐 참으로 시간이 안 난다고. 그럴 체력이 부족하다고. 왕복 6시간을 다녀오기에 나는 지금 눈 앞에 닥친 일거리가 진심으로 많단 말이다. 글쓰기 마감 기한이 두 개나 있고, 웨딩 촬영 준비도 해야 하고, 해외 여행 스케줄도 짜야 하고, 독립 출판 디자인 점검도 3일 안에 해야만 한다. 그런데 엄마는 딸이 너무나도 보고싶어 묻는 것이다.
"알지, 알지. 근데 그거 다 집에서 하면 안돼? 엄마 숨 안 쉬고 방에서 하는 거 지켜만 볼게."
응, 안 돼. 하고 단호하게 끊는다. 그리고 나서 나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럴 거면 차라리 갈 걸, 싶지만 나는 지금 내게서 버티는 중인거다. [부모님 부탁보다 나의 체력과 중요한 일을 먼저 여겨볼 것.]이라는 퀘스트를 깨는 중.
사실, 저런 말을 자꾸 하는 엄마가 미울 때도 있다. 신경쓸 거 다 알면서 왜 자꾸 물어본담. 나는 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면 짜증이 먼저 치밀어 오르는 걸까. 나를 그럼 가고 싶게 만들었어야지, 어렸을 때 이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훌륭하고 자식을 위해 헌신한 엄마인 걸 다 알면서 나는 엄마 탓을 하고야 말고, 그런 내 자신이 미친듯이 별로라서 나는 내가 꼴보기 싫다.
받을 것만 받고, 재수 없는 지지배.
나는 아직 내게 '어쩔 수 없었지, 뭐.'하는 아량 넓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자꾸 스스로 미워지려고 할 때의 해답을 나는 언제 찾을까. 나를 만난 사랑하는 이는 유달리 내 표정이 어두운 걸 금세 눈치챘다. 내가 별 일 아니라고 잡아뗐지만, 소용 없었다.
"아닌데, 그렇기엔 얼굴이 너무... 너무 재미없는 표정인데."
맞다, 나는 즐거움이나 행복을 느끼기에 죄책감이 커서 삶을 부러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과 잠이 들면서, 나는 외로이 혼자 자는 엄마가 더 늙어 나를 애타게 찾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한껏 우울해졌다. 그리고 나면 개운하게 슬픈 마음으로 잠에 들 수 있다. 나에 대한 벌, 스스로 그만 주고 싶은데 참 쉽지 않다. 그래서 미용실 예약을 했다. 웬 뜬금 없는 미용실이냐, 묻겠지만 다 연관이 있단 말이다. 친한 친구의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
"돈을 써야 할 때를 안 쓰고 말야, 넌 참 ... 희한한 데 돈을 쓸 때는 또 언제고. 너를 꾸미는 것에 취미를 가져 봐. 이 때 아니면 언제 그렇게 해보겠어?"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나의 아름다울 돈지랄. 나는 나를 아끼고 치장하는 것에 돈을 쓰는 게 그렇게도 아까웠다. 그래서 내가 못나 보였던 걸까- 하고 뿌리 염색을 하러 왔다. 이 염색이 끝나면 홍대에 귀찌를 사러 갈 것이다. 웨딩 촬영에서 쓰일 일회성. 너무 아까워 못살겠다고 투정 부리지 말고, 눈 앞에 보이는 어떤 것들에 평소와 다른 시도를 해 보자고, 그러면서 나를 예쁘다고 생각해 보자고 다짐했다.
뭐, 또 어떻게 될 진 모르겠다. 하지만 맨날 똑같은 행동만 하면서 못나보인다고 칭얼거리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일단 해보고 다른 방향으로다가 칭얼거려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