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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Sep 16. 2021

아픔의 통로를 거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그 기억은 독수리처럼 심장을 쪼아 온몸에 고통을 준다. 떠올리지 않기 위해 반항할수록 강렬하게 떠오른다. 그 기억으로 인해 찾아온 독수리가 이제는 계속 그 상황을 생각하게끔 쪼아댄다.


누구나 마음 한 켠에 품고 살아가는 아픈 기억들.

그 기억이 삶에 대해 철학적인 시선을 던져주지만, 때로는 그 기억이 숨통을 조인다.


제 안에 깊이 존재하나 범접할 수 없는 상처를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는 길 속에서 시간이 흘러 낡은 건물에 상처 난 흔적 대하듯 바라본다. 건물이야 허물고 다시 지으면 그만인 존재지만, 인간은 그리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강해 보이지만 약하고, 약해 보이지만 강한 그런 복잡한 존재다. 응원을 응원으로 보는 순간도 있고, 사랑으로 보는 순간도 있고, 열등감으로 보는 순간도 있다. 비판을 비판으로 보는 순간도 있고, 성장으로 보는 순간도 있고,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수단으로 보는 순간도 있다. 그렇게 매 순간 다른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그런 인간의 내면 속에는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고, 같은 상처를 경험하였어도 다른 상처다. 그렇기에 본인이 같은 아픔을 겪고 일어났다 하여 타인에게도 일어나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에 무어라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 해주고 싶은 말은 목까지 차오르지만, 차마 꺼내지 못한다. 입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내 인생 답도 겨우 찾아나가고 있는 판에 무슨 다른 사람 인생에 답을 내밀어. 네가 말하는 답이 그 사람 인생에 답일 거라는 보장이 어딨어'라는 목소리를 들으며 침묵을 진행한다. 그러다 큰 용기 내어 조심스레 던진 권유 한마디.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에 피해만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심리학을 나온 이유 중 하나다. 나에게 둘러싼 환경, 나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내가 심리학자라는 무게를 안고 심리학자로서의 역할에 책임을 다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무게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아픔을 지닌 자들의 삶의 무게를 함께 지니고 사부작사부작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쏟고 맡은 일에 온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나에게는 너무 버겁게 느껴졌고 가혹행위 같았다. 난 그만큼 강하지도 유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아픈 심장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을 완전히 외면할 자신도 없다. 그래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자들이나 주변에 지지체계가 있는 자들, 스스로 떠난 자들은 삶에서 내보낸다. 그리고 주변에서 내가 신경을 써야만 하는 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만 한다. 그들이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해버리면 그것은 도와주지 않은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힘으로 세상을 위해 힘쓴다. 


세상에는 안타깝게 사라져 가는 존재들도 많고, 하루하루 겨우 살아내는 자들도 많고, 눈에 띄지 않지만 도움이 필요한 자들도 많다. 한 명의 인간이 그들을 구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다수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나의 심장을 쪼아대듯, 다른 이들의 심장을 쪼아대는 독수리라는 존재. 그의 입에는 도대체 몇 개의 심장의 피가 묻어있을까. 타인의 상처를 알아보게 되는 이유가 어쩌면 끊임없이 쪼아대는 독수리 덕에 구멍 난 가슴에 통로가 생겨서 그럴지도 모른다. 부디 모든 인간이 그 구멍에 휘말리는 게 아닌 통과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통과를 거쳐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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