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출근하지 말까?"
"아프다고 할까?"
"머리감기 귀찮아!"
오늘아침 출근하기 전
머릿속을 가득 메운 생각들이다.
결국 나는 나와의 싸움을 한바탕 치른 끝에
머리를 감고, 지각하지 않게 나와서, 무사히 출근했다.
그 짧은 몇 분 동안 얼마나 많은 변명과 타협이 오갔는지,
나 자신도 모를 정도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나태함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일주일에 다섯 번은 이런 전투를 치른다.
만사가 다 귀찮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오늘과 내일의 불안감을 덜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지만, 문제는 모든 게 귀찮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귀차니즘을 게으름과 동일시한다.
나 역시 한때는 그렇게 믿었다.
"해야 할 걸 미루는 나쁜 습관" , "성실하지 못한 태도"라는
꼬리표를 너무나 쉽게 붙였고,
결국 나 자신에게도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이,
누구보다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 보면,
귀차니즘은 단순히 나쁜 게으름만은 아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귀차니즘은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마치 과속으로 달리는 차가 잠시 멈춰야 하는 신호등처럼,
귀차니즘 역시 내 일상에 불쑥 나타나 "너 너무 빨리 달리는 거 아니야?"하고 묻는다.
회사, 사회, 관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해야할 일, 꼭 해야만 하는 일, 남들이 기대하는 일.
이 모든 것에 떠밀리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그때 귀차니즘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고,
운동을 나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집 밖으로 나가기 싫다.
그 순간의 "귀찮음"은 사실 내 몸과 마음이 내게 보내는
작은 신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과
가장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귀차니즘은 내게 두 가지 선택권을 준다.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다른 하나는 멈춤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나는 되도록이면 두 번째를 선택하려고 한다.
귀차니즘을 똑똑하게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귀찮음 덕분에, 나는 무엇을 진짜 원하지 않는지를 알게 된다.
예를 들면, 해야 할 일 목록에 적혀 있지만,
계속 미루게 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아마 내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반대로, 귀찮아도 억지로라도 하게 되는 일은
내게 꼭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즉 귀차니즘은 나의 선택을 가려내는 나침반이 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하게 하고,
진짜 중요한 것을 다시 바라보게 해준다.
물론 귀차니즘은 때로 내게 큰 골칫거리가 된다.
중요한 마감 앞에서, 약속 직전에,
해야 할 공부나 준비 앞에서
고개를 내밀때면 나는 늘 후회한다.
'아! 그때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그래서 나는 귀차니즘을 적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 한다.
귀차니즘은 내 마음을 지켜주는 방패이자,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신호등 같은 존재라고...
그 덕분에 나는 때로 멈추고, 숨을 고르며, 나를 돌아본다.
귀차니즘은 나를 게으르게 만드는 동시에 나를 성찰하게 만든다.
이 모순적인 성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의 하루와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귀차니즘이 찾아올 때마다, 이렇게 되묻고 싶다.
"지금 이 귀찮음은 단순한 도피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나에게 건네는 작은 휴식일까?"
그리고 답은 늘 같다.
귀차니즘은 적이자 친구라고...
그것은 내 삶을 방해하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나를 지켜주는 존재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귀찮음을 무릎쓰고 출근한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며, 동시에 그 짧은 갈등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게 해준 귀차니즘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