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라는 수식어
살면서 큰 실패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다. 이 말을 듣는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실패 없는 성공은 없듯이, 때문에 큰 성공을 해본 적도 없다. 늘 뜨뜻미지근 근하기만 한 날들 한가운데서 자주 자신감이 부족했고, 남들은 모두 무언가를 향해 열정 궤도를 달릴 때 내게는 왜 그런 게 없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변변한 취미 하나 없는 내가, 남 앞에서 말할 때마다 귀까지 빨개지는 용기 없는 내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멍 때리기 일쑤인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정표 없이 흔들리던 20대와 뭐 좀 알 것 같던 30대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내겐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다는 걸 알고 쥐구멍에도 볕뜰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날은 끝끝내 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진 것 같은데, 모두들 다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없을까?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노라니 내 일상이 한없이 헐거워만 보였다.
“멀리서 이렇게 바라보는 풍경도 꽤 괜찮은데?”
망원렌즈가 없어 먼 곳의 피사체를 더 당겨 찍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남편에게 무심코 던진 말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살면서 내가 바라봐야 하는 내 인생의 풍경은 어느 계절의 나무 한그루, 꽃 한 송이만이 아니었다. 내가 머무는 모든 계절의 비, 바람, 햇볕과 같은 거대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때론 너무 강했고 때론 너무 소소했지만 지나고 보면 늘 그 나름의 추억과 향기를 가져다주었다.
정면이 아니라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니 내 안의 모자란 구석들 사이에 다정한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없어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한 날들 속에서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고 살고 싶었다. '없는 나'를 '있는 나'로 바꾸는 건 한 끗 차이. 방법은 간단했다. 결핍된 내 인생의 문장들에 ‘그래도’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