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가 너무 예뻐서
웨딩 촬영 겸 여행 겸 베트남 푸꾸옥에서 사랑하는 이와 일주일을 보냈다. 일부러 노트북도 자판도 놓고 갔다. 요샌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이 나를 오히려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느끼지 못하게 한다. 자꾸만 눈 앞의 것들을 보이지 않게 한다. 자꾸만 성장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망치려 들어. 나는 나로 오늘을 그저 살아가고 싶은데, '그저 살아가기만' 하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뒤흔든다. 주식을 공부해야, 에세이를 써야, 소설을 도전해야, 집을 알아봐야, 책 디자인을 검수해야, 웨딩 촬영 시안을 더 찾아야 하지 않느냐고.
욕심을 놓고 떠난다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일부러 스스로 약속했다. '무언가 진정으로 와닿지 않고서야 굳이 웨딩 촬영을, 이 베트남 여행을 글로 쓰지 말자.'고. 덕분에 두 가지 이야기를 마음에 꼭 담을 수 있었다. 이건 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나의 생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은 멋진 남자를 믿는 사랑.
매일 밤 입장료만 내면 볼 수 있는 쇼의 불꽃놀이를 보며 흐느껴 울었다. 그 날이 괜히 감성적인 어느 날이었냐고 묻냐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파삭 꺾인, 한껏 예민한 날에 가까웠지. 2달 전부터 한국에서 예약한 날, 우리가 사진을 찍는 그 시간대에 불현듯 비가 내렸다. 세차게. 현지인인 카메라 작가님께서는 바닷가 위의 구름을 보아하니 전혀 비가 금방 그치지 않을 거라며 촬영을 중단했다. 우리는 짧은 영어로 내일 맑았으면 좋겠다며 기도 이모티콘을 날렸고, 세 명의 간절함은 전혀 푸꾸옥 비의 신에게 가 닿지 않았다.
바로 이 날이었다. 언제 또 다시 촬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푸꾸옥이 우기에 속한다는 걸 레스토랑 점원에게 상세한 설명으로 몇 번이고 들었으며- 미리 예매해놓은 쇼 티켓은 비가 우렁차게 내리는데도 절대 취소 불가였던 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는 이 날 밤도 관중들은 꽉꽉 들이찼다. 나는 도떼기 시장처럼 프론트 데스크에서 온갖 인종의 사람들을 헤치고 우비를 사 입었고, 밤 9시 30분에 야외 좌석에 털썩 앉았다.
"우리가 언제 이럴 때 아니면 폭우 쏟아지는 밤에 우비만 덜렁 입고 밖에 나가보겠어."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은 기분이 영 꽝이었다. 패키지 여행에 겨우 딸려 나온 기분이랄까. 어거지로 끌려 나온 기분. 그깟 이만 몇천 원 얼마나 한다고 늦은 밤 폭우 아래 나를 팔아넘기듯 앉히냔 말이냐고.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나를 또 홀대하는 것만 같아서, 스스로에게 샐쭉해졌던 찰나였다.
쇼는 대단하지 않았다. 비에 홀딱 젖은 단원들이 우르르 나와 '우주 평화의 사랑' 주제에 맞추어 군무를 선보였다. 조명 장치때문에 감전이 되는 건 아닌가 몰라. 여기선 왠지 산재 처리도 안 해줄 것 같은데, 저건 자본주의가 인간을 학대하는 참혹한 현상 아닌가- 정도의 생각을 했었지. 이윽고 20분이 넘게 양동이에서 누군가 퍼나르듯 부어내리던 비 속의 춤이 끝나고, 엉덩이는 축축해지고, 우비에 맺힌 빗방울들이 속눈썹에 타고내려와 이따금씩 눈을 털어주어야만 했던 그 때-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세차게 터지는 불꽃들을 바라보다가 슬프지 않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행히 아무도 몰랐다. 내 옆의 남자친구 빼고. 다들 환호를 지르고 있었거든. 펑 하고 첫 불꽃이 하늘로 출발했을 때에는 울지 않았다. 그저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 웬만한 불꽃놀이를 한 번에 합친 것 마냥 장대하고 오래 불꽃들이 반짝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분이고 오래동안 불꽃이 내 머리 위를 감쌌을 때,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기네 말로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며 하늘을 향해 손짓하는 다양한 외국인들, 여전히 내 마음도 모르고 때려붓는 비, 내 옆에서 멋지다고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는 그 이. 그리고 다시 하늘을 보자- 파노라마처럼 힘들었던 지난 몇 년 간의 내가 이상하게도 펼쳐졌다. 글로 쓰려니 그 때의 순간이 아름답지 못하게 색칠되는 것만 같아 한 줄씩 쓰기가 버거워진다. 그러나 만화처럼, 동화처럼 그랬다. 언제고 내가 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멀거니 주방을 쳐다봤던 때라던지- 잠을 못 자 1시간에 한 번씩 악몽에 시달렸던 작년이라던지- 벚꽃을 보고 도로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렸던 제작년이라던지 모두 한 순간에 휘리릭 지나갔다. 맞다, 지나갔다. 그게 지나갔다는 게 나를 울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다 지나가도록 견뎌냈으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불꽃을 하염없이 볼 수가 있는 거구나.
나는 이 불꽃놀이를 보려고 지금까지 살아있었구나.
살아있기 잘했다.
그냥 저냥 버티면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고, 그리고 그런 하루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조하던 내게 모든 회색빛의 날들을 예쁜 색들로 다시금 색칠해 준 기분. 그냥 저냥의 색은 밝고, 선명하고, 화려하고, 대단한 불꽃 색이었다. 그게 기뻤다. 여기까지 꾸역꾸역 비를 맞으며 앉아 있는 내가 기특했다. 그게 중요했다. 나는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언제 했었을까. '스스로 먼저 죽지는 않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한 번도 없지 않았을까. 이렇게 불꽃놀이에 하염없이 울먹거리는 사람이라면 분명 처음일 것이다.
나의 오열을 눈치챈 내 남자친구는 의아해 하지 않고 나를 보아주었다. 그것도 참 중요했다. 나를 보며 함께 눈을 반짝여주었다. 불꽃놀이가 다 끝나고 돌아가는 길, 내가 그에게 말했을 때의 대답이 참 따스해서. 나는 이 사람과 결혼 결심을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있잖아, 나 사실 불꽃놀이 보면서 뽀앵 하고 울음이 터졌어. 그래서 많이 울었어."
"응, 왜 그런지 알겠어. 그럴 것도 같더라. 나도 저 불꽃들을 보고 감동받았는데..."
너는 오죽했겠니-라는 뒷말은 삼켜졌을테지. 나를 바라보는 저 다정한 눈빛에 담겨진 채로. 나는 내 마음을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투명하고 깊게 봐주는 이를 만나 결혼을 한다. 우리는 맞잡은 손을 풀지 않는다. 함께 비를 맞을지언정 혼자 두고 가진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빛나는 하늘을 함께 바라볼 것이다. 그러니 이 인생은 실패할 리가 없다. 폭우인지라 사진 하나 남지 않은 불꽃놀이었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멈춰진 순간이 없어 내겐 오래도록 재생될 것이다. '살아있기를 잘했다.'는 걸 느낀 소중한 순간으로.
스스로 '내가 이 남자를 어떻게 믿고 결혼을 결심했을까.'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 괜히 심술을 부리느라 푸꾸옥 모든 일정을 그 사람에게 맡겨버렸다. "널 믿고 싶으니 그럴 기회를 줘."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불꽃놀이를 보고 돌아오는 그날 밤, 선셋 타운 거리를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여행은 '내가 그 사람을 믿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을 이만큼 믿고 있었구나.'를 스스로 깨닫는 여행이 되었다고. 웨딩 촬영 소품찾기에, 촬영 시안과 분위기 정하기에, 결혼식 관련 예약을 괜히 혼자만 하는 기분이 들었더랬다. 이 사람은 '나는 결혼식에 바라는 로망이 하나도 없다.'는 말로 결국 내게 일을 맡겨버리고 신경도 안 쓰는 것만 같고. 그럼 심통은 고민과 걱정으로 심화되어 날개를 펼친다.
'내년에 집을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돈 생각을 하고는 있는 거야? 대책은 없고 그저 같이 살겠다고 다짐만 하면 뭐 하냐고. 또 나 혼자 다 알아보고 찾아봐야겠지. 그럼 난 대체 뭘 위해 이 결혼을 하는 거야?'
"모든 건 다 완벽할 수 없어. 천천히 그 때 맞추어 하나씩 해나가면 돼."
"쉬는 것도 중요한 거야. 쉬는 것도 일이야."
내 성미에 맞지 않는 여행 계획 짜는 속도도, 무언가를 찾아보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무척 신중한 것도 괜히 답답하게 들렸던 때가 있다. 최근에 점점 예민해져가고 있던 찰나였다. 이래서 결혼은 현실이라고 말하는 거구나, 같은 마음이 은연중에 들었단 말이지. 하지만 그 불꽃놀이를 함께 보고서- 그리고 내가 울었다고 했을 때 나를 바라봐주던 그 눈빛을 보고서- 나는 알았다. 내가 왜 결혼을 이 사람과 하려고 했는지.
[오늘을 살아있게 해 주는 사람이니까. 사랑이라고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는 마음이니까.]
이 사람이랑 어드메 신축 아파트에 기필코 살아서 자산을 증식하려고 결혼하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왜 자꾸만 홀라당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이의 빛나는 모습을 벅벅 닦아내려고 했을까.
이 사람은 나를 오늘에 살게 한다. 기필코 살아내서 좋았다는 마음을 들게 해 준다. 아, 손을 꼭 잡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노라면 죽는 게 무섭다는 기분도 들게 해준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데 불현듯 무섭더라고. 온 몸이 찌르르 떨려왔다. 그 사람은 내가 이착륙이 무서운 줄 알고, 걱정하지 말라며 토닥여주었다. 나는 솔직히 고백했다. "갑자기 죽는 게 무척이나 무서워졌다."고. 그 사람은 어떠한 답을 주질 않았다. "그랬어? 그런 생각을 했구나."라며 나를 꼭 안아주었을 뿐이다. 그 품 안에서, 그럼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생이 끝나면 이 정신머리도 다 날아갈 테니, 매일 하루 사랑하는 이와 꼭꼭 붙어 후회 없는 오늘을 보내자고.
이보다 더한 사랑은 내 인생에 없을 것이다. 나는 아주 직관이 뛰어난 사람이니까, 소중한 것이 왔을 때 놓치지 않고 꽉 쥐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그게 내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다.
삶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이를 나는,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