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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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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Apr 08. 2023

아내와 장모님을 벚꽃 보듯

반년 전에 어느 펜션을 예약해 두었다. 시간 맞추기 어려운 가족끼리 휴가를 가려면 이른 시기에 결제까지 끝내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두어야 어지간한 사건으로는 누구도 미루질 못한다. 장모님과 장인어른, 그리고 두 처남과 함께 하는 휴가. 2023년 4월의 첫 주말에, 아내와 나까지 여섯 가족은 춘천의 한 펜션으로 향했다. 각오는 했지만 춘천으로 향하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더 고됐다. 4월이 되자마자 활짝  벚꽃 덕분이었다.


예약을 할 때는 몰랐는데, 펜션 근처에 유명한 벚꽃길이 있었다. 찻길 양 옆으로 줄지어 심어놓은 벚꽃나무가 마치 터널을 만들 듯, 도로 위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차량 통행도 막아놓아서 사람들은 분홍빛이 도는 벚꽃 터널을 한가로이 거닐 수 있었다. 우리는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남기기를 반복하며, 운 좋게도 평년보다 이르게 만개한 벚꽃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우리 대학 때는 벚꽃이 중간고사 기간에 피었는데.


아내는  꽃잎을 보며, 우리 대학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중간고사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4월 중순쯤 벚꽃이 피는 바람에, 항상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벚꽃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꽃이 피었다고 어디를 다녀온 적은 손에 꼽았던 것 같다. 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은 중간고사뿐만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고 생업을 이어가던 지난 시간 내내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항상 불안한 미래를 향해 있었던 탓에 지금 스쳐가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느끼지 못했다. 올해도 운 좋게 여행 일정과 벚꽃 개화 시기가 맞물리지 않았다면, 봄이 왔음을 느끼지 못하고 흘려보내지 않았을까.


우리가 운 좋게 봄을 느꼈던 날로부터 이틀 뒤, 벚꽃 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나무에는 초록잎이 파릇파릇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한동안 만개한 분홍빛 꽃잎으로 가득했던 SNS에는 짧은 시간 화려하게 피었다가 사라지는 벚꽃 잎을 아쉬워하는 이야기로 채워졌다. 비상이 걸린 것은 벚꽃 예상 개화 시기에 맞춰 축제를 준비한 전국의 지자체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축제"라는 문구를 현수막으로 걸어놓은 지자체는 재치 있는 대응으로 관심을 많이 받기도 했다.


벚꽃이 사랑받는 이유는 찰나처럼 왔다 가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을 놓치면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대상을 특별하게 만든다. 벚꽃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사람들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눈과 사진에 담으려고 애를 쓰는 것도, 분홍빛 꽃잎이 화려하게 핀 자신의 모습을 너무 짧은 시간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득 나는 이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시간, 내가 벚꽃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바쁘니까. 내년에 보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지금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볼 수 있다는 듯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20대의 아내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고, 30대인 지금 아내의 모습도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과 함께 하는 시간도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펜션 마당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아내와 장모님, 장인어른의 모습을 멀리서 보다가, 문득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볼 수 없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카메라를 켰다. 눈에 담고 사진으로 남겼다.


우리도 찰나처럼 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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