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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빛승연 Apr 03. 2020

언니가 없어요

그래도 언니보단 동생이 든든하지 


"나도 언니 있으면 좋겠어."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이 생긴 첫째가 이따금씩 하는 말.

그러면 나는 얼른 이렇게 받아친다.

"왜? 언니 있으면 뭐가 좋은데? 동생 있는 게 훨씬 더 좋지~"

"oo 이는 언니가 있어서 놀이터에서 언니 친구들이랑 같이 논단 말이야. oo는 언니랑 같이 유치원도 다니고 미술학원도 다닌단 말이야."


첫째는 친구처럼 함께 놀 수 있는 언니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둘째를 낳기 전, 그러니까 첫째가 외동일 때 내가 놀이터에서 형제, 자매, 남매끼리 잘 노는 아이들이 좋아 보인 것과 같은 이유이겠지. 그 아이들은 굳이 친구가 없어도 어디서든 심심해하지 않았다. 엄마 입장에서 보니 그게 참 부러웠다.


둘째가 아직 어려서 지금은 놀이터에서 같이 놀 수도 없고, 앞으로도 서로 수준 차이가 나서 같이 무언가 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주 나중에, 스무 살이 지나서, 서른 살이 지나서는 누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나와 내 동생이 그러하듯이.







동생에게.


 이제 보니 너와 나는 참 외모도 성격도 모두 많이 다르네. 피부 까만 건 넌 항상 불만이었지. 그래도 네가 씩씩하고 당찬 구석이 있어 내가 세 살이나 위지만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너한테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

 기억나? 어렸을 때 우리 둘이 용돈을 똑같이 받았는데도 넌 어쩜 그렇게 악착같이 모았는지 항상 저금통에 돈이 많았잖아. 어디에 쓰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너한테 야금야금 돈을 많이 빌렸던 것 같은데. 나중에 갚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야. 다행인 건 네가 그때 그걸 얼만지 적어두지 않았다는 점이야. 아마 지금 환산하면 꽤 많은 액수일 것 같거든.


자라면서는 진짜 싸우기도 많이 싸워서 엄마한테 같이 쫓겨나기도 하고. 나 때문에 네가 개한테 물린 적이 있었는데 난 가만히 있었고 넌 화가 나서 엄마한테 대들다가 네가 더 혼나서 울그락불그락하면서 엄청 울던 날도 있었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일은 좀 미안하네.


어떤 날에는 내가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는데 쪼그만 게 울면서 “언니 엄마한테 내 통장 좀 달라고 해줄래? 나 집 나갈 거야!” 하고 말하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그 나이에도 네 통장을 챙겼던 것 보면 지금이나 그때나 넌 참 똑 부러지는 거 같구나.


그런 너라서 언제부턴가  난 결정장애가 올 때마다 늘 너한테 연락하곤 했어. 어쩌면 아주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것들. 가령 내 결혼식에 오지 않은 친구의 축의금은 얼마를 내야 하는지, 한번 입어본 옷인데 환불해도 될 것인지, 꼬리뼈가 아픈데 지금 이런 내 증상이 치질인지 아닌지, 어떤 놈을 만나고 있는데 이런이런 행동이 정상인지 등등....... 친구한테도 말하기 꺼려지는 이야기들을 너한테 말할 수 있어서 내 삶은 덜 복잡해졌고 더 유쾌해졌는지도 모르겠어.


지난주에 너네 집에서 공동육아를 하면서 어찌 보면 짧은 일주일 정도였지만 그 시간이 참 큰 힘이 되더라. 결혼도 출산도 내가 먼저였지만 난 여전히 육아도 가사도 너보다 서툴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고. 우리 집이 아닌 너네 집에 머문 게 좀 미안하기도 했어.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둘째를 출산해서 같이 휴직하고서는 매일 실시간 카톡으로 아이들 이야기를 해서 아이들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있으니 또 새롭더라. 아이 넷과 북적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니 혼자보다는 조금 여유가 있었고, 하루가 참 빨랐고, 무엇보다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어. 엄마 집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르게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첫째들이 유치원에 갈 때까지, 아니 이놈의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너네 집에 있고 싶었단다.


다시 조용한 집으로 돌아오니 네가 뚝딱 말아주던 김밥도,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아이스커피도, 그리고 아이넷이 소리 지르던 서라운드 소음도 많이 그립네.


요즘 동생이 빨리 커서 말도 하고 자전거도 같이 타고 싶다고 하는 첫째에게, 왜 나만 동생을 돌봐줘야 하냐고 묻는 첫째에게 말해줘야겠어. 금방 커서 동생이랑 같이 놀 수 있다고. 그리고 나중에는 동생이 언니를 돌봐줄 수도 있는 거라고. 엄마도 이모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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