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인생에 당당히 들어오지 못해, 그래서 늘 외로워 - (2) 목포
저녁 6시 20분 경 목포역에 도착했다. 기차에 내리자마자 주변에 바다가 있음을 직감했다. 강원도의 공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바다를 타고 온 공기의 무게가 내 팔을 톡톡 두들겼다.
야, 주변에 바다 있어. 심심하면 놀러 와.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화장실을 다녀와서 모든 게 상쾌하게 느껴질 지도 몰랐다. 팔짝팔짝 남몰래 두 발을 만화 주인공처럼 뛰고 싶었다.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으니까 꾹 참고 팔랑팔랑 가벼운 발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KTX 목포역 간판이 사라지는 햇빛을 머금어 반짝였다. 하늘이 화창하지 않아 더욱 좋았다. 내 마음만큼 딱 흐릿한 구름이다. 외국에 와서 교통규칙을 모르는 여행객마냥 역 주차장에서 차 사이로 인도를 찾느라 버둥거렸다. 허둥거리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일터에서 KTX 역까지 15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아 깜짝 놀랐다. 이 말을 왜 또 하냐면 멋모르고 예약한 구보 스테이도 같은 설명이라서다. 어딘지도 모르고 지도 어플을 켜 검색했더니, 도보로 3분이 떴다. 3분이라니, 라면이 다 익을 시간만큼만 가면 내가 그렇게 사진을 보고 좋아했던 그 곳이 나온다니. 목포의 매력은 뒷통수치기인가 보다. 혼자 쿡쿡거렸다.
빨간색인지 갈색인지 의견이 분분할 벽돌 건물. 나이를 알려주듯 우미장이라고 써 있는 진지한 글씨체가 몹시 반가웠다. 옛 여관 모습을 그대로 살려 내부만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독립서점 문을 열었다.
밝은 우드 인테리어에 알록달록한 작은 굿즈들이 작은 서랍장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스케이트 보드와 KBS 90년대 드라마에서 썼을 법한 고동색 소파도 눈에 띈다. 다양한 소설책이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 예쁘게 앉아 있다. 책장 한 켠에는 인문 서재가 소소하게 자리를 빛낸다. 책이 많지는 않아도, 읽고 싶은 책을 고르라면 고를 수 있는 작은 구멍가게같은 서점이었다. 거기서 얼굴이 말갛고 화장을 하지 않아 더욱 예쁜 사장님을 뵈었다.
-아, 저 여기 이틀 묵으러 왔는데요…
작은 소리로 내가 말을 걸었다.
[아, 네! 그 손님. 혹시 203호…?]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하고 대답하자 웃으며 위층을 구경시켜 주셨다. 내가 묵을 장소는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더 근사했다. 아주 어렸을 적에 살았던 옛날 빌라를 내가 다시 살게 되어 꾸민다면 이렇게 꾸미리라, 싶을 정도로 내 취향이었다. 하얀 침구로 가득찬 작은 방과, 그 방을 건너면 보이는 서재 공간. 필요한 것만으로 가득찬 삐걱거리는 옛 공간이다. 보자마자 여기에 진짜 왔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오길 잘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내려가자 사장님 부부가 모두 나를 보고 살풋 웃었다. 조용조용, 큰 소리 하나 낼 것 같지 않은 눈망울에 왠지 모르게 몽골 사람들이 생각났다. 자연을 사랑할 것만 같은 빨갛고 탐스러운 양 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나. 자꾸만 말을 걸고 싶었다.
-저, 여기 아무것도 모르고 이 서점이랑 북스테이만 보고 왔어요.
약간은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까나.
[엇, 정말요? 여보, 우리 어쩌지? 아이 어쩌면 좋아-]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에 별 게 없는데 더 차릴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분명히 나보다 나이가 많을 텐데도 착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꼭 껴안고 싶다. 좀 더 몸둘 바를 모르게 해줘야겠다.
-인스타였나, 블로그였나. 여기 봤더니 너무 가고 싶어서 한 달 전부터 예약하고 기다렸어요. 여기만 보고요. 그래서 저 목포 아무것도 몰라요. 어쩌죠?
[앗 정말요? 혹시 저녁 드셨어요?]
-아니요, 아직이요. 혹시 추천해주실 수 있는 곳 있을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비장하게 서로 먹었던 장소를 핸드폰 지도를 꺼내가며 추려낸다. 어머, 그렇게까지 열심히면 제가 오히려 죄송해지는데요- 진지하게 거긴 아니다, 여행객이 먹을 곳은 아니라며 머리를 맞대고 있는 두 분께 그만 제가 알아서 찾아보겠다는 말을 건네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생각을 달리해서 두 분이 추천해주신 곳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저 분들의 호의를 내가 뿌리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이 오롯이 닿지 못한 봉사는 슬픈 일임을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추천해준 술집으로 가는 길이 멋졌다. 저무는 해를 삼킨 돌산이 눈 앞에 가득 다가왔다. 건물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내일 내가 예약해서 가야 할 케이블카가 저기구나,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드문드문 이동하는 빨갛고 파란 작은 원통들이 참 귀여웠다.
이건 예정된 결말이다.
무척 취했다. 외로워서 누구에게 자꾸 말을 걸고 싶다.
입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고, 생각지 못한 귀여운 서점 사장님들께 맛집이라며 추천도 받았고, 또 혼자 술을 마시면서 손님이라고 서비스 정신에 말을 걸어주는 술집 사장님이 있었다. 나는 드디어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어 tv에 나오는 야구 투수를 주제로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다가, 퍼뜩 깨달았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화랑아, 잘 봐. 알코올과 즐거움은 한정된 시간만큼 즐거워야 하는거야.
한계를 넘어가면 서로 불편해지는거야.
네가 하고 있는 건, 주민센터에 주민등록초본을 하나 뽑으러 가 놓고선 내 아들이 사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느냐며 자랑하는 꼴이다.
헤롱헤롱 헷갈리는 정신에 나를 다시 부여잡고 나왔다. 멀리서 느껴지는 바다를 보고 싶다. 알코올에 적셔진 몸이 비척비척 바다를 향했다. 가는 길을 카메라에 담았다. 술에 취해 실수하는 것 만큼 쪽팔리고 지양해야 할 일이 없다. 그런 나를 감시할 것이다. 내가 찍는 사진은 나를 향한 CCTV다. 시선이 흐리다. 사진 속의 불빛들처럼 신호등이 세상을 흩뜨려놓는다. 지도도 보지 않고 감으로 바다를 찾았다. 그건, 오랫동안 바닷가 주변에서 산 사람만의 몸 속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면 되는 거니까. 다행히 그 네비게이션이 좀 취해도 멀쩡히 작동했다.
그렇게 본 바다는 참 고요했다.
멀찍이 운동하는 할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반대편 항구에 동동 떠 있는 배가 물었다.
-너, 지금 제정신 맞니? 술 취했으면 곱게 집이나 가.
나는 대답했다.
[아, 뛰어들고 싶을 만큼 완벽히 평화롭다.]
그리운 냄새였다. 축축한 바다냄새. 조용히 가라앉은 어두운 물기 냄새. 스며드는 비린내. 그걸 부모님 없이 오롯이 찾아내고 싶었다. 강원도가 그립지만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난 목포에서 고향을 느낀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그리고 바다를 보면 어릴 때부터 꼬르륵 가라앉아 보고 싶었다. 실제로는 수영도 못 하면서. 어푸어푸 살려달라고 빌 거면서. 허황된 꿈마냥 그런 것에 도취된 자신을 좋아하는 거지.
뒤에서 뱅뱅 돌며 나를 감시하는 젊은 자전거 청년, 저 이제 멀쩡히 집에 가요. 걱정 말아요.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그 사람은 받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말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상한 생각들이 한데 뒤엉킨 채로, 비척이는 발걸음을 옮겨 목포의 하룻밤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