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남해 몽도 - 지족마을에서 만난 마음을 어루만지는 누군가의 일기장
'이동진'
다양한 그림책을 그리고 글도 썼으며, 특히 내게는 동요 '노을'의 작사가로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노을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 ]
아뿔싸. 어렸을 때부터 주구장창 부르던 아름다운 노랫말을 만드신 분이었다니. 내가 저 분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주름을 잡은거야?
어마어마한 수치심이 얼굴 가득 열을 올렸다.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아니다. 저 분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오는 과정 중 하나로,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작품들을 만들었던 것 뿐이다. 그래서 내게 굳이 자랑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눈 앞에 있는 자신의 글씨에 더욱 설명하고 싶어하셨던 거야. 경력이나 사회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에는 진심으로 관심이 없으셨던 것이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나였다면, 만약 내가 그렇게 유명한 동요를 만든 사람이었다면 난 동네방네 지나가는 강아지에게도 "너 혹시 이 노래 아니?"하고 돌아다닐, 마음의 양식이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일텐데.
점심을 먹고 난 뒤로, 빵빵해진 배를 슥슥 문지르며 밖을 나섰다. 분명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소품샵 가게 이름이 … 저거다. '공동작업장' 미리 알지 못했다면 절대 소품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이름이었다. 주변 예술가들을 모아 같이 작업하는 곳인 줄 알았을 것이다. 조심스레 입장하자, 어떻게 알고 미리 관광을 온 두 명의 여자들이 사진을 찰칵 찰칵 찍으며 자신의 얼굴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카운터에 서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사투리가 섞인 친절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희 공간에 대해 먼저 설명드려도 될까요?
[아, 네.]
먼저 설명드려도 되냐고 묻다니, 다정하고 섬세하다 생각하며 잠자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저희 공동작업장은 여러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어요. 지금 보시는 그 공간에서는 다양한 소품이나 생활 용품들을 판매하고 있고, 저쪽에 보시면 사진이나 글이 있는 두 번째, 남해의 기억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깥쪽 테라스에도 잘 꾸며져 있으니 한 번 구경해 보시고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말 그대로 하얀 벽지에 다양한 소품들이 나를 데려가-라며 뽀용뽀용하게 누워있었다. 단정하지만 소탈하고, 그래서 더 손이 갈 화려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손수건, 공책, 엽서 등을 즐겁게 구경하다 별자리 목걸이와 에코백을 손에 들었다. 비싸보이지 않는, 손으로 직접 만든 것 같은 단촐함이 마음에 들었다.
소품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쳐 두 번째 공간으로 향했다. 파도가 출렁이는 화면이 빔을 통해 벽면으로 쏴지고 있었다. 쏴아- 쏴아- 쓰으- 하는 물이 찰랑이는 소리, 벽 가득히 붙은 남해의 풍경들. 카메라에 담고 싶은 광경이라 얼른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의 시선 끝에 닿은 것은, 갈색 원목 책상과 글자들이었다.
처음에는 파는 건가 싶어서 사장님께 여쭤봤다.
[이 엽서들, 혹시 파시는 건가요?]
-아뇨, 이건 그냥 제 일기장에 써진 것들 중 일부예요. 구경하시라고 올려놨어요.
수줍게 웃으며 화답해주시기에 본격적으로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저는 글자라면 마다하지 않는 특이한 여자거든요. 특히 다른 사람의 일기를 가장 좋아하고요.
그렇게 몇 개만 읽으려던 글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나는 거진 30분을 가만히 앉아 꽂혀있는 글귀들을 대부분 읽어버렸다. 마치 이 공간같았다. 일부러 꾸며내지 않은, 진짜 누군가의 마음이 꾹꾹 담긴 단어들의 합.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자신을 얼마나 갈아넣으며 되돌아보았을 지 가늠도 되지 않는 단순하고 깊은 마음들이 나를 끌어당겼다. 몇 개를 사장님 허락을 받아 대신 소개한다.
행복 앞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란,
사실은 얼마나 절박히 행복을 찾고 있는 외로운 사람일지
가늠도 되지 않아 무척 가슴이 아려왔다.
글자들 사이에 스쳐지나가는 주인의 쓸쓸함, 사람 간의 상처, 그럼에도 회복하고자 스스로 애써 다독이는 손짓, 부러져버렸던 순간들, 누군가와 비교했던 열등감, 나에게 내미는 화해의 마음가짐. 그 모든게 나에게 폭 다가와버렸다. 나는 홀린 듯이 카운터에 가 물었다.
[이런 마음을 품고 계시면, 마음이 너무 아프지 않아요? 어떻게 이 모든 걸 견디고 계셨어요?]
그런 나를 보며 맑고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해주시는 주인분.
-아, 괜찮아요. 저는 원래 다른 사람에게 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라서요. 그렇게 일기로 풀어내는 게 저만의 해소법이에요. 그렇게 모든 마음을 털어내고 나면 괜찮아져요.
또랑또랑하고 흔들릴 줄 아는 내면을 가진 여자는, 이렇게 아름답구나. 눈빛에서 느껴지는 사장님의 깊이에 나는 그만 떼를 쓰고 말았다. 저 글귀가 너무 갖고 싶으니, 제발 한 장만 팔아주실 수 없겠냐고. 사장님은 고민하며 엽서를 알려 주시더니 이내 내게 말씀하셨다.
-혹시 저 글귀가 갖고 싶으신 거면, 제가 그냥 선물로 하나 드릴게요. 저는 제 일기장에 있는 거라 다시 쉽게 만들 수 있거든요.
엄마야, 나 떼 써서 결국 진상 손님 됐나봐- 하는 미안함과 하지만 저 글귀를 꼭 갖고 집에 가고 싶다는 사악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10초동안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승자는 이기적인 나였다. 나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며 제일 마음에 들었던 글귀 하나를 가방에 챙겼다.
그리고는 말했다.
[사장님, 꼭 작가님이 되세요. 저 이런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책이라면, 언제든지 사고 싶어요. 많은 돈을 지불해서라도 꼭 사고 싶은 마음가짐이니까 꼭 독립 출판이라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내년에 여기 또 들러서 살게요.]
그런 나의 방정맞은 대답을 고맙다며 웃어주시는 사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밖에 나왔다. 여기 저기 고마운 마음에 늘 빚지며 살아간다. 다시 한 번 따뜻하고 아린 마음에 기대는 나를 받아준 사장님과 남해를 꼭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나가기 전 사장님께 다른 소품샵이 있냐 물었더니,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곳이라며 100m 앞에 있는 곳을 소개시켜 주셨다. 아주 예쁘게 생겨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나. 하지만 저는 100m앞에서도 길을 잃어버리는 길치인걸요…? 하며 망설였더니 웃으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건물이 참 특이해서 괜찮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무사히 100m 앞에 보이는 특이한 건물 앞에 섰다. '초록스토어' 라는 이름에 걸맞게 초록 지붕으로 덮인 창문이 깜찍했다. 하얀 벽과 그에 상반되는 진갈색 문을 활짝 열고 조심히 입장했다. 들어서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갈색 나무 인테리어가 가득해 탄성을 내뱉었다. 다양한 에코백, 엽서, 스티커, 공책류 등이 나를 반겼고 정신을 놓을 찰나에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가방 무거우신 것 같은데 저 안에 소파 있어요. 소파에 가방 놓고 편히 구경하세요.]
크지 않은, 단단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누가 봐도 저 사람이 예술가겠구나- 느껴질 정도의 멋진 옷차림을 한 남자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셨다. 앗, 넵! 하고 얼른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았다. 뭐야, 감동이야. 내가 물건을 살 지 안 살지도 모르는데, 그저 구경온 손님을 향한 따뜻한 배려라니. 나는 그만 결심하고 말았다.
-여기서 뭐 하나라도 꼭 사가리라.
나의 지갑은 화려한 물건에 열리지 않는다. 다만 친절한 사람과 마음에게 활짝 열릴 뿐이다.
이쯤 되니, 나는 물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 간의 선한 온도가 필요했던 걸 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북스테이를 통해 얻고 싶었던 건,
다름 아닌 누군가의 위로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분명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무척이나 심각한 우울증 상태에서 세상과 등지고 싶은 마음에 그저 쫓기듯 도망치는 심경이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책과, 예상치 못한 많은 사람들의 친절함과 마주하며 손 내미는 법을 배우다 보니 이제야 알겠다.
난 혼자 있고 싶어서 북스테이를 찾는 게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서 북스테이를 찾는 것이다.
시끄럽지 않은 어떤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글씨와 함께, 이런 내 취미를 공유하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마음씨 고운 독서가를 찾는 여정이 아니었을까. 그걸 남해에 와서야 깨달았다.
예쁜 파우치 하나를 발견해 구매하며, 물었다. 주변에 예쁜 카페에서 글을 좀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무심한 듯 친절하게 '샘성에 가보세요. 삼성 말고 샘성. 그렇게 쳐야 나와요. 거기가 제일 여기서 나아요.'하며 길까지 알려주셨다. 나는 연신 감사하다- 외치며 초록스토어를 나섰다.
카페에서 생각들을 글로 조금씩 정리한 뒤에, 오후 4시가 되어 한 시간동안 기다렸다가 버스를 탔다. 이제 1시간 버스 기다리기 쯤이야, 버스 정류장 없어도 여긴가 보다- 굳건히 믿으며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즐거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구경하면 나도 그들을 구경하고 눈도 마주치다 보니 시간도 잘 가더라.
몽도에 돌아왔다. 사장님께서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지족마을은 어땠냐고 묻는다. 나는
'덕분에 좋은 곳을 찾았어요. 사장님 너무 감사해요!'
라며 화답했다. 그리고는
'얼른 이 이야기를 일기에 쓰고 싶어요.'라고 외치며 서재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장님께서는 만족한 듯이 나를 보며 조용히 지나갔다.
서재에서 글을 쓴 지 얼마나 지났을까, 지족마을에서 싸 온 김밥을 우적우적 먹고 책도 읽다보니 어느덧 밤 9시였다. 기지개를 펴고 내가 얼마나 글을 썼던 거지, 세 보았더니 만 자가 넘었다. 우와- 나 이렇게나 집중이 가능한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엄청나게 내면의 생각굴림을 잘 돌린 모양인지,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앗, 이 주변에는 먹을 것이 없는데 큰일이다.
그 때였다. 오늘 묵는 손님 두 명이 서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소리가 나 쳐다보았고, 둘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한 4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여성분이셨다. 두 분은 열심히 타이핑을 치고 있는 나를 보더니, 목소리를 아주 작게 줄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앗, 저 괜찮아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 그래요? 안 그래도 주인 부부께서 여기에 한 명이 더 묵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저희 노래도 방 안에서 신경쓰이실까봐 아주 작게 틀고 있었어요.
[어머, 저 진짜 괜찮았는데. 좀 더 크게 들으셔도 돼요. 저 그런 거 신경 잘 안써서요.]
-감사해요, 그래도 여기 규칙이 좀 세서. 뭔가 조용히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나저나 혼자 오셨어요? 대단하시다!
그렇게 여기에 오게 된 연유, 서로 여기를 찾게 된 경로를 공유했다. 또 오늘 어디 다녀왔는지에 대해서도 사진을 보여주며 내일 가보라며 추천했다. 그러다 그 분들이 내게 슥 내민 것은, 빵이 가득한 접시 하나였다.
[어, 아니 괜찮아요. 두 분 드세요. 저 괜찮아요-]
한 번 거절했더니 그 분들이 정말 손사래를 치며 말씀하시기를,
-아니요, 저희 이거 너무 많아서 사실 버려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어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거 진짜 드셔도 괜찮아요.
…그렇다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예쁘게 인사하고 냠냠 빵을 먹기 시작했다. 보자, 이 분들이 내게 맛있는 걸 주셨으니 나도 무언가 드려야 할텐데 싶어 다급히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는 오늘 산 엽서 몇 개를 내밀어보았다.
-제가 가진 게 이런 것 밖에 없는데, 오늘 공동작업장이라는 소품샵에서 산 것들이에요. 괜찮으시다면 혹시 이것들 가지시겠어요? 너무 감사해서요. 뭐라도 드리고 싶어요.
웃으며 말했더니, 그 분들이 다시 한 번 손사래를 치며 어차피 이런 것들 집에 가면 필요 없다며 따스하게 말씀하셨다. 사양하는 게 아니고 진심인 듯 하기에 그저 고마운 마음을 받기로 했다. 이 또한 옛날 같았으면 절대 못했을 일이다.
사람의 마음, 친절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고 늘 의심했기 때문에 '누군가 내게 무언가를 준다면, 그건 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게 필요한지 잘 보고 그것을 꼭 되돌려 주어야 한다.'라는 요상한 피해의식으로 가득했던 과거의 나를 청산하는 순간이다.
그저 고맙게 하루를 잘 즐기자는 공동작업장 사장님의 글귀가 내 마음에 햇살처럼 퍼져나간 탓인가,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을 즐기기로 했다. 다시 한 번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그러다가 퍼뜩,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쳤다.
-이 분들께 좀 더 나를 보여드리고 싶다. 나를 좀 더 시험하고 싶다.
스스로 완벽하지 못한 글이라 생각해 혼자 타이핑만 치던 집 안에서의 내 모습을, 이들에게 시험하고 싶었다. 제 못나고 괴상망측한 상상으로 써내려간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면 지금이 기회다. 내가 활짝 열린 마음으로 무언가를 대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 이 서재, 남해, 다시 한 번 사람에게 기대는 연습을 해 보자. 그들의 시간을 내가 마음껏 뺏고 미안해 해 보자.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 글을 좀 읽어주실 수 있을까요?
저 사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습작생인데, 제가 아주 짧은 단편을 쓴 게 있거든요. 아직 한 번도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 없고요.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 괜찮으시다면 감상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엇, 시간이 괜찮으시다면요!
번쩍 손을 내밀어 한 번 더 미안해한 결과는, 아주 행복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하며 내 글을 아주 집중해서 두 분이 읽어주시고는, 이렇게 대답해주신 것이다.
-와, 여기 싸인 먼저 받아놔야겠는데요?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시지? 이거 그대로 어디에 올려도 되겠어요! 원래 글 같은 걸 전공하셨어요?
-근데 이 주인공들, 다음에 어떻게 돼요?
하며 짝짝 박수를 쳐 주시는 것이 아닌가.
역시나 손을 내밀어야 해.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 손을 내미는 방법을 몰라서 아팠던 거야.
그리고 나는 이제 손을 내미는 방법을 정확히 알게 됐으니,
이제 괜찮아질 것 같다.
막연히 그런 확신이 들었다.
기대고 손 내밀고, 꼭 잡고, 내 마음을 와라락 터놓고, 그런 나를 나쁘지 않다며 스스로 토닥이고. 사람들과 얼만큼 가까워질지 정하는 건 나 자신이고 그런 나를 거절하는 것도 그들의 자유고. 하지만 이런 나를 거절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다는 걸 바라락 떨던 내 마음 속의 작은 아이가 깨달아가는 시간들. 내가 겪은 북스테이의 완성은 남해였구나, 하는 느낌표가 머릿속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몽도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다급히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금방 터미널에 도착해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1000원을 주고 구멍가게에서 휴지를 샀다. 주인 할머니가 내게 돈을 받으며 말씀하셨다.
너무 예뻐요. 혼자 여행 왔지요?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너무 예쁜 시절이에요. 그
시절을 마음껏 자유롭게 여행해요. 너무 부러워요.
그리고 행복한 하루가 되어요. 고마워요.
아, 마지막까지 남해는 내게 엄청난 빛을 주고 가는구나. 마음이 반짝 행복으로 물들어 가는 걸 느끼며 오히려 제가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시 만난 서울은 내게 여전히 큰 도시였고 조금 답답했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무거운 짐을 옮길 줄도 안다. 힘들면 힘들다고 찡찡거릴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드디어, 집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 북스테이는,
방향성이 바뀔 것만 같다.
우울한 마음을 달랠 세상에서의 도피처에서
사람들을 환대할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공간을 찾아나서는 여정으로.
완벽한 북스테이에는, 어마어마하게 부셔졌다가 더 반짝거리게 성장한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