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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Apr 06. 2021

삶에 질문을 던진다는 것

인생을 철학하라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얼마나 가질까. 호기심 투성이었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정신 차려보니 주어진 삶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질문 던질 시간 따위 없다고 말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 하지만 질문 없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한 일 일까





질문을 던지다.

어학사전에 의한 "질문"의 정의는 "알고자 하는 바를 얻기 위해 묻는 것"이다. 묻기 위해서는 궁금해야 한다. 궁금증을 던지는 것이다. 왜 던진다는 표현을 했을까? "던지다"라는 의미를 찾아보면 "어떤 행동을 상대편에게 한다"라고 제시되어있다. 상대방에게 궁금증을 던짐으로써, 상대방에게 답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적용해보자면, 나에게 궁금증을 던지고, 내가 답을 하는 것이다.




궁금하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호기심은 관심을 가져야 생긴다.

"나는 무엇을 먹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현재 나의 삶은 어떠한가, 주변 환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는가"

이 모든 것이 자신에 대한 관심이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중에 이 말이 있지 않는가


너 자신을 알라




그렇다면 어쩌다가 호기심 많던 우리들이 주어진 환경에만 적응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속해있는 세상은 욕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해야 하는 의무를 강조한다.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 학교라는 시스템 내에서는 아이들이 지닌 욕구는 억누르고, 해야 하는 것들만 가르친다. 물론 교육은 중요하나, 교육보다 더 중요한 사람에 대한 존중이 배제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편한 교육을 위해 질문하는 자에게는 찌푸린 인상을, 호기심이 많아 집중을 못하는 자에게는 처벌을, 상상의 나라에 빠져있는 자에게는 압수를, 도와주려는 스승에게는 눈치를 선물한다. 그렇게 그들의 잠재력을 앗아가고 한참 뒤에 그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잠재력을 펼치라고 요구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어쩌면 청년들의 방황은 잠재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그들은 다시 삶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어딘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즐겁게 일하는 방법이 없는가, 서로 win-win 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밀레니얼 세대에 주를 이루게 되면서 "젊어서 은퇴하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이나 사업하려는 자들이 늘어나거나, 자신을 브랜딩 하기 위한 노력들이 점점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청년들이 의미를 추구하는 수는 증가하는데, 부모님 세대는 주어진 환경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는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따라 생존이 먼저였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질문을 가지기 어려웠다. 당장 현재를 살아내야 하므로 질문 대신 노동을 해야만 했다. 여러 어르신들의 노력 끝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자아실현의 꿈을 꾼다. 삶의 의미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들께 감사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발걸음 한 곳은 철학이 되었다. 현대에 철학자라고 하면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석&박사과정까지 거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소크라테스, 아르키메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수많은 철학자들은 정치가, 교육자, 물리학자 등 다양한 직업군을 지니고 있었다. 다양한 직업 중 하나였을 뿐이다. 철학자는 철학을 전공한 자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추구하는 자라는 설명이 더 걸맞는다. 



철학 박사 최진석 교수는 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철학이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삶의 격을 철학적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합니다.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철학이지, 철학적으로 해결된 문제의 결과들을 답습하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철학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물이 필요하다. 바로 질문이다.

자신의 삶에, 

세상에, 

타인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함으로써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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