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며느리일 때 생기는 일

- 친정이라고 다 편하다는 보장은 없으나

by 글방구리

지난 글에서, 아기 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떠나버린 쓰리쓰리 이야기를 소상히 적었더랬다.

'날씨가 좋을 때나 떠나든지. 아직 젖먹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간 거야....'

우리 집 베란다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잘만 살아 있어라, 하고 들리지 않는 축원을 해주면서도, 눈앞에서 꼬물거리던 모습이 눈에 밟혀 서운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새끼들을 어디엔가 숨겨놓은 쓰리쓰리는 떠난 다음날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슬근슬근 밥을 먹으러 왔다. 때가 되기도 전에 와서 끼륵끼륵 운다, 빨리 밥 내놓으라고.

"그래. 수유부라 배가 고픈게지. 많이 먹고 가서 젖 줘라."

자도 자도 잠이 오던 임신부, 젖이 안 나와 안타까워했던 수유부 시절을 떠올리며 이 녀석을 처음에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밥을 먹고 난 다음에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베란다 앞에서 뭉개고 앉아 자기 털만 핥고 있다.

"쓰리쓰리! 너 새끼들 어디에 두고 여기에 와 있으면 어떡해? 네가 지금 맘 편하게 그루밍할 때냐? 누가 새끼들 집어가면 어쩌려고? 먹었으면 빨리 돌아가!"

젖먹이 아기를 방에 내버려 두고 피시방에서 밤을 새운 철딱서니 청소년 엄마가 오버랩된다. 아, 이래서 너무 철없을 때 아기를 낳으면 안 된다니까.


"쟤가 애 키우느라 지쳐서 그래. 얼마나 쉬고 싶겠어. 전에 보니까 꼬맹이들이 천방지축 다니기 시작했던데."

육아를 하다 보면, 아기 없이 자유롭게 어디라도 외출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아기의 울음소리에 촉각을 세우지 않고 마음껏 단잠을 자고 싶고, 음식 맛을 즐기면서 여유 있는 식사를 하고 싶은 때가. 쓰리쓰리는 그야말로 독박육아 아닌가. 아비는 낯짝도 볼 수 없는데, 게다가 세 쌍둥이라니.


그러고 보면 쓰리쓰리에게 우리 집은 친정 같은 곳이겠다. 베란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할매, 할배가 도무지 믿지 못할 사람 종족이어서 새끼들을 맡기지는 못하지만, 육아에 지친 몸을 쉬었다 갈 수 있는 친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자기가 이 집 딸이니 여기에서 맘 편하게 몸을 풀고, 삼칠일을 지내고 간 거라고.

'애들 키우기 힘들지? 와서 푹 쉬었다 가라, 우리 딸!'

쓰리쓰리는 우리가 이렇게 생각해 주길 바랐을까? 그러나 동상이몽. 쓰리쓰리는 우리에게 딸이 아닌 며느리였다.

"너, 또 왔어? 또 혼자야? 오려면 새끼들 데리고 오지. 혼자 오면 누가 반긴다고."

아직은 경험이 없지만 드라마에서 숱하게 봐 온 장면이다. 노인네들이 기다리는 건 아들 며느리가 아니고 손주들이라는 것. 명절에 손주들 없이 아들 며느리만 오는 건 그다지 반갑지도 않아 하는 것.

우리 식구가 꼭 그랬다. 쓰리쓰리가 오면 뒤에 새끼들이 따라오지 않나 확인하고, 혼자 와서 밥 달라고 하면 공연히 미워지기도 했던, 눈치 없는 며늘아기.


이사를 멀리 가지는 않았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한눈에 보이는 풀숲 언저리에서 새끼들이 논다는 제보가 날아든다. 아직 새끼들이 뛰어넘지는 못할 축대가 있어 데리고 다니지는 못하지만, 쓰리쓰리로서는 나름 대책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문제는 태풍이었다. 내 소속이 어디인지 이참에 깨우쳐주기라도 하는 듯, 안전안내문자가 속속 날아든다. 구에서, 시에서, 행안부에서, 산림청에서. 그저 알려주기만 할 뿐인 안내문자가 아니더라도, 유리창을 때리는 빗방울의 힘이 평소와는 다르다. 현관 밖에 놓아둔 우산 거치대도 쓰러지고, 어느 집에선가 물색없이 내놓은 스티로폼 상자들도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 이렇게 큰 비가 쏟아지는데도 쓰리쓰리는 베란다에 혼자 와 있다. 이쯤 되면 욕먹어도 싼 며느리가 맞다.

"너! 새끼들은 비 다 맞게 내버려 두고 너 혼자 와서 피하고 있어? 이게 말이 돼? 빨리 가서 데리고 와!"

눈만 끔뻑거리는 철딱서니 며느리에게 맡겨두면 안 될 것 같아 남편이 나섰다. 사다리를 놓고 비를 쫄딱 맞으며 새끼들을 구조해서 오려고 했는데, 요 녀석들이 실종유괴예방교육을 단단히 받았나 보다. 낯선 사람이 오니 더욱더 풀숲으로 몸을 숨기더란다. 포획에 실패한 남편은 베란다에 상자를 몇 개 더 놓아주고는, 쓰리쓰리가 스스로 데리고 오기를 바랐는데. 폭풍우 치는 그 밤에...


진짜 데리고 왔다!!!

비에 젖은 새끼들 털을 밤새 말려주었는지 다시 뽀송뽀송해졌다. 한 식구라고 한데 모여 자는 모습이 참 정겹구나.

쓰리쓰리는 그렇게 딱 이틀 머물다가, 태풍의 소멸과 함께 또 떠났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디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고 있다. 며느리는 시에미가 자꾸 들여다보는 게 싫겠지만,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 집을 넘본다. 높은 담에 올라가 뛰어내리는 '아라리요'의 묘기도 구경하고, 몰래카메라처럼 백 배 줌을 잡아서 손주들 사진도 찍어댄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털이 함함하다고 한다. 내 핏줄은 아니어도 우리 손주들은 미묘 중의 으뜸 미묘다.

나는 아이를 낳았을 때 시어머니와 시이모님의 산후간호를 받았다. 친정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친정 부모님도 불편하고, 공간도 불편했다. 그래서 육아에 힘들 때, 친정에 가서 무조건 쉬었다 온다거나, 친정엄마 앞에서 남편과 시댁 흉을 보는 맛이 어떤 건지 모른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 친정집이라는 물리적 공간도 사라졌다.

경험치가 없어 친정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잘은 모르지만, 고양이 며느리 쓰리쓰리가 우리 집을 친정처럼 찾는다면 막지는 않겠다. 새끼 없이 온다 해도 구박하지 않겠다. 예쁜 손주들 낳아준 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리라. 잘만 연습해 두면 진짜 며느리를 보았을 때, 진짜 친정엄마 같은 시어머니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아들아, 엄마는 며느리의 미모를 본단다. 적어도 쓰리쓰리만큼은 되는 며느리감을 데려와야 하느니라.
아무리 귀여워도, 손주들은 안 키워줄 거니까 그리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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