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건오와 기재, 거울에 비친 겨울의 속마음
-겨울아, 넌 어때. 넌 뭘 하고 싶니.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간 겨울의 연애 전적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만, 겨울 주변의 세상은 겨울을 쉽사리 사랑에 빠지게 놔두질 않았다. 여중, 여고, 여초과에 진학하여 여자가 득실거리는 학교에 발령이 났으니. 좋은 사람이라며 간간이 들어온 소개팅도 겨울에겐 맞질 않았다. 그런 겨울에게 갑자기 자신이 좋다며 들이닥친,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두 남자는 풀 수 없는 영원한 문제를 가지고 찾아온 악마들이었다.
-도대체, 뭔데. 사랑하는 게! 사귄다는 게 대체 뭐길래, 저러냔 말야.
-건오, 건오, 건오. …알 수 없단 말야. 지가 뭘 알고 내가 취향이래. 날 뭘 알아?
평생 느껴본 적 없는 뜨거움과 욕망, 그건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의 결정체같은 것이었다.
-웃기시네! 아니거든요! 밤 새도 수업은 따로 할 수 있거든요! 아 또 열받게 하네?
건오는 겨울에게 감정이다. 완벽히 현재의 감성.
그렇기에 당장 내일 건오가 겨울을 자신의 취향이 아니게 되었다며 버릴지도 모르겠고, 자신 또한 내일부터 건오에게 온갖 새로운 경험도 정도껏이라며 권태를 느낄 지 알 수가 없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기에 오는 불안과 가질 수 없는 확신.
그리고 그런 달라진 기재에게 가끔 바르르 떨릴 때가 있다. 카페 음료 주문벨처럼, 잔잔하되 자글자글하게. 엇, 좀 떨리는데 하며 반짝거리던 심장은 이내 기재와 편히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평온해진다.
-그건, 연인이나 사랑이 아니고 그저 우정 아닌가. 흠. 그래도, 떨리긴 했으니- 가능성인가.
[내 꿈도 검열해주시는 검열사님- 따라야죠, 예예. 허황되고 큰 꿈이라- 어, 나 그럼 이거 할래. 네가 인위사를 절대 못 하게 내가 옆에 24시간 딱 붙어 있는 거야. 그래서 세상에 이런일이에 24시간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랑꾼 할아버지의 비밀 같은 걸로 tv에 나오는 거지. 이유를 물으면 이 할망구가 어디서 확 나몰래 죽어버릴까봐, 라고 대답해. 그러려면 우리 결혼해야겠다. 그래서 그런데, 겨울아. 나랑 언제 사귀어줄거야?]
또한 겨울은 지금까지 잘 쌓아온 우정이 자신의 헷갈림으로 다른 길로 샜다가 깡그리 사라져버리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겨울의 모든 말과 생각을 지루하지 않게 맞받아치며 끊임 없이 깔깔거릴 수 있는 사람을 쉽게 잃고 싶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건오를 선택한다면, 그래도 기재가 자신의 곁에 여전히 똑같은 모양새로 남아 줄까. 그것 또한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