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알 것 같다
"가서 보니까 어때?"
"착잡하지, 뭐"
엄마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엄마는 참. 개업식 다녀온 사람이 할 소리야.”
남동생이 오늘 독서실을 오픈했다. 대기업에서 퇴사하고 5개월 동안 동분서주하더니 마침내 사장님이 된 것이다. 동생은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아이가 셋인 학부모였다. 취업도 하기 전에 사고를 쳐서 일찍 결혼을 했다. 허겁지겁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회사에서 다행히 인정을 받아 2년 후엔 정규직 전환을 받았다. 그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사는가 했더니, 돌연 사표를 던지고 갑자기 사업을 하겠다는 동생. 우리 가족은 모두 놀랐고 우려했다.
사업은 잘되면 대박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건 지나가는 댕댕이도 잘 아는 사실 아닌가. 게다가 큰 평수의 인테리어 비용 때문에 대출까지 꽤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사업이 뭔지는 알고 하겠다는 건가.’ 나는 동생의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불안했다. 가여운 올케와 조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내가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쉴 때마다 엄마는, “젊었을 때 도전해 보는 거지, 더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못해. 지금은 망해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가 있잖아.” 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엄마는 자신의 노후 연금을 담보로 동생에게 대출을 해줬다.
그렇게 의기양양하던 엄마가 동생의 개업식을 다녀온 후 한숨이 늘었다. 나는 도대체 왜 저러나 싶어 주말에 서울에 있는 동생 독서실을 찾아갔다. 독서실은 생각보다 멋졌다. 내가 알던 어두침침한 이미지의 독서실이 아니었다. ‘프리미엄 독서실’이라 불리는 최신시설이었는데 카페를 연상시켰다. 깔끔한 화이트 톤에 그린 포인트 인테리어, 곳곳에 놓인 싱그러운 공기정화 식물. 좌석도 오픈 형부터 칸막이형, 좌식까지 취향대로 골라 앉을 수 있었다. 자유롭게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휴게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오픈한 지 며칠 됐다고 빈 좌석이 거의 없었다. 학부모 상담을 마친 동생이 날 보고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누나! 어후,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 동생은 희망에 잔뜩 부푼 표정이었다. 그런 동생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조금 울컥했다.
“너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5일 동안 3시간도 못 잤어. 잠이 안 오더라고.”
한 달 전 봤을 때 보다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져있었다.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동생은 군대 시절 빼고는 축 쳐진 뱃살과 이중턱을 20대 때부터 유지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턱선이 날카롭게 드러나고 뱃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전혀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푹 꺼져서 쌍커풀이 깊어진 동생의 눈가를 보니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아오 또 저러네! 잠깐만.”
유리문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서있는 학생을 발견하고 동생이 황급히 뛰어나갔다. 동생은 고장 난 키오스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24시간 운영이라 키오스크가 불안정하면 손님에게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본인도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 자꾸만 오류가 나서 신경이 곤두선 동생은 뒷목을 붙잡은 채 키오스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혈압이 있는 동생이 금방이라도 쓰러질까 봐 내 마음이 졸아들었다. 나는 옆에서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한 마디 건넸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차근차근히 해. 정 안되면 일주일 간은 24시간 운영하지 말고 12시 마감을 하지 그래?”
“이미 월 회원권 끊은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그래. 아 진짜 전화는 왜 안 받는 거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동생의 모습을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상사태를 해결하느라 바쁜 동생과 몇 마디 나누지 못한 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손님이 많은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오픈 빨도 있을 것이다. ‘저렇게 일희일비를 하면 안 되는데.’ 동생의 체력은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 건강이 계속 염려됐다.
“착잡하지 뭐.”
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돌았다. 엄마는 볼살이 쪽 빠진 아들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오늘은 도시락이라도 싸서 가볼까 한다는 엄마를 겨우 말렸다. 안 그래도 예민한데 우선 그냥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서른 넘은 자식 걱정에 환갑이 지난 엄마는 요즘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왜 저렇게 걱정을 많이 하는 걸까'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도 오늘만큼은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