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할까 말까, 할까 말까 마음속으로 저울질하던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텃밭이고, 또 하나는 등산이다. 오늘은 그 두 가지 일이 '하는 쪽'으로 결판이 난 날이다.
십 년 전쯤엔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주말농장에 텃밭을 분양받은 적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하는 밭 옆쪽에 얻었다.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은 텃밭 나들이를 가니까, 가는 길에 우리 밭도 하면 같이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분양받을 때는 조금이라도 큰 밭을 얻으려고 욕심을 냈다. 여름이 되면서 작물이 아닌 풀로 밭이 뒤덮여 가는 것을 보았을 때, 땅을 적게 가진 자들을 부러워했다. 배추 쉰 포기를 심어 거두어 김장을 하고 나서는, '내 인생에 텃밭은 없다!' 하고 굳게 결심했다. 나이 들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지어야지,라는 말처럼 현실성 없는 말이 없다. 농사는 젊고 힘 좋을 때 지어야 한다.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텃밭을 하고 싶어도 분양을 받는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산책을 다니면서 흙을 만지는 분들을 보면 살짝 부럽기도 했으나, 고개를 흔들어 마음을 밀어냈다. 친구가 사탕 먹는 것을 손가락 빨며 구경하는 심정으로 남의 밭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하늘이 아셨는지, 생각지도 않았던 밭 한 고랑이 하늘에서 똑 떨어졌다! 동네에 땅을 사서 주말농장 농장주가 되신 이웃집에서 고랑이 조금 남는다고, 그냥 푸성귀나 심어 보겠느냐고 연락이 온 것이다. 아싸! 딱 그 정도를 원했던 건데, 딱 고만한 땅이 주어졌다. 요기에 뭘 심나, 할 정도로 아담한 사이즈로 만들어 놓은 밭 앞에 서니, 마음은 벌써 풍년이다.
두 줄짜리 고랑은 주인집 것. 내 건 딱 사람 하나 누울 정도 크기의 밭이다. 농사라기보다 소꿉놀이 하는 것 같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계획은 등산이었다. 뒷산에서 근력을 키워서 큰 산에 도전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큰 산은커녕 뒷산을 가는 횟수도 자꾸 줄어들었다. 가야겠다고 계획한 날에는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백 가지도 넘게 생기곤 했다.(가지 않을 핑계를 백 가지도 넘게 만들어 냈다,가 더 솔직한 표현이다.)
등산이 뭐 별 거라고. 한 번 가기 시작하면 할 수 있을 텐데.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나 자신과 했던 글쓰기 약속을 간신히 지켜가고 있는 것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힘을 빌려야겠구나. 남편에게 '답사'를 같이 가달라고 했다. 힘들면 그만 올라간다고 미리 다짐을 받아놓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분히 걸어 세 시간만에 봉우리 하나는 찍고 내려왔다. 무릎은 아팠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자고로, 등산 인증샷에는 딛고 올라간 내 발이 같이 찍혀야 한다!
잘 쓰지 못해도 쓰는 데 의미를 두자꾸나. 잘 가꾸지 못해도 흙을 만지는 걸로 만족하자꾸나. 갈 때마다 봉우리를 찍지는 못할지 몰라도, 그저 숲길을 걷다가 오는 것만으로 만족하자꾸나. 거창한 것을 꿈꾸지 않아도, 작은 꿈이나 이렇게 하나씩둘씩 이뤄가는 걸로 행복해하자꾸나. 요즘 나 자신에게 자주 거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