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후면 나의 네 번째 책이 나온다. 첫 번째 책을 낸 것이 2020년 5월이었으니 2년 반 만에 4권의 책을 출산, 아니 출간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다둥이맘)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인데 첫 책을 내고 참 굴욕적인 순간이 많았다. 그것을 한 번 풀어보려고 한다. 언제나 남의 흑역사는 재미있고, 읽는 사람에게는 반면교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까. (라기보다는 지금 써야 하는 글이 있는데 너무 쓰기 싫어서 딴짓을 하는 게 팩트임)
나의 첫 책은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으로 태어났다. 브런치에 연재한 내 글을 발견한 편집자님의 제안으로 낸 책이었다. 제목의 탄생 비화(?)는 이렇다.
내가 썼던 글 한 꼭지 제목이 '나는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였다. 아이템을 찾지 못한 방송작가, 스물여섯의 내가 여의도로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느꼈던 절망감이다. 편집자님은 그 제목과 서사에 공감했고, 그것을 줄여서 책 제목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면서 출판사 내부에서 찬반 논쟁이 있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제목이 너무 세다는 것. 나는 그때 방송물이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방송은 그야말로 자극적일수록 좋기 때문에 제목을 세게 짓는다. 왜냐고 묻거든 시청률 때문이지요. 방송쟁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그 제목이 전혀 세다고 느끼지 않았고, 비인간적인 방송계를 상징하는 '서강대교'(당시는 여의도가 방송의 메카였으니)의 상징도 마음에 들었다. 난 그 제목을 찬성했고 결국 그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 제목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성수대교 참사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출간의 감격을 누리기도 전에 '무슨 정신으로 저딴 제목을 지었냐'는 욕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종종 발견했고 나는 깊이 속상했다. 책 내용을 읽어보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여보쇼, 책은 읽어봤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금방 휘발되고 마는 방송과 기록으로 두고두고 남는 책은 매체 성격이 달랐던 것이다. (책은 보수적이다. 유행어도 웬만하면 넣지 않는 게 좋다.)
주변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라며 위로했고,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의 상처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의 10여 년을 몽땅 갈아 넣은 소중한 첫 책이 (첫 책은 정말 정말 애틋하다) 제목 때문에 외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다시 찍을 수도 없는 노릇!
이불 킥 사건도 있다. 지금 생각해도 두 귀가 빨개진다.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줄 알았다. 왜냐면 그 책이 내 책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재밌다. 책을 낸 기성 작가님들이 "출판사에 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죠", "부족한 제 글을 책으로 내주셔서 감사하죠"하는 말이 겸손을 떠는 말이라 생각했다. '뭐가 감사해? 자기들이 내 콘텐츠를 책으로 낸 게 영광이지'라고 생각했다. (으악! 과거의 나 제발 정신 차려!)
그래서 책이 나온 후 적극적으로 광고 마케팅을 해주지 않는 출판사를 속으로 원망했다. '다른 출판사들 보면 북토크니 뭐니 빵빵하게 밀어주던데 왜 나는 안 해주지? 출판사 미웡!' 했다. 그러면서 한 두 달쯤 지난 후에 내가 편집자에게 뭐라고 했냐면 '편집자님, 좋은 소식 없나요? 예를 들어 2쇄라던가' 이런 내용의 카톡을 보냈다. (김형욱 팀장님 죄송합니다.) 편집자님은 '작가님 좋은 소식을 들려주지 못해 안타깝네요'하며 답장을 했는데 얼마나 내가 싫었을까. 왜냐하면 그 후 1쇄 판매 내역을 받았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안 팔렸기 때문이다. 정말 나의 지인들만 산건가, 싶을 정도였다. 정말 충격받았고 그날 밤 이불 킥을 수백 번 했다.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질문을 했을까 (하.. 이 글 나 왜 쓰고 있지? 그래도 썼으니 계속 가보자)
게다가 나의 인생을 담은 첫 책을 사지 않은 친구들에게 굉장히 서운해했고, 심지어 일부 관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이 세상에는 내 책을 읽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만큼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다. 마치 내 책을 보지 않으면 나라는 사람이 부정 당하는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첫 책을 내고서 한동안은 기쁨보다 괴로움이 컸다.
약간 정신을 차리고 두 번째 책을 냈을 때도 나의 머저리 같은 행동은 계속된다. 두 번째 책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는 글쓰기 훈련법을 담은 실용서인데 초반부터 반응이 괜찮았다. 편집자님과 나는 흥겨운 카톡을 자주 나눴는데, 어느 날 서로 나눈 대화를 훑어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 편집자님, 제 책을 아는 대표님이 100권이나 사주 신대요!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 우아 작가님! 너무 잘됐네요. 우리 책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고 예감이 너무 좋아요.
- 편집자님! 제 책에서 오타를 발견했어요, 다음 쇄 찍을 때 수정해야겠어요!
- 작가님! 기쁜 소식이 있어요! 우리 책이 3쇄를 찍게 됐어요.
발견했는가. 나는 시종일관 '내 책'이라고 이야기하고 편집자님은 '우리 책'이라고 칭했다. 나는 책을 너무나 지나치게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고, 내가 썼고, 내가 퇴고했고, 내 인생이고 내 노하우고... 완전 내 거, 이 책 내 거!!!
그런데 출판사가 없었으면 이 책이 나왔겠느냐고. PT콘셉트는 출판사 아이디어였고, 예쁜 디자인과 만듦새, 교정교열, 마케팅 이것들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인데 나는 너무 내 안에 매몰돼 있던 것이다. 다행히 나는 중간에 이것을 깨닫고 '우리 책'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나의 오만함에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세 번째 책 <어른의 문해력>을 낼 때부터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예전처럼 그렇게 들뜨거나 집착하지 않게 됐다. 책이 잘 되고 안 되고는 내 영역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고 제발 겸손해져야 한다고 되뇌었다. 책은 책이고 나는 나고, 책 좋아하는 사람이 책 읽는 거고, 아무리 친해도 책 안 읽는 친구는 줘도 안 읽고, '출간 축하해요! 꼭 읽어볼게요'라고 말하고 나서 진짜 사서 읽는 사람은 몇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그래서 나의 책을 기꺼이 사주고 읽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밑줄 그어가며 지저분하게 읽고 서평까지 써주는 이들이 눈물 나게 고맙다.
어쩌다 보니 계속 책을 이어서 쓰고 있다. 첫 책은 나에게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면 네 번째 책은 일이 되었다. 네 번째 책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다섯 번째 책의 압박을 느끼고 있다. 마치 매주 방송을 뽑아내듯 업무적으로 하는 집필, 나는 그 루틴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첫 책처럼 들뜨지 않아도 지금이 좋다.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이 쌓일수록 나란 인간도 조금씩 성장하니까. 만약 열 번째 책을 낸다면 네 번째 책을 냈던 모자란 나를 괴롭힐지 모르겠다만.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나의 부끄러운 흑역사를 깔깔거리며 관람한 값으로 네 번째 책을 읽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