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글을 쓰면서 얻은 능력이 하나 있다. ‘분량’ 줄이기다.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한 시간짜리 방송을 만들려면 최소 다섯 배에서 열 배 가까운 촬영을 한다. 상황을 리얼하게 담아야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방송 분량의 몇십 배 이상 많은 촬영을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촬영한 원본 영상을, 피디와 작가가 상의해서 정해진 방송 분량에 맞게 편집한다. 어떻게 보면 방송을 만드는 일은 ‘잘 덜어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생해서 촬영한 내용을 빼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섭외하고 취재하느라 진을 뺐고, 피디는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시간을 썼다. 내 뼈와 살 같은 영상을 빼버리는 게 두 사람 모두 마음 아프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면 끝이 없다. 방송 분량이 45분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맞춰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뺄 것인가
방송은 보통 재미 요소가 우선이다. 시청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재미만 남길 수는 없다. 재미도 맥락이 있어야 산다. 핵심을 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이런 선택을 하겠다.
재미 + 핵심 + 여운
그런데 분량이 넘쳐서 줄여야 한다. 1순위로 빼야 할 놈은?
재미 + 핵심
그래도 분량이 넘쳐서 더 줄여야 한다면? 당연히 핵심을 남겨야 한다.
핵심
다른 글도 마찬가지다. 글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구성이 있겠지만 나는 주로 저런 틀로 구성한다. 앞은 우선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 마지막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야 왠지 뿌듯하다. 물론 그 질문에 정답은 없다.
재미있는 점은, 분량이라는 ‘제한’이 우리의 창의력을 발동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B+C+D 단락으로 연결된 1페이지 분량의 글이 있다. 이 글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면? 처음에는 A, B, C, D에서 25% 씩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자료 조사하고 쓴 게 아까워서. 하지만 AI가 아닌 이상 한계에 부딪친다. 아무리 덜어내려고 해도 더 이상 뺄 게 없다. 나는 그럴 때 B와 D를 통째로 날려버린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흑흑). 그러면 A와 C를 연결할 접착제가 필요하다. 여기서 창의력이 출동한다. 인용을, 의미부여를, 예시를 활용한다. 처음보다 더 간결하고 멋진 글로 다시 태어난다.
정해진 분량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적이 아니다. 오히려 창의력을 발동시키는 원동력이다. 분량에 맞춰 쓰는 연습을 해보자.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을지도!
[연습문제]
위에 제가 쓴 글을 반으로 줄여보실래요? ㅎㅎㅎ
다음 매거진 글은 'dahl' 작가님의 <글쓰기가 연애에 도움이 되는 이유>입니다. 사랑꾼 달 작가님의 연애비법이 글쓰기였다니! 자세한 사연을 내일 오전 10시에 만나보세요~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하지만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할지 막막하시다고요? <<매일 쓰다 보니 작가>> 매거진을 구독하세요. 꾸준하게 글을 쓰며 자신만의 무기를 다진 6명의 작가가 동기부여를 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