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친구 구합니다
“나 너네 아빠랑 이제 안 살란다. 너네도 다 시집갔고 이제 해도 되지 뭐. 요새 졸혼인가 그거 한다면서.”
엄마의 생일을 맞이해서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엄마는 어마 무시한 선전포고를 했다. 평소 사위들이랑 잠자는 것도 불편해하는 엄마가 사위들과 손주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말하는 걸 보니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다소 놀라긴 했지만 속으로 ‘또 시작이네’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 마음은 동생도 같았는지
“그래 하고 싶으면 그냥 이혼해. 이제 해도 되지 뭐.”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성인이 되고 보니 엄마는 친구가 없었다. 가끔 어렸을 때 동네에서 알던 아주머니들과 연락하거나 만나긴 했지만, 특별히 엄마 친구라고 떠올릴만한 사람은 없었다. 사회생활이 활발하지 않았던 엄마세대는 다 그런 줄 알았다. 엄마들은 동네 아줌마들 아니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보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엄마와 비슷한 나이 때인 시어머니는 친구가 참 많았다. 무슨 무슨 정기 모임도 자주 나가시고 이 친구 저 친구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부모님은 늘 비슷한 패턴으로 다투셨다. 이번에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퇴직한 뒤에도 이런저런 친구들 모임으로 바쁜 아빠의 어떤 실수가 발단이 된 것 같았다. 엄마가 너무 화를 내며 흥분하니 동생은 참고 있던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러게 엄마도 친구 좀 만나고 다니지!”
엄마는 외롭지 않을까. 우리 엄마는 친구를 사귀는 데 서툰 걸까. 아니면 혼자가 편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부부는 평생 친구라고 아빠와의 시간을 더 바랐던 걸까.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했던가. 나도 친구가 별로 없는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땐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 장난기 있고 발랄한 성격 탓에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늘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오래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는 많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이 바뀌거나 이사를 가거나 하면 난 그 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꼭 필요할 때만 연락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일부러 노력을 한다고 친구가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거기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이전의 친구를 회상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웃긴 생각을 했다.
책에서 보니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보통 성격이 내성적이고 사교적이지 못하거나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맞는 말인 것 같다. 물론 내성적이고 사교적이다 아니다 하는 건 개별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긴 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의지는 꾸준히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 같다.
젊은 시절 연애할 때 남자 친구와 다퉜던 주된 사유도 내가 연락이 자주 안 되어서였는데 이건 가족이나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족들은 내가 하도 전화를 안 하니 대신 메일이나 문자로 먼저 연락을 한다. 생일날 축하 연락이나 명절 때 안부를 묻는 정도 말고 누구에게 특별히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라 휴대폰 무료통화를 다 써본 적이 없으니 말 다했다. 이건 내성적인 걸까 게으른 걸까.
얼마 전 둘째가 태어났는데 주변에 따로 알리지 않았더니 왜 연락을 안했냐고 핀잔을 주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말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사실 내가 잘못한 건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을 사귀고 그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일부러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혹자는 노력이 아니라 관심이나 성의라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편하지 않으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만나거나 연락하는 게 더 힘이 든다. 처음 만난 사람이 한번 보고 연락처를 교환하자고 하면 고맙기도 하고 또 어쩔 땐 형식적이란 생각이 들어서 꺼려지기도 한다. 역시 난 사교적이지 못하고 의지가 부족하다.
이따금씩 친구나 지인이 잘 지내고 있냐고 그냥 연락했다고 전화가 오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다정할 수가 있을까 감탄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사교성이 플러스가 될 터인 데 따라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런가.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 어린이집, 유치원을 보내며 7년을 넘게 살았음에도 제대로 된 동네 친구가 없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친구와 따로 만나고 싶어 해서 유치원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볼까 노력도 해봤지만 이상하게 한두 번 만나고는 만나 지지가 않았다. 인위적으로 친해지려 하다 보니 작은 말 한마디나 사소한 상황에서도 신경이 쓰였다. 평소 난 참 담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매사에 전전긍긍하고 앞뒤를 재고 있으니 사실 참 쪼잔하고 소심하기 짝이 없다.
아이가 가끔 친구 누구누구랑 놀고 싶은데 못 놀았다고 하면 "같이 놀자고 씩씩하게 이야기해봐" 하고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속으로 '얘가 날 닮은 거 아닌가' 하고 걱정된다. 근데 딸아 솔직히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도 친구 사귀는 법을 아직 잘 모르겠단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예전엔 약속 없는 금요일이 참기 힘들어 퇴근하기 직전까지 ‘오늘 뭐해?’ 란 문자를 이 친구 저 친구한테 보내기 바빴고,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왠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 시무룩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누군가 불러내서 수다도 떨고 싶고 좋은 데도 가고 싶은데 휴대폰을 보면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는 게 번거롭다 보니 점점 혼자가 편해지고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언제든지 연락하거나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와 지인들이 몇몇 있다. 그들은 고맙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 내 성격이라 이해해주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나눠주고, 함께 밥을 먹거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해준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 모든 게 감사하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싶어 하면서 또 함께 있고 싶어 한다. 늘 타인에게 확인받고 싶어 하고 그럼으로써 내 존재를 성장시켜 나간다. 혼자일 때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꿈꾸고 실현할 수도 있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도 친구가 맞장구쳐주고 공감해준 덕분에 반짝반짝 빛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나 인생의 소울메이트를 찾고 있는 건지도. 나 역시 삼십대 후반에도 정말 단짝같은 친구가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설렘을 안고 계속 친구를 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집을 정리하다가 초등학교 때 친구와 쓰던 교환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때 왜 이런 걸 쓰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친구와 나는 사소한 비밀을 꽤 많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거다. 친구란 가장 간직하고 싶은 것을 나눈 사이 아니면 가장 어려운 것을 함께 나눈 사이가 아닐까. 그 친구와는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가끔 연락하고 지냈는데 마침 다음 주에 우리 집에 놀러 온다고 하니 이 일기장을 꼭 보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