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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2022년 4월 4일 월요일 / 삼짇날에는 진달래 꽃전을

by 글방구리

베개(배게), 도롱뇽(도룡용), 홑잎나물(홋잎나물) 같은 것들. 한때 교정교열로 밥 벌어 먹고 산 적이 있어서 맞춤법에는 매우 민감한 편인데도 글을 쓸 때면 살짝 헷갈리는 표기법들이다. 그 중 하나가 삼짓날이라고 쓰기 십상(쉽상)인 삼짇날이다. 음력 3월 3일, 어제였다.


삼월삼짇날이 되면 강남에서 날아온다는 제비들은 제주도에 가야 볼까 말까다. 어릴 적 서울 살 때 양옥인 우리집 처마에도 집을 지었는데,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희귀종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삼월삼짇날이면 꼭 하고 넘어가는 것이 있으니, 바로 진달래화전이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진달래꽃을 따 먹었다고도 하고, 진달래꽃에 약간의 약물(?) 성분이 있어서 산속으로 피해 살았던 나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이야기가 과학적, 역사적으로 검증이 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때, 산속에서 볼 수 있는 파스텔톤의 이 고운 꽃잎들을 따다가 꽃전을 부쳐 먹었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조상님들인지.

해마다 아이들과 꽃전을 부쳐 먹는다고 진달래꽃을 구해오기는 하는데, 요즘엔 꽃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간혹 공원에 보이기는 하지만 일부러 심어놓은 나무에서 꽃을 따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에게는 저절로 핀 제비꽃이나 쑥 같은 것들을 조금 따게 하고, 교사들은 이맘때면 산에 가서 꽃을 따오곤 한다. 걸어서 오분 거리에 나즈막한 산이 있는 내가 주로 꽃을 따오는 담당이었다. 올해도 종이봉투 하나 들고 꽃을 따러 나선다.




잎이 나지 않은 숲이라 아직 배경은 겨울인데, 옅은 분홍빛으로 여기저기 채색한 진달래꽃 덕분에 산에는 생기가 돈다. 한 폭의 수채화다. 한 나무에서 많이 따면 안 될 것 같아 이 나무 저 나무 돌아다니면서 몇 송이씩 따서 모은다. 가지 끝마다 피워올린 야들야들한 꽃송이를 보면, 저 마른 가지 속에서 어찌 이렇게 보드라운 꽃을 밀어냈나, 감탄이 절로 난다.

꽃전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먹는 것이다.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꽃구경에 한껏 심취하며,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속으로 외워본다.

'으음... 그런데 이 시가 원래 이런 거였어? 그런데 진달래꽃을 '아름따'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따야 하는 거야? 가지를 꺾어서 딴 거야? 아니면 한 송이 한 송이 딴다는 거야? '가시는 걸음걸음'마다 놓는다면 꽤 많은 분량을 따야 할 텐데, 그걸 따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님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나 싫다고, '보기가 역겨워' 간다는 사람한테 꽃을 따서 발 아래 깔아주는 그 심정은 도대체 어떤 마음인 걸까? 이건,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는 것이 아닌데? 말보다 더 무서운 응징인데?'

이렇게 시 속에 빠져드는 것도 잠시, 채취본능이 발동하여 부지런히 손을 놀리다 보니 어느새 종이봉투 하나에 가득 찼다. 이제는 산은 안 보이고 꽃만 보인다. 아이들한테 "꽃을 딸 때는 일부러 심은 것 말고, 저절로 심어진 건지 보고, 꼭 필요한 만큼만 고마운 마음으로 따자." 하고 얘기해 오던 터라, 나도 '필요한 만큼'에서 손을 멈춰야 한다.


집에 와서 진달래꽃 시 해석을 다시 찾아보았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한 감정을 묘사한 거라는 해석도 있고, '반어법'을 잘 보여주는 시라는 해석도 있다.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단다.

'아니, 내가 역겨워 가는 사람 앞에 꽃을 뿌려준다는, 그 마음을 중학생이 안다고?' 나 보기가 역겨워 가는 사람한테 욕이나 한 바가지 퍼주지 않고, 속으로 칼을 갈듯 꽃을 뿌려주면서, '사뿐히 즈려밟'으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시인의 '마음'을, 중학생이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이해를 하든 말든, 이 시는 유명한 시니까, 이 시에서는 반어법을 배워라, 하는 것이 진짜 '국어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 문제 없는데 나만 삐딱한 걸지도 모르겠다.


***

IMG_8731.jpg 화전은 요런 맛이랍니다. 예쁜 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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