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르기는 이제 그만
배우 이선균이 얼마 전에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한 일이있었다. 그는 마약 관련 수사 중에 있었으며 무고함을 주장했으나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두 차례에 걸쳐 공개 소환을 강행했다. 이로인해 그는 언론과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가족들은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노출됐다. 죽기 직전 3차 소환이 예정되어 있던 상황에서 그는 공개 소환을 보류해달라고 청했으나 묵살되었다. 결국 그는 소환을 앞두고 자살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으며 유죄추정의 원칙(有罪推定의 原則)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났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언론과 대중이 범죄자 취급을 하는 모습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하는 이 말은 현재 우리의 시대를 보여준다.
개인의 사생활을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폭로하고 이것으로 돈을 벌어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등 거짓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공포 또는 혐오의 감정을 이용하여 목표한 목적을 달성한다.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자신의 사적 이득을 위해 악용한다.. 사회의 경쟁 강도가 심화되고 코로나 19 펜데믹을 겪은 후 이 혐오는 더욱 증가했다. 편을 나누고 서로에 대한 증오를 키워간다. 혐오를 중재해야 하는 정치인과 언론인은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영향력을 확대하고 클릭 수 확보를 위해 증오를 부추긴다.
개인 차원에서 이를 경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를 모호하게 이해하지 않고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복잡한 세상을 무조건 단순하게 보려는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 ‘빨리빨리’에 익숙해한 우리 사회는 개념을 단순화해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 복잡한 요소로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에 지나치게 게으름을 추구하고 있다. 개인과 개인의 구별은 모호해지고 ‘~들“이라는 모호한 진합체만 성행한다. 남자들, 여자들, 꼰대들, MZ들. 독일 작가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에서 “미움받는 존재는 모호하다. 정확한 것은 온전히 미워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여기서 정확함은 게으름이 아닌 섬세한 노력을 요구한다. 그들은 개별적인 인간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엄밀하게 바라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alexandra
칼럼 참고 ; 국민일보 <누군가를 모호하게 미워하지 않는 법>(임홍택 명지대 겸임교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