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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ul 16. 2020

대신 걱정해주실 분?

걱정 부자의 머릿속 해부


평화로움이 불안할 때가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 일 없을 리가 없잖아!' 하는 근본 없는 걱정이다. 나는 벌어지지 않은, 그리고 벌어지기 희박한 일들을 애써 떠올리며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만약 우리 엄마나 아빠가, 아님 시부모님이 갑자기 어디가 편찮으시면 어쩌지? 가령 암이라든가 치매 같은 병에 걸리면 어쩌지?

- 양가 어른들이 모두 건강하신 편이다. 그런데도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혹시나, 행여나 하는 마음에 자꾸만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진다. 어떨 땐 너무 심취해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만약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 어쩌지?

- 결혼한 지 3년이 돼가는 우리 부부는 여전히 알콩달콩하다. 싸우는 일도 없고, 아직도 매일 밤 뽀뽀를 하며 잠을 청한다. 그런데도 가끔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다. 사람의 감정은 상황에 따라 식을 수도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나에게만 예외가 적용되란 법이 없다는 것도 안다. 아무 탈 없는 관계를 근거 없이 미리 걱정한다. 남편이 나에게 너무 소중하고 큰 존재라서 잃을까 봐 겁이 난다.


내가 이민을 가서 우울증에 걸리면 어쩌지?

- 언젠가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우리 부부는 이민도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인 날짜가 잡힌 것도 아닌데,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게다가 지금은 코로나로 온 세계가 한바탕 난리 아닌가!) 그 상황에 이민 여부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이민을 가서 내가 우울증에 걸릴까 봐 걱정을 하다니 나가도 한 참 나갔다.

남편은 영어를 잘 하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혼자 먹통 같은 생활을 한다고 상상하면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이민생활을 하다가 총에 맞으면 어쩌지?

- 가끔은 좀 더 멀리멀리 아주 멀리 나간다. 미국은 총기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던데... 그게 나라고 피해 갈 리 없잖아? 나는 괴한이 나타나 나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을 상상한다. 마구 달려야 할지, 두 손을 번쩍 들고 달라는 거 다 내주어야 할지 고민된다.


내 책이 욕을 먹으면 어쩌지?

- 책을 쓰고 있다. 첫 번째 책의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일부에게 비판을 들었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조금 더 쉬울 줄 알았는데 책 쓰는 일은 여전히 두렵고 어렵다. 내 글이 모두를 만족시키기 힘들다는 것을 아는데, 내 머릿속을 세상 밖에 꺼내놓는 일은 해도 해도 익숙하지가 않다. 다만 용기를 쥐어짤 뿐이다.


애가 생기면 어쩌지? or 안 생기면 어쩌지?

- 우리 부부는 아이를 계획 중이다. 그런데 막상 낳는다고 생각하니 온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할 텐데 무섭다.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은 커녕, 편하게 똥도 못눈다던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그런 와중에 애가 안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동시에 다. 노력한 지 1년이 다 돼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로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거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있다. 나도 내 마음을 도통 모르겠다.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느냐. 나의 24시간은 스스로 짜 놓은 계획에 따라가기도 벅찰 만큼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길을 걷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자꾸만 이런 불안과 걱정이 불쑥 튀어 오른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어릴 적에도 사서 걱정을 하곤 했다. 아빠가 오토바이를 타고 금방 수박을 사 오겠다며 헬맷을 쓰는데 갑자기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는 내레이션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아빠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10분 뒤 아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박을 들고 나타나셨다.


나는 나의 책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에서 '불안해할지언정 괴로워는 하지 말자'라고 독자에게 말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독임이었다. 그 다독임은 여전히 유효하다. 느긋하고 편안하게, 여유로운 마음을 품는 게 나에겐 왜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이 불안의 근원이 무엇일지 알고 싶다. 불안과 걱정을 외주 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어쩌면 지독한 생존 본능으로도 느껴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끝내 살아남겠다는 강력한 의지. 위험에 대비해 머릿속으로 미리 갖가지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처럼. 그러고 나면 무슨 일이 닥쳐도 내가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지 않을까 하는. 지독한 자기애가 낳은 업보일까.



걱정 대장은 이 글을 아침에 썼다가 비공개로 돌렸다. 혹시나  나의 상상을 실제로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글에 상처받지 않을까, 문득 걱정이 된 거다.

이 정도면 걱정의 신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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