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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돈을 갚고, 사직하고, 안 울어도 될 때 운다

삶은 그러니 애틋한 자신만의 감옥이 분명하다고

by 라화랑

이번 주에도 차곡히 쌓인 무언가들.

서른 살 차이나던 직장 동료가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뒀다. 우울증이라고. 샤워를 할 힘이 없단다. 옛날부터 우울증 약은 먹고 있었지만, 요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먹는다고. 그 앞에서 뒤늦게 흘리는 눈물은 사실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방패임을 잘 안다.

무거운 슬픔을 상쇄하기라도 하듯, 뜻밖의 연락도 왔다. 650만원을 빌리고 감감무소식이던 자의 메시지. 200만원을 먼저 갚겠다는 말. 깜짝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5분 뒤에 내 계좌번호를 보냈다. 세 번에 걸쳐 각각 보내진 100, 90, 10만원. 자체 출판을 내주겠다는 직장 연수에 덜컥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무작위 추첨되었다. 기쁘다, 기쁘고. 슬프다.

삶은 여전히 자꾸 무언가 일어나고, 내 가슴속은 여전히 뻥 뚫려있다.

억지로 슬픔을 느끼려고 하지 않는데도. 뚫려진 빈 칸에 기쁨을 채워넣어선 안 되는 것임을, 나는 이번에 깨달았다. 그럼 뭘 넣어야 할까. 자기 싫어하는 밤이 길어져만 가는 어느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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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밝힌 날은 이미 회사의 승인이 떨어진 후였다. 그날따라 하필 배가 아픈데 청소 여사님께서 내 사무실 바로 옆 화장실을 청소하시기에 아래층까지 화장실 원정을 다녀왔었더랬다. 덕분에 회의에 5분 정도 늦었고, 나는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옆 사람에게 귓속말로 물어야 했다.

“무슨 일 있어요?”

말 없이 눈짓으로 한 명을 가리켰다. 회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 경력이 대단하신 분. 하지만 편하게 말을 걸기에는 망설여지는 사람. 팀 회식을 하거나 회의가 사담으로 이어지면 여지없이 ‘저는 오늘 너무 바빠 이만 일어나겠습니다.’라고 사라지는 동료. 어떠한 의견이 자신과 반대된다면 끝끝내 동의하지 못하고 언짢아하는 성향의-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는 이.


“…그래서 내일까지만 하고 그만두기로 했어요. 요샌 내가 너무 쓸모없다는 생각만 들어요. 다들 모두에게 너무 미안하고… 하지만 더 이상 문제가 생기기 전에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정말 내가 미쳐버리기 전에… 저는… 이젠 너무 힘들어요.”


우울증 약을 복용한지 10년이 넘었고, 아들 내외는 뉴질랜드에 산다는 얘기를 그 날 처음 들었다. 최근에는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에 출근하기가 어렵다고. 점점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쉬고 싶어요. 제주도에 있는 엄마 집에 가서 쉬려고요. 집도 아예 내놨어요.”

모든 짐을 두고 떠나신다고. 쓰레기 처리 업체에 맡길 힘이 없어 작년에도 함께 일했던 동료가 도와드리기로 했다.

엄마에게 이 일을 간략히 전화로 전했더니 갑자기 글썽이는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그래. 그렇게 그 나이여도 엄마가 있으면 얼마나 안심되고 좋아. 그래, 거긴 참 다행이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제작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나보다. 여기에 혼자 남겨진 엄마는 울음을 애써 삼키며 급히 전화를 끊더라.


모두는 각자의 슬픔에 갇혀 살고 있구나.

혼자 오롯이 웅크리고 연민의 감옥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네.

삶은 그러니 결국 애틋한 감옥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직장 동료의 우울증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눈물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안쓰러워서가 아니다. 혼자 애쓰던 2년 전의 내가 가슴 속에서 훅 튀어나와서. 아직까지도 버튼 하나 누르면 바로 뛰어나오는 그 때의 우울이 여전히 버거워서. 나와 다른 마음이겠지만, 그 자리에서 그녀의 말을 듣던 모두 울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심지어 신규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뚝뚝 떨구기까지 했다.


곧이어 죄책감이 몰려왔다. 나는 나를 방어하기 위해 변명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복사기 앞에서 어떠한 일이 힘들다고 토로하신 적이 있었다. “어떻게든 이해 안 된 채로 넘기면 되긴 되더라고요.” 하고 넘겼다. 최악의 답변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동료의 무기력함에 나도 일조를 했겠거니- 매일 눈 마주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슬픔 티끌 한 점도 눈치채지 못한 무관심함, 나의 건조함은 내 탓이 아니다. 일과 때문이고, 이 직장 때문이며, 사회 전반에 걸친 더운 공기 때문이리라, 그러리라, 그래야만 할 것이다. 다음날 정말로 사라져버린 빈 자리는 생각보다 표가 나지 않았다. 금세 임시직으로 채워진 누군가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나는 일주일 동안 그녀가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몇 가지 받아 채워넣었다. 며칠 만에 제주도로 떠나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마지막으로 건넨 인사가 상대의 굴을 더 파지 않았는지 골똘히 생각해본다. 몇 차례 두드리기를 망설이다 연 문 앞에 뱉어진 말은, “또 봬요.”였거든.


우리 언젠가, 어떠한 인연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부디 제발, 놓지 말아 주시기를,

없는 셈 치고 살았던 내 돈의 일부가 갑자기 돌아온 것처럼.


내 돈인데, 분명 원래부터 내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선물을 받은 것만 같다. 직장이 같아 월급날이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갑자기 돈이 좀 생겨 약간은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에 계좌번호를 보냈다. 10분에 걸쳐 세 번에 나뉘어진 200만원이 차례 차례 입금되었고, 나는 이 연락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잘 지내는지 걱정도 되고, 잊지 않아 주어서 고맙기도 하고, 여전히 화도 나는 혼란스러움을 얼마나,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떠한 말도 나는 내뱉지 않기로 결심하기까지 퇴근길 저녁 하늘을 그렇게도 올려다보았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간다. 구름은 내가 모르는 사이 유유자적 밤을 향해 걸어가고 나는 지난 2월, 친구가 내게 사기를 쳐서 돈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절망을 다시금 떠올린다. 사람 없는 마트에서 홀로 매대를 올려다보며 눈물만 뚝뚝 떨구던 서른 한 살의 여자. 물건을 들고 갈 힘이 없어 쫓겨나듯 밖을 나서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여자에게 절대로 [정확히 2025년 7월 0일에 일부의 돈을 갚을지어니 쓸데 없는 일에 그만 슬퍼해라.]라고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결국은 어떻게든 흘러갈 일에 매여있을 필요가 없는데- 언젠가 아침이 온다는 걸 인간들은 매일 잊어버리고 살아. 나는 특히 더 그렇고. 내 눈 앞에 당장 보이는 하얀 뭉치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구름인 줄로만 알면서 마음에 안 든다고 징징. 눈을 깜빡이고 눈 앞에 닥친 오늘의 노을을 가만히 쳐다보다보면 언젠가 올 텐데. 알 수 없는 미래에서 보낸 나의 편지가. 나는 여전히 지금이 가장 인생에서 예쁘고 신날 때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는 걸 보니, 편지를 보내도 못 알아들을 팔자인 가 보긴 하다.



최근에 직장에서 메시지가 두 통 왔다. [귀하는 00 연수에 20: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었으니….] , [이 연수에 신청한 사람만 497명이었어요. 등록되신 걸 축하드리며 중간에 낙마하는 일이 없도록 성실하게 임해주시기를….] 매 주 사는 로또 5천 원도 당첨되지 않는 내게 갑자기 웬 복이 붙어 들어오나 했더니 이제야 알겠다. 어떤 훗날의 내가 서른 한 살의 나에게 각기 보낸 두 개의 구명조끼였음을. ‘눈빛이 텅 비어버릴 때가 됐네. 이거 몸에 잘 두르고 어리석게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지금의 날 위해.’ 같은 말을 속삭였을까. ‘나도 지금 너만큼만 젊었으면 못 할 일이 없겠다. 뭘 망설여?’ 같은 채근을 담았을까. 나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십 년 뒤의, 오 년 뒤의 나에게 각기 보낼 편지를 말이다.


안녕, 더 쭈글쭈글해진 나야.
지금보다 마음 편하게 숨 쉬고 있니. 거리낌 없이, 가슴에 불날 일 없이, 이유도 모를 답답함을 꾹 눌러버릴 일이 거긴 정말로 없니.
지금 나는 얼마나 멀쩡하고, 얼만큼 고장난 상태니.
더 나빠지니, 내일부터 갑자기 좋아지니.
나, 내일 로또 당첨되니.
넌, 7월 9일 밤 8시 14분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울지 않아도 될 것들에 여전히 울고 있다는 답장을 받고 싶다.

보는 순간 또 울 것이다.
하지만 기쁠거야.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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