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즈음이었다. 당시 친구와 운동을 좀 해보자며 (남자가 많다는) 등산동호회에 가입했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또래 남자는 거의 없었고 40대 언저리 아재들만 가득해 실망했던 터였다. 하산한 후, 뒤풀이로 주꾸미 볶음집을 갔다. 우리 테이블 앞에 앉아있던 아재는 젊은 처자 둘의 방문이 무척 반가웠는지 자꾸만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글밥 씨는 순수한 백장미 같은 이미지라면, 친구분은 화려한 붉은 장미 같네요."
우리는 어색한 미소로 화답한 후 없어진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쳐가며 주꾸미 볶음을 겨우 집어 들었다. 대화는 음악 쪽으로 흘렀다. 당시 우리는 인디밴드 10cm에 빠져 홍대 클럽을 전전했었다. 아직 무한도전에 소개되기 전이라 팬이 많이 없었고, 대중은 잘 모르는 뮤지션을 우리는 안다는 사실에 음악적 자부심이 하늘을 치솟을 때였다. 나는 싱글벙글한 아재와 어떤 공통점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물었다.
"어떤 가수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가수 정말 많죠! R.ef랑 신승훈도 좋아하고요. 요즘도 매일 들어요."
"네? R.ef요?!"
나와 친구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보컬 이성욱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찬란한 사랑에에~~ 눈이 멀어야 하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당시, "눈이 멀어야 하지"를 "누님만 알아야 하지"로 잘 못 들어 테이프를 여러 번 돌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나도 R.ef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2010년에 R.ef라는 가수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와 친구는 아재들과 더 이상 공통점 찾기를 멈추고 주꾸미 볶음을 후다닥 해치운 후 집으로 향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R.ef는 너무 하지 않냐 요즘 시대에"
"얼마나 시야가 좁으면 아직도 90년대 노래만 듣고 있냐 어휴"
20대 오만방자한 우리는 죄 없는 아재를 욕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추운 날씨에 '쿨'의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10cm의 애상 대신, 원조 쿨의 애상을, '슬퍼지려 하기 전에'를, 아로하를, 송인을, 올포유를 들으면서 추억에 젖은 나머지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다음 플레이 리스트는 '룰라'. 당시 룰라 전 앨범을 '짬뽕'이 아닌 '진탱'테이프로 소지할 정도로 나는 룰라의 광팬이었다. 지금의 찌질한 궁상민은 스웩 넘치는 오빠였고, 그보다 조금 더 잘생겼던 '그 녀석'은 만인의 러버였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무대에서 채리나처럼 헤어밴드를 하고 엉덩이를 두드리며 '날개 잃은 천사'를 추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재가 된 줌마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지만, 그 노래들이 진심으로 좋았다. 신나는 멜로디와 반대되는 슬픈 가사가 마음을 울렸고,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스토리가 노래에 녹아있었다. 흥에 넘친 줌마는 참지 못하고 부랄 친구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 공감을 기대하며 톡을 보냈다.
"너희들은 내 마음 알거 같아서. 쿨 노래 너무 좋지 않냐? 눈물 날고 같아ㅜㅜ"
"니 가을 타냐"
"쿨이고 나발이고 나는 잠이나 좀 잤으면 좋겠다.(애 낳은 지 50일 된 친구)"
"'겉과 속의 이름 틀렸었나 봐~' 래. 진짜 가사 예술 아니냐?"
아재가 된 줌마 때문에 단톡 방은 침묵에 휩싸였다. 공감 얻기에 실패한 나는 다시 쿨과 룰라를 반복 청취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를 '백장미'라 불러줬던 고마운 아재는 지금 쯤 결혼은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