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삼칠일'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까? 삼 더하기 칠일, 즉 열흘을 말하는 걸로 알아들을까? 아니면 3월 7일로 생각할까? 사실 나도 아기 낳기 전에는 '삼칠일'이 세 번의 칠일을 지낸 스무하루를 말한다는 걸 몰랐다. 삼칠일은 면역력이 약한 갓난아기와 출산을 한 산모를 지키기 위해 금줄을 치고, 악운을 막아내던 기간이었단다. 우리네 조상들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매듭지어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며 새로운 생명을 지켜내고자 했다. 매우 신성하고 고결한 품성을 지닌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쓰리쓰리가 출산한 뒤 그녀의 아기들을 창 너머로 몰래 훔쳐본 것은 우리 부부뿐 아니었다. 우리 집에 사는 막내 냥이도 밖에 사는 녀석들이 궁금한지 문 앞을 지켰다. 쓰리쓰리가 불안감을 느낄까 봐 막내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블라인드를 내려놓았고, 밥을 챙겨주러 나갈 때는 막내가 없는 틈에 주었다. 비록 금줄을 쳐주지는 않았지만 다른 냥이들의 접근을 막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한테는 더욱더 비밀에 부쳤고.
그런데 7월 1일 밤, 새끼 세 마리를 출산한 동네 삼색냥 쓰리쓰리는 삼칠일이 지난 21일 낮, 아기들을 데리고 홀연히 떠나 버렸다. 인사도, 예고도 없이. 이런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세 마리의 고양이와 십 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고양이에 대해서 제법 많은 지식을 얻어들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수의사가 쓴 책도 사서 보고, 유튜브 구독도 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다 보니 내가 그들을 이해한 건지, 아니면 내 식대로 알아들은 건지 확실하지 않다. 고양이 각각의 성격도, 그들 간의 관계도 그저 사람의 시선으로 미뤄 짐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의 일반적인 습성에 대해서 알아두는 것은 우리 집 고양이들뿐 아니라 동네 길고양이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고양이들이 새끼를 갖고 낳게 되는 기간이랄지, 새끼를 키우다가 이소를 하는 과정이랄지, 맛집을 두고 벌이는 영역 싸움이랄지. 여러 해 전, 처음으로 베란다에서 출산했던 '발랄이'가 네 마리 새끼 '오마이갓'을 데리고 홀연히 떠나버렸을 때, 얼마나 서운했던지! 그때는 고양이의 이소 습성에 대해 모르고 있어서 그 서운함이 배가되었던 것 같다.
쓰리쓰리가 이소를 한 날도 비가 꽤 오던 날이었다. 블라인드를 살짝 올리고 내다보니, 분꽃 씨앗 같은 까만 눈을 뜬 아기 고양이들이 집에서 나와 찬 바닥에서 엄마 젖을 먹고 있었다.
'삼 주간이면 어느새 저렇게 똘망해지는구나'
'우리 집 망나니 메이 녀석도 저만했을 때는 진짜 귀여웠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블라인드 안쪽 부엌에서 하루종일 마늘을 깠다. 밖에는 비가 오고, 고양이는 젖을 먹이고, 할매는 마늘을 까고. 참으로 평화로운 정경 아닌가? 그런데 실은 비가 추적추적 오는 사이, 어미는 이사 갈 장소를 찾아 헤맸던 거고, 비를 맞으며 한놈 한놈 물어날랐던 거다. 아무도 모르게.
너는 이날 날 보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거니?
안에서는 한가로이 마늘이나 까고 있었지만, 밖에 쏟아진 장맛비는 피해가 너무 컸다. 지하차도가 잠겨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날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비가 많이 와도 차를 타고 얼른 씽 집에 가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날 줄이야.
"집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해."라고 하면서 집안에 머물렀는데, 산사태에 그 집이 무너져 실종되었다는 뉴스도 들었다. 실종자들을 수색하던 어린 군인이 목숨을 잃은 것도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들내미가 전역한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크고 황당할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다.
하루에도 여러 번 '안전안내문자'가 날아든다. 이 문자가 정말 내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가? 아니, 내가 운전을 하고 다니는 이 나라 도로는 안전한가?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이 집의 지반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문자가 백번 천 번 온다고 해도, 안전을 지켜준다는 이 나라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다. 성수대교부터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화재, 씨랜드 화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그리고 물난리까지.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걸어 다녀도, 타고 다녀도, 날아다녀도.
안전에 대한 보장이 없기는 고양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게다. 호시탐탐 새끼들을 내다보는 주인집 사람들이 언제 유괴해 갈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을 테고, 창 너머로 보이는 다른 고양이들이 내 새끼들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되었을 테다. 울타리 밖이라고 다를까.
비가 들이쳐 축축하지 않고, 새끼들 키우기에 불결하지 않고, 다른 고양이들에게 위협당하지 않을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아기들을 물어 나른다, 조금 더 안전하게 숨을 곳으로. 실제로 안전한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엄마로서 새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다 떠나고 난 뒤의 빈 둥지를 우두망찰 지켜본다.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것도 있다지.
삼칠일 지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군복무를 마친 녀석이나, 말도 못 하면서 아이스크림 달라고 떼쓰던 딸내미가 배꼽티를 입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 머잖아 오게 될 우리 집의 빈 둥지가 그려져 벌써부터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하다.
어느 날엔가 다 떠날 것이다. 그 날은 온다. 단지, 인사도 하지 못하고 보내게 되는 일만은 없기를 간절히 빈다. 남은 자들은 그저 '내가 뭘 잘 못 해줬나? 왜 이리 빨리 갔나?' 하고 다 하지 못한 사랑을 후회하지 않게 되기를. 이런 아쉬움이 부디 고양이들한테서 끝나기를 간절히, 매우 간절히 바라지만. 이만큼 산 날의 속도를 되짚어 보니, '그날'은 생각보다, 예상보다, 계획보다 빠르게 오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