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선명한 불쾌한 기억이 있다. 보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 막말, 실망, 그로 인해 무너진 자존감 등(다들 떠올리고 있죠? 네 그거 흑역사 맞습니다!). 더욱 억울한 점은 보통 상처 준 놈은 모른다. 나 혼자 아프고, 부끄럽고, 상처를 입 밖에 꺼내기도 끔찍해 가슴속 밑바닥에 꾹꾹 눌러둔다. 누가 혹시라도 알까 뚜껑까지 꼭 닫아 밀봉해버린다. 하지만 부패한 기억은 보글보글 거품을 일며 불쑥 올라온다. 비슷한 상황에 처하거나 목격할 때 그렇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너 또 한방 맞고 싶어?
우릴 옭아매고 더 이상 그 어떤 시도도 하지 못하게 가둬버린다. 한마디로 인생에 장애물이다. 나도 이런 흑역사라 불리는 기억이 몇 있다. 누가 볼까 진공포장까지 해뒀던 그 끔찍한 기억을, 나는 굳이 되새김질하면서 노트북 모니터에 퍼부었다. 글로 쓴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공개적인 장소(브런치)에 올렸다. 분명 미친 짓이다!
미친 짓에는 놀라운 효능이 있다. 그렇게 심각하고 무거웠던 사건이 한층 가벼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니 위로는 덤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안심한다. 공감해주지 않아도 좋다.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며 낱말을 조합할 때 이미 꽤 괜찮아진다. 글쓰기는 쓰라린 상처에 후시딘을 발라준다. 이런 자상한 녀석!
"억누르려고 해도 두더지처럼 튀어 오르거나 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해지는 고통도 많다. 그런 경우는 상처를 꺼내고 해결해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치유란 속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농이 가득 찬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가 ‘스스로가 벗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해서’라고 했다. 선안에서만 살면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을 거 같고 안전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을 추구하는 존재다. 하지만 동시에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길 좋아한다. 이런 양면성은 인간의 본능이자 특징이며 선택은 우리 몫이다. 나라면 후자를 택한다.
마! 한 번뿐인 인생, '여자답게' 이것저것 도전해보는 거다!
글쓰기로 치유가 되어 상처가 아물면 우리는 다시 유영할 수 있다. 좁은 수영장에서 벗어나 드넓은 바다까지 나가볼 용기와 지구력이 생긴다. 글을 쓰고 싶은데 쓸 말이 없다면 흑역사부터 털어놓는 건 어떨까? 그것도 아주 재미있고 신나게! 내 흑역사를 읽고 누군가는 용기를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얼마나 홍익인간 이념을 실천하는 일인가. 글쓰기로 어설펐던 나를 조롱해도 좋고, 상처 준 그놈에게 빅엿을 날려도 좋다. 당신은 수영 고수가 될 자격이 있다.
<연습문제>
자신의 흑역사를 글로 써보세요. 생각보다 괜찮을 걸요?
다음 매거진 글은 'dahl' 작가님의 <지극히 개인적인 글맥 참고서: 실전편>입니다. 치맥보다 더 달콤한 글맥도 주의사항이 있다는데?! 내일 오전 10시에 만나보세요~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하지만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할지 막막하시다고요? <<매일 쓰다 보니 작가>> 매거진을 구독하세요. 꾸준하게 글을 쓰며 자신만의 무기를 다진 6명의 작가가 동기부여를 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