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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06. 2019

'82년생 김지영'이 판타지라고?

애 좀 키워본 엄마의 시선

<스포 포함>


화제의 '82년생 김지영'을 보러 갔다. 지영언니는 나보다 두 살 많고 이름도 비슷하다. 당시 선영이만큼 많았던 이름 지영이. 내가 아는 지영이만 해도 족히 다섯 명은 될까. 원작인 책도 재미있게 읽었고 무엇보다 공유가 나오는데 보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페미니즘 논란은 차치하고(사실 왜 논란이 되는지 이해 불가다) 같은 세대로서 공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영화관을 찾았다.


유명한 울보인 나는 예상했던 대로 몇몇 장면에서 눈물을 참느라 꺽꺽댔고, 결국엔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엄청나게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또래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하다고 느꼈다.


나는 문득 초등학생 시절 성 차별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시골에 가면 항상 친척 어른들은 남자 사촌들에게 세뱃돈을 10배 이상 주셨다. 나는 천 원, 나보다 세 살 어린 남자 동생은 만원이었다. 큰언니는 크다고 조금 더 주었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사촌들과 모여 세뱃돈 정산(?)을 해보면 가장 적은 액수였고 그게 무척 억울하고 속상했다. 고추 달린 게 자랑인양 의기양양해하는 남동생들을 보면 콱 쥐어박고 싶었다.


사춘기 시절도 떠올랐다. 맞벌이하는 엄마가 설거지를 나한테만 시키는 게 무척 화가 났었다. 남동생과 나는 불과 한 살 차이인데 여자라는 이유로 나에게만 집안일을 시켰다. '여자가 아니라 누나니까' 그런 거라고 말했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철이 들면서는 그저 엄마를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했지만.


경상도 출신 아빠가 계신 우리 집은 지금도 차례를 지내면 여자들은 죽어라 상 차리고 남자들은 앉아서 주문만 한다. 밥 먹으면 과일 내온나, 과일 다 먹으면 커피 내온나, 커피 끝나면 단술 내온나, 먹방 릴레이가 따로 없다. 엄마는 발이 안 보이게 음식을 날랐고, 손이 안 보이게 설거지를 했다. 나는 오랜 세월 봐왔기에 꽤 담담해졌다. 뿌리 박힌 관습을 바꾸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항하는 대신 엄마를 도왔다. 하지만 가장 괴로운 일은 8살, 6살 조카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는 거였다. 그 아이들이 이러한 문화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게 될까 봐 소름 끼치게 두려웠다.


배려심 많은 시부모님을 만나 시집살이 비슷한 것도 해본 적 없는 나이지만 지영의 마음은 알 거 같았다. 화기애애한 시댁 식구 속에 이방인으로 혼자 겉도는 쓸쓸함, 그 서러움을 알 거 같았다. 다만 나는 아직 아이가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지금은 전업주부인, 한때 잘 나가던 기자 출신의 내 친구가 떠올랐다. 산후우울증으로 고생했던 그녀이기에 누구보다 이 영화를 감명 깊게 볼 거 같았다. 친구에게 톡을 했다.

 

"김지영 봤는데 너무 슬펐어. 아이 가진 여자들은 더더욱 공감할 거 같아"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의외였다.


"난 캐스팅이 별로. 남편이 와이셔츠 소매 걷고 바로 애 목욕 도와주는데 이건 판타지라고 생각했지. 애는 인형처럼 순하기만 하고.
김구라 같이 시니컬한 남편이 소파에 드러누워서 "여편네가 애새끼도 제대로 못 보냐"도 아니고 ㅋㅋ 정유미의 미모도 육아의 고단함을 표현하지 못함"


"그렇긴 하네 ㅋㅋ 야! 근데 그러면 사람들이 안 볼 거 같은데?"


"미안, 너무 다큐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영화는 시종일관 단정했다. 육아로 자신을 잃어버려 정신을 놓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겠지만 영상은 지나치게 깔끔하고 정숙했다.


의도한 연출일까, 캐스팅의 문제일까. 과연 다른 배우였다면 느낌이 또 달랐을까? 결혼을 하아이도 키워본 배우였다면 좀 더 리얼했을까?


아무래도 '82년생 김지영'이 84년생 현실 엄마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기엔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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