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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과 신념 사이

2022년 4월 6일 수요일 / 한식, 찬밥 먹는 날

by 글방구리

이번 대선 기간 중에 많이 오르내린 말 중에 '갈라치기'가 있다. 내편 네편을 가르고,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게 만드는, 못된 단어.

갈라치기라는 말을 싫어하면서도 나도 가끔 갈라치기를 한다. 가족 중에 나만 성(姓)씨가 다르니, 기분이 좀 꼬이면 "조씨(남편 성씨)가 그렇지 뭐."와 같은 말로 남편과 아이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고 나면, '으이그, 또 실수했네.'라고 후회를 한다. 그러곤 실수를 만회하려고 "하긴, 남씨(내 성) 고집도 만만치 않지."라고 하는데, 사실 그건 내 개인적인 단점을 가문과 문중의 탓으로 돌리는 치사한 말이다.


내가 유난히 고집을 부리는 몇 가지가 있다. 좋게 말하면 신념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솔직하게 말하면 그건 그냥 고집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것을 '고집하는' 데 대단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지, 남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중 한 가지는, 화장을 하지 않는 것. 물론 젊어 한때는 화장을 하고 다닌 적도 있지만, 그때도 열심히 바르고 다닌 것 같지는 않다. 귀찮아서 화장을 하지 않고 나가려 하면 친정 엄마는 "아픈 사람 같아. 루즈라도 발라."라고 하셨다. 화장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이다. 화장을 하려면 더 잘 씻어야 하고, 더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최강동안')

"종이배! 동안의 비결은 노메이크업이에요?"

"노메이크업만이 아니죠, 전 노워시(no-wash)예요."

인사치레에 대한 유머러스한 대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부끄럽게도 사실이다. 씻는 것이 귀찮아서 화장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햇볕을 쪼이며 나들이를 다닐 때 선크림조차 바르지 않는다고 하면, 다른 선생님들은 나를 외계인 보듯 했다. 사실 선크림은커녕, 세수한 뒤에 스킨과 로션도 바르지 않을 때가 많다. 나도 화장을 좀 해볼까, 하고 로션을 뜯으면 일주일이나 쓸까, 대부분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게 된다. 화장을 하고 나면 더 예뻐 보여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텐데, 이상하게도 화장을 하고 나면 더 팍삭 늙은 느낌이 든다. 아, 예의상 일 년에 두 번은 화장을 했다, 신입부모 오티 때와 졸업식 날.


내가 부리는 쓰잘데기없는 두 번째 고집. 실손보험을 들지 않고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냉장고 문을 열다가 그릇을 떨어뜨려 발가락 뼈에 금이 간 적이 있다. 정형외과에 가니 실금이 갔다고 했다. 간호사는 "이것 보험 처리되니까 서류는~" 어쩌구 하면서 보험금 청구 방법을 안내한다. 하지 않을 거라고 하니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라. 얼마 전에 어떤 선생님께 안부 전화를 했더니, "건강검진 받으러 가시기 전에 암보험 유효한지 꼭 확인하고 가세요."라고 하신다. 걱정해 주셔서 하시는 말씀이기는 한데, 없는 암보험이 유효할 리가.

보험이라고는 국가에서 보장하는 4대 보험 외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보험금을 내면, 보험금을 타고 싶어질 테고, 보험금을 탄다는 것은 어떤 식(건강문제든, 사고든)이든 예기치 않았던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갑자기 병이 나면 어떡하지, 큰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이러다 노후에 고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얼마의 보험을 넣어야 노후가 보장되는 걸까, 아니 내게 노후가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고 나면, 그저 '내 생명의 연장은 4대 보험이 허용하는 한까지'로 쿨하게 정리된다. 보험금 탈 일 없이 사는 데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하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다. 내 살림살이 하나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회사 경영까지 관심을 둘 리 없다. 그런 입장에서 주식은 내게 도박이나 다름없다. 주식을 해서 얼마를 벌었네, 하는 말을 들으면 예금, 적금밖에 아는 바 없는 내 재테크 방식이 시대에 매우 뒤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돈은 땀으로 벌어야지, 돈으로 돈을 버는 건 도박이자 사기캐처럼 보이는 걸 어쩌랴. 주가조작도 일이라고 생각하면 일일 수 있겠고, 그런 범죄혐의를 받아도 권력만 등에 업으면 눈 감아주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나는 세상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짧고, 너무 소중하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다른 부모들이 많이 하는 칭찬과 보상의 방법인 '스티커'와 '집안일 아르바이트'다. 교사로서는 그런 식의 칭찬과 보상을 간혹 해주었다. 그게 뭐라고, 스티커 한 장, 도장 하나 받으면 별이라도 딴 듯 좋아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기 위해서 택한 방법이기도 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주는 것은 주로 아이들이 잘 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할 때다. 편식을 하는 아이가 반찬을 골고루 먹는다거나, 돌아다니며 밥을 먹는 아이가 제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거나, 양치를 싫어하는 아이가 양치질을 한다거나, 책을 읽히기 위해서 책 권수만큼 스티커를 준다는 것인데. 나는 그게 싫었다. '그게 스티커를 받아야 할 일들인가? 스티커가 없으면 안 해도 되나?'라고 자문했을 때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다 잘해서 안 한 게 아니다. 딸내미도, 아들내미도 하기 싫어하는 것들이 있었으나 스티커를 주어가면서 하도록 하지는 않았다.


스티커보다 더 싫은 것, 아이들에게 진짜 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집안일 아르바이트다. 자기 방 청소를 하면 얼마, 설거지를 하면 얼마, 분리수거를 하면 얼마, 이런 것들. 집안일은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지, 누가 누구에게 돈을 주어가면서 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아직 성년이 아니고 직업이 없어 돈을 벌지 않으니, 돈을 버는 부모가 필요한 만큼의 용돈을 '그냥' 준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집안일을 '그냥' 한다. 그게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아내가 집안일을 한다고 서로 돈을 주지는 않지 않은가. 그러니까 부모와 자식도 집안일이라는 노동을 두고, 돈으로 얽히는 고용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키가 작고, 나이가 어릴 뿐이지, 똑같은 가족이니까.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내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 고집쟁이인지. 이 고집을 다 드러내고 살면 다른 사람이 얼마나 나를 불편하게 여길 것인지. 그러니 아마도 내가 앞으로 살아갈 노년의 삶에서는 내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더 냉철하게 따져봐야 하리라. 혼자만 신념이라고 생각하지, 남들 보기에는 분명히 고집인 그런 뒷방 늙은이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건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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